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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리 Jul 18. 2024

그녀가 화를 내던 날   

심호흡이 필요해

브런치에 꽤 오랜만에 글을 쓴다.

그 사이 아이는 6살이 되었고, 막무가내 떼쓰기도 조금 벗어나고 심하게 자주 아프던 감기도 느긋하게대처할 만큼 뜸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어마무시하게달변가가 되었다.

이제 아이가 혼자 안정적으로 서있고, 떼와 장소를 어느 정도 구분도 하니 함께할 수 있는 공간들도 많아졌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에 사우나가 있다. 여자들끼리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가는 것이 왠지 친구 같은 느낌도 들고 묘한 친밀감을 자아낸다.


사물함 번호를 직접 고르라고 하면 아이는 큰 과제라도 맡은 듯 설렘반 뿌듯함 반으로 신발장 번호를 고르고 그 열쇠 번호와 동일한 사물함을 다시 찾는다. 무언가를 직접 선택하고 해내는 것이 즐거운 아이를 보고 있으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이런 좋은 마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직 스스로 목욕을 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라서 아이에게 머리를 젖히라고 하고 머리를 감기고 비누칠을 하고 씻기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그 와중에 미끄러운 바닥에서 자꾸 이탈해서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아이를 자리에 앉히고 허겁지겁 씻기고 나온 후 춥다고 난리난리를 치는 아이의 옷을 정신없이 입히고 머리를 말리고...


느긋하게 혼자 오면 탕에 들어가 반신욕이라도 할 텐데 하는 아쉬움반 그래도 오늘 목욕은 무사히 해치웠다 하는 시원한 마음 반.


집으로 가는 길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 좀 안아줘"

목욕하느라 진이 빠진 나는 "너 이제 6살 언니잖아! 언니가 아직도 안아 달라고 하면 안 되지! 안 그래?"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아이가 "내가 언니야? 그럼 엄마도 나한에 언니라고 불러 이제 "

나는 어이없다는 말투로 "언니~~ 언니~ 이러면 되는 거야"

이랬더니 아이가 불같이 화를 낸다.

"어른이 언니 하라고 했다고 하면 안 되지! 어른이 아이한테 언니라고 하고 싶어? 그러고 싶냐고?"


순간 할 말이 없었다. 너무 맞는 말이라.

그러고 그녀의 화내는 말투에서 내 표정과 억양이 보였다.


'저거 나한테 배운 거구나.'

마냥 아이라고 뭘 모를 거라 생각했던 아이는 훤하게 모든 걸 다 읽고 있었다.

나의 감정도 그리고 어른이 보여줘야 하는 기대되는 태도도.



출근 후 친한 매니저와 커피 한잔을 마신다.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 내내 아이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이제 내 딸에게 좋은 어른이 보여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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