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1화. 최성호,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 읽고..
최성호,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철학사상 제78호>>, 2020.11., 67-109.)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 논문이다.
‘썸타기’는 일견 유행이 지난 것처럼 보이는 말이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물론, 내가 지금 썸을 타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의 여전한 관심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게다가 ‘철학적 고찰’이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매우 ‘있어빌리티’한 논문 제목이 되었다.
‘논문’이 매력이 있는 글이라는 점을 억지로(!) 어필을 해본다면, 우리가 어럼풋하게 가지고 있는, 어떤 대상에 대한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해주는데서 오는 쾌감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과연 이 논문은 ‘썸’이라는 상태에 대해 ‘음, 역시 그렇군’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줄 것인가?
필자의 핵심 생각을 내 식으로 정리해본다.
필자는 ‘썸타기’가 호감이 있는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데서 오는 긴장감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느끼는 어떤 호감(욕구)를 자기가 어떤 식으로(예를들어, 받아들일지 말지와 같은..) 처리할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는 긴장감이 있는 상태에서 서로가 가진 이 긴장감에 의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그런 상태라는 설명을 한다.
“(필자는) 상대에 대한 이성적 호감을 지닌 두 남녀가 새롭게 만남을 시작하며 자신들의 의지적 불확정성에 대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과정이 썸타기의 핵심이라고 제안한다.”(86쪽)
흔히 ‘썸타는’ 상태는 서로 호감을 지닌 두 남녀가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가진 마음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규정되지 않은 상태,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로 생각한다.
하지만 논문의 필자는 ‘아는 것’ 즉, 인식적인 측면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 즉, 의지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호감을 가지고 있으나 이 마음을 어떻게 선택할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썸’을 정리하였다.
‘의지적 불확정성’이라는 말이 바로 그 상태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듣고보니 좀, 그럴듯하다.
‘썸타기’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현상이고, 연애 관련 문제이기에 누구나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이 논문에 흥미를 갖게 하는 요소이면서도, 동시에 누군가 어설프게 이 내용에 관해 썰을 푼다면, 개똥철학이나 뻔하고 흔한 생각으로 전락해 버릴 위험을 동시에 가지고 갖게 한다.
그렇다면 이 논문의 ‘있어빌리티’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첫째. 대중가요 가사의 활용.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 논문은 <썸>(소유, 정기고), <썸 탈거야>(볼빨간 사춘기) 등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대중가요 가사를 통해 ‘썸’ 이라는 현상의 본질에 대해 접근해 들어간다. 덧붙여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나, <거짓말>(GOD)와 같은 유명한 텍스트들을 활용해 추가적인 논의를 덧붙이고 있다.
“‘썸’이 이런거야, 자, 너도 공감할 만한 이런 노래 가사에서도 ‘썸’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잖아”라는 식이다.
“사라져 아니 사라지지 마 / 네 맘을 보여줘 아니 보여주지 마 / 하루 종일 머릿속에 네 미소만 / 우리 그냥 한번 만나볼래요?”(볼빨간 사춘기, <썸 탈거야> 중에서) (논문 86쪽 인용)
둘째. 명망있는 학자들의 관점을 활용하여 우리 주변의 현상을 분석 및 설명.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는.
이 논문에서는 ‘썸’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해리 프랑크푸르트(Harry Frankfurt)라는 학자의 이론을 활용한다. 이 학자는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이라는 저서로 알려져 있는 철학자다. 요즘 같은 시기엔 이 책도 거짓말과 개소리를 철학적으로 구분해 놓는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한 내용이긴 하다.
어쨌든 오늘의 주제인 ‘썸타기’에 대해 필자는 <의지의 자유와 인격체의 개념>이라는 논문에서 제시되는 내용을 활용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수긍할만한 설명을 기반하여 ‘썸’이라는 현상을 설명한다. 어려워보이는 이 개념을 흡연에 대한 자발적 중독자와 비자발적 중독자의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하는데, 이런 설명들을 듣고 있자면 철학적인 내용이 일상적인 내용으로 잘 읽히면서도, 뭔가 ‘있어보이는’ 그런 느낌을 더해준다.
“자, 봐봐, 이게 철학적인 개념으로 설명하면 이런 거야. 단순한 내 생각이 아니라고.”라는 식이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가 생겼을 때 이 욕구를 자발적 중독자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욕구로 받아들이지만, 비자발적 중독자(담배를 끊고 싶어하는 사람)은 극복해야 할 욕구로 배척하려 한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도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바로 그 지점이 ‘의지적 불확실성’과 관련된 지점이다.
남녀 간에 서로에 대한 어떤 호감이 생기고 떠오른 마음 속의 욕구가 있다. 이 욕구를 그들은 서로 각각 자신의 자연스러운 욕구로 받아 들일 것인가, 아니면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볼 것인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 이 상태가 바로 ‘썸’이라는 설명이다.
‘의지적 불확실성’ 말고도 아니카 파이비치와 숀 겔러허의 ‘공동 행위에서 개별 행위자’의 역할 수행에 대한 개념도 흥미롭다. 자세한 내용은 논문 96쪽부터 나오는 내용을 참고.
셋째. 여기서 끝나지 않고, 설명한 개념을 활용하여 이후의 관계 및 관련 개념까지 확대 적용. 경우의 수를 따져볼 수 있는.
논문의 내용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서로 썸을 타고 있는 남녀가 각각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는지, 또 그에 따라 어떤 경우의 수가 발생하는지를 차근차근 분석해준다. 실제로 나타날 수 있는, 관련된 다양한 경우에 대한 체계적(?) 정리와 그에 대한 설명이 이 논문에서 ‘썸’을 다루는 방식이 ‘있어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덧붙여 ‘어장관리’라는, ‘썸’과 같은듯 다른듯 같지 않은 개념에 대해서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이 논문의 마지막 부분은 ‘어장관리’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마무리 된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인간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내 수준에서는, 어떤 애매한 일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해내려는 시도가 일종의 지적 쾌감을 준다는 점도 이 논문을 통해 느낀 것 같다. 의미있어 보이는 개소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헛소리 같아 보이지만 일말의 진실 혹은 진심을 담고 있는 이야기를 더 많이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썸타기’ 뿐만 아니라 ‘어장관리’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도 참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니, 여유가 되신다면 즐거이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