전파

by 박재성

1, 2차 포비살롱을 마친 뒤,
어느 날이었다.


개발 조직에
SPACE 프레임워크를 도입할 계획인데,
이 지표에 대한 설명회를 진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SPACE 프레임워크.
개발 생산성을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표다.

S: Satisfaction – 만족도와 웰빙

P: Performance – 성과

A: Activity – 활동

C: Communication – 소통

E: Efficiency – 효율과 흐름


마이크로소프트 Developer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SPACE 프레임워크는 개발자 환경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새로운 전체론적 방법을 제공합니다. "생산성은 개인 또는 엔지니어링 시스템 그 이상입니다. 단일 메트릭 또는 활동 데이터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습니다... SPACE 프레임워크는 생산성 및 개발자 환경과 같은 복잡한 개념의 다양한 차원을 포착하도록 개발되었습니다."

– Nicole Forsgren, DORA 메트릭 창설자 겸 Microsoft의 전 파트너 리서치 관리자



요청을 받은 순간,
솔직한 감정은 거부감이었다.


나는 그동안
‘생산성 지표’를 도입하려다 실패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아왔다.


조금만 잘못 전달되면
개발자를 평가하고,
압박하고,
심지어 정리해고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오해받기 쉬운 영역이다.


“이건 또 그런 시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내 마음을 붙잡았다.


S.

Satisfaction. 만족도와 웰빙.


생산성을 측정한다면서
만족도와 웰빙을 가장 앞에 둔 지표라니.


그 순간,
무작정 거부하기보다
조금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SPACE를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건 의외였다.
이 지표들은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좋은 개발 문화’를 설명하는 지표에 가까웠다.


개발자에서 교육자로 업을 바꾼 지
어느덧 10년.

그 사이
세상도, 조직도, 지표도
조금은 나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설명회를 수락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고민이 시작됐다.

“어떻게 하면
내가 처음 느꼈던 이 거부감을
다른 개발자들은 느끼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답은
일방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SPACE를 일방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PoC를 진행한 개발자와 함께
패널 인터뷰 형태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설명회는
기존의 포비살롱을 그대로 활용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포비살롱을 통해
조금씩 쌓아온 신뢰가
이번에도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설명회 공지를 올리고,
오해를 풀기 위한 질문도 받았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둔 기준은 하나였다.


투명함과 진정성.


이 지표가 왜 나왔는지,
무엇을 하려는 건지,
무엇을 하지 않으려는 건지.

숨기지 않고,
돌려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


오해가 생기기 쉬운 지표일수록
그게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스크린샷 2025-12-26 오후 2.28.43.png


혹시
이런 마음이 전해진 걸까.

예상보다
많은 개발자가 질문을 남겼다.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아무 질문도 없는 것보다,
어떤 질문이든 많이 올라오는 게
훨씬 건강하다고 느꼈다.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뜻이고,
이 지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질문의 대부분은 우려에 대한 것이었다.

이 지표는 평가로 쓰이지 않는가?

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압박하지는 않는가?

결국 누군가를 줄 세우는 도구가 되지 않는가?


나는 이런 질문들이 좋았다.

우려를 숨긴 채
겉으로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보다,
의심과 불안을
정면으로 꺼내 놓는 편이
훨씬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준비했다.

민감한 주제였다.
조금만 표현을 잘못해도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설명회였다.


원래의 나는
웬만한 발표에서
스크립트를 하나하나 쓰지 않는다.


현장의 분위기를 보며,
즉흥적으로 풀어가는 편이다.

그게 나다운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문장 하나,
표현 하나,
순서 하나까지.

정말 꼼꼼하게
스크립트를 작성했다.

지금까지의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준비했다.

스크린샷 2025-12-26 오후 2.43.01.png


솔직히 말하면
약간의 불편함도 있었다.


이 방식이
나답지 않다는 느낌.
조금은 거부감도 들었다.


그럼에도
마음을 바꿨다.

이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민감한 만큼,
책임 있게 다루기로 했다.


설명회는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투명함과 진정성
전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완벽한 설명은 아니었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려는 태도는
전달된 것 같았다.


설명회를 마치고
이상하게도 여운이 남았다.

그 여운은
투명함과 진정성으로 소통했다는 만족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준비하는 방식이 달랐다는 점.
그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 형식이 좋았던 걸까.

다음 포비살롱은
나 혼자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패널을 초대해
같은 방식으로 진행해 보기로 했다.


다음 주제는
‘시나리오 기반 인수 테스트 환경 구축’.

팀원 중 한 명이 하고 있는 활동이었고,
이건 꼭
우형 개발 조직에 소개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형식, 준비 과정, 진행 방식은
SPACE 설명회를 그대로 따랐다.

스크린샷 2025-12-26 오후 3.11.40.png

설명회를 마친 뒤

함께했던 브라운과 오리에게
이런 피드백을 들었다.

기존 발표 형식이었다면 훨씬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 질문하고 답변하는 인터뷰 방식이라
경험을 꺼내는 게 훨씬 편했습니다.


그 순간,
무엇인가를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담은 줄이고,
소통은 더 깊게 만드는 방식.

기존의 발표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사람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형식.


이 설명회를 통해 얻은 용기 때문이었을까.

이 주제는
10월 우아콘까지 이어졌다.


무조건 격리한다고 좋은 테스트일까? MSA 환경에서 구축하는 시나리오 인수 테스트



그리고 최근에

이런 DM을 받았다.


다름이 아니라 내년에 ○○실 정기미팅을 패널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해보려고 하는데요.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Devboost Leaders' Talk 하셨던 형식과 비슷할 것 같은데요~
혹시 추천 받을 수 있는 장소가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제야 실감했다.

이건
단순한 설명회가 아니었구나.
형식 하나가
생각보다 멀리까지
전파되고 있구나.


무언가를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하는 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우형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 보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행동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우형을 살리기 위한 활동 중 하나로
포비살롱을 시작했고,
그 포비살롱은
패널 인터뷰 형식으로 진화했다.


이 형식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도,
사람을 연결하는 데도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무언가가 흘러갈 때.


그때가
삶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아마
이런 맛 때문에
나는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는 것 같다.


표진에 사용한 사진: UnsplashChaozzy Lin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살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