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화목 중 더 중요한 것은?

(25년 8월 상순의 순간) 알껍데기는 필요한가.

by 제II제이

주일 예배는

한국 개신교에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뚜렷한 지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아왔다.

그러나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주일 예배가 사회적 충돌의 원인이 되자,

많은 논의가

예배보다 형제와의 화목을 우선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 주장은 성경적 근거를 가진다.

마태복음 5장 23–24절은 분명히

“먼저 가서 화목하고, 그 후에 예물을 드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제와의 화목이

예배라는 형식보다 본질적 가치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일 예배를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충돌 상황에서 쉽게 포기할 수 있는

하위 가치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주일 예배는

기독교 공동체가 신앙의 리듬을 공유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장치이자 신앙의 뼈대다.

예배가 없으면 신앙은 금세 흩어지고 무너진다.


나는 신앙의 실천을 단계적으로 본다.

예배도 드리지 않고

다른 신앙적 실천도 하지 않는 상태가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보다 한 단계 나은 것은

“예배라도 드리는 상태”다.

물론 거기에만 머문다면

형식 집착이나 자기 위안으로 전락할 수 있다.

하지만 예배를 전혀 드리지 않는 것보다는,

예배라도 붙잡고 있는 것이

신앙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힘이 될 수 있다.

결국 형식은 쉽고 본질은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어찌보면 쉽게 가능하지만,

형제와 화목하는 일은

갈등과 용서, 인내와 같은 깊은 내적 변화를 요구하기 어렵다.

많은 신자가 예배에는 성공하지만

화목에는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예배의 성공에 대해서도 따질 것이

매우 많겠지만 여기서는 간단히 줄인다.)


형식은 본질을 감싸는 알껍데기에 비유할 수 있다.

껍데기만으로는 생명이 될 수 없지만,

껍데기가 없다면 생명도 자라날 수 없다.

주일 예배라는 형식 역시

본질을 담아내는 그릇과 같다.

주일 예배만 붙잡는 형식 집착은 공허하지만,

주일 예배를 무의미하다고 여겨 버리는 것도 위험하다.

본질은 껍데기를 통해 자라나고,

껍데기는 본질을 보호하며 의미를 가진다.


팬데믹 상황은 이런 생각을 깊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조건 속에서

많은 교회는 예배와 화목 중 하나를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온라인 예배나 소규모 모임 같은 방식을 통해

두 가치를 동시에 지키려 했다.

이런 것이 신앙 공동체가 취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고 나버지를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두 가치를 함께 살려낼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 논의는 주일 예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십일조와 같은 헌금, 성찬식, 세례 등도

모두 형식이라는 껍데기의 자리에 놓인다.

이런 형식들은 지키는 데 상대적으로 쉽지만,

그 속에 담겨야 할 본질

― 사랑, 화목, 정의,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헌신 ―

은 훨씬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형식에만 안주하며

본질을 미루려 한다.

그러나 형식을 무시하면 본질도 설 자리를 잃고,

본질만을 말하면서 형식을 경시하면 신앙은 방종해진다.

중요한 것은 형식과 본질을 대립시키지 않고,

형식을 통해 본질이 자라나도록 두 가지를 함께 붙잡는 일이다.


결국 정체성 있는 기독교인은

주일 예배에만 목숨 거는 사람도,

예배를 가볍게 여기며 관계만 중시하는 사람도 아니다.

예배라는 형식을 지켜 신앙의 뼈대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 예배가 지향하는 더 어려운 본질,

곧 형제와의 화목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주일 예배는 신앙의 시작점이자 최소한의 껍데기이며,

그 안에서 본질이 자라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신앙이 되지 않을까.


(챗gpt를 활용한 작업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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