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온원이 끝나고, 아빠가 아들에게 건네는 말
아들이 원온원을 신청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종종 갖는 시간이다.
"아빠, 9개월밖에 안 됐는데 이직을 하려는 선택이 나의 나약함 때문이지 않을까 고민돼요."
이번 주 회사의 결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마지막에 울먹거리며 던진 한마디.
그 말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가슴 한편이 저려왔다.
아들의 고민 속에 '아빠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들의 고백
아들은 지금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개발자는 단 둘. 그 두 명이 회사 개발 전반을 책임진다. 9개월을 그렇게 버텨왔다.
최근 회사가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생존을 위해서였다.
자본이 필요한 스타트업이 처음의 비전을 지킬 수 있을까.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 머리가 아는 것과 가슴이 따라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처음 겪는 일이니 이해가 간다.
회사의 생존을 위해 묵묵히 일하다 보면 언젠가 비전에 투자할 시간이 오리라 믿었다. 그 믿음으로 9개월을 견뎠다. 그런데 동의할 수 없는 방향으로 결정이 내려졌고, 동기는 조금씩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떠날 마음까지 먹고 있다.
지금까지 만들고 운영해 온 서비스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9개월이라는 숫자가 발목을 잡는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빠가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진심이었기 때문이야
아들아, 네가 동기를 잃은 건 네 탓이 아니야.
그 회사의 비전과 일에 진심이었기 때문이야. 진심이 아니었다면 실망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
빠르게 이직하는 것이 나약함의 증거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런데 다르게 볼 수는 없을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깊이 몰입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가볍게 다녔다면 9개월은 아무렇지도 않은 숫자다. 네게 그 숫자가 무거운 이유는, 거기에 네 전부를 실었기 때문이야.
회의실에서 피벗 이야기가 나와도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진심이 없었던 거다. 너는 달랐다. 그래서 아팠다.
그게 오히려 자랑스럽다.
9개월의 무게
사람들은 재직 기간을 숫자로 읽는다.
하지만 네가 그 9개월 동안 쏟아부은 밤과 고민의 농도를 안다.
개발자 둘이서 회사 전체의 기술을 짊어졌던 무게를. 새벽 네 시, 네 방에서 혼자 커밋 로그를 쌓던 그 시간을.
9개월은 도망치기엔 충분히 긴 시간이다. 네가 최선을 다했음을 증명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시간이다.
숫자가 너를 판단하게 두지 마. 누군가의 평범한 몇 년보다 네가 쌓은 9개월의 밀도가 훨씬 깊다는 것을, 너와 나는 알고 있잖아.
아빠도 지금 내려놓는 중이야
사실 아빠도 지금 마침표를 찍기 위해 준비 중이란다.
26년을 다녀온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우리 집을 지키기 위해 해온 직장 생활. 이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담담하게, 묵묵히.
무언가를 끝낸다는 건 포기가 아니지 않을까?
다음 걸음을 내딛기 위해 쥐고 있던 것을 놓아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 용기를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9개월이든 26년이든, 상관없다.
아빠도 지금 그 연습을 하고 있으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아들아, 네가 나를 실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다.
너 자신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남의 비전에 너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일.
그것 말고는 없다.
이직을 하든, 조금 더 버티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네가 네 안의 목소리를 듣고 내린 결정이라면, 그 결정을 내린 너를 지지한다.
너는 충분히 멋진 개발자야. 어떤 팀에서든 믿고 싶은 동료야.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내 아들이야.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 위에서 다시 뛰는 너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