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스테리 May 12. 2022

못생김을 묵상하다

터져버린 계란 프라이

계란 프라이가 바닥은 바삭, 위는 촉촉하게 익어감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적절한 타이밍에 그릇으로 옮겨 닮는 건 나에겐 사치다. 노른자는 질질 터지고, 옆에 있던 녀석들과는 달라붙기나 말기나 소금을 깜박하지 않고 뿌려준 것만으로도 성공적일 때가 있었다.


아이가 신생아일 때


잠시도 바닥에 누워있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내 몸에 부착한 상태로 지냈던 시절

꿈같이 빠르고 정신없었던 산후조리원을 나와 처음으로 남편과 둘이서 아이를 봐야 했던 그 시간

남편은 다음날 회사를 가야 했고, 나는 밤새도록 우는 아이를 안은채 아침을 맞이 했다. 엄마가 되어버린 것이 얼마나 엄청난 사태를 일으킨 것인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대부분의 일들은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본인 의지의 문제이지 일이건 관계이건 결국 내가 못하겠다 싶으면 퇴사를 할 수도, 관계를 정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 배속에서 나온 내 아이

머리들 힘도 없는 연약한 그 아이가 생명줄처럼 온전히 의지하고 있는, 엄마가 되어 있는 나.

그렇게 처음으로 못하면 안 되는 일을 맡닥 들인 것이다. 그때 나는 정말 못하겠더라. 그냥 이제 그만할래요 하고 침대에 몸을 던지고 자고 싶었다. 그리고 평온하고 한가했던 나의 일상이 너무나 절실했다. 출산한 지 불과 한 달도 안 되어서 나는 두 손 두발 다 들고 싶었다.  

그 새털 같이 많고 많을 때는 한가 했다던 남편은 하필 내가 아이를 출산하고 바로 팀장 승진을 했고 신규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어 하루가 멀다 야근이 반복되었다. 더더군다나 아이는 등 센서가 초 발달되어 잠깐이라도 바닥에 뉘일라 하면 귀가 찢어질듯한 울음으로 강력하게 거부했다. 아이를 안은채 서서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청소기도 돌리고, 밥도 했다.  그러다 나름 찾아낸 방법이 짐볼을 타는 것이었다. 그나마 짐볼에 앉아서 둥가 둥가 움직이면 아이가 울지 않았고 평온해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짐볼을 타며 아이를 안고 있다  시계를 보니 그날은 무려 7시간 동안 짐볼을 타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 3시까지 짐볼을 타던 날 나는 창밖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어찌할 바를 모를 막막하고 피곤한 눈물이었다.    


누군가는 "육아가 어렵지 않았어요. 아이를 키우는 내내 행복했어요" 그런 사람도 있더라.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남들에게 다 있다는 모성애가 나에겐 없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이상한 죄책감과 행복한 미소로 거뜬하게 육아를 해내는 그녀들에 대한 얄미움이 공존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고 과거 당연한 일상인 거울을 본다거나, 화장솜이란 걸 꺼내서 스킨에 발라서 얼굴 전체를 토닥거리는, 영양팩을 바르는 따위의 행위들은 단종되어 버렸다.


그런 처절한 시간이 흘러 어느덧 아이가 35개월이 되었고, 아이는 올해 3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하면서 나에겐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고 비로소, 내박쳐 놓다시피 했던 내 얼굴과 몸을 천천히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나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나는 너무 못생겨졌다


정말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보게 된 거울 속에 나는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눈밑은 쾽해져있고, 볼살은 아래로 누가 끌어당기기라도 한 듯 쳐져서 생기와 에너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에 피부는 빗살무늬 토기를 연상할 만큼 자글자글했다.


마치 엉망진창 노른자가 터져 버린 계란 프라이 같은 모습.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게 되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기대했었다. 그러나 정작 못생긴 얼굴에 완전히 꽂혀 하염없이 슬프고, 억울하고, 착잡함으로 아이가 없는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틈만 나면 못생긴 내 모습을 확인하고 괴로워하고, 확인하고 괴로워하기를 반복하다 과거 사진을 쭉 보던 중 육아 도중 찍힌 내 모습을 을 보게 되었다. 하나같이 지치고 피곤하고 무표정한 모습들이다. 물론 아이와 반응하고 웃고 하는 시간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무심결에 잡힌 카메라 속 내 모습은 그러했다.

남편을 째려보고 있었던 것 같다


감당이 안되었던 너
피곤하고 고단해


표정이 그 사람의 얼굴을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몇 년의 시간 동안 나는 그렇게 중력과 함께 시너지를 내며 못난이 얼굴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지금의 못생긴 모습은 그것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지난 사진을 보고 있자니 그때는 힘들어서 놓쳤던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행복할법한 시간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을 향유하지 못하고 빨리 아이가 커서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것만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미 못생겨버린 내 모습에 집중하느라 또 행복한 일상의 요소들을 놓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는 희미하게 나를 보고 웃는다. 그리고 안아달라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짐볼 위에서 안고 있지  않아도 된다. 아이는 나를 꼭 껴안고는 공주치마를 입혀 달라며 내 손을 잡고 옷방으로 달려간다.

다시 못 올 소중한 시간이다.


결코 세월의 흔적을 피해   없겠지만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얼굴에서 평온함과 기쁨의 흔적이 자리 잡길 바라면서   동안 나를 괴롭혔던 못생김의 묵상을 이제 그만 매듭지을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 맛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