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중요하다"는 구호에 대해

(25년 8월 중순의 생각) 한 신문 칼럼을 읽고 난 내 생각

by 제II제이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14542.html


이 글은 위 칼럼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모든 일이 중요하다”는 구호의 한계와 균형 잡힌 시각


읽은 칼럼은

연극 동아리와 유치원 연극 사례를 들어

“모든 일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배우와 스태프, 주연과 나무 역할을 나누지 말고

모두 존중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내 생각엔 글이 전하는 도덕적 교훈이 공감할만하지만서도,

논리적·현실적 측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칼럼은 역할마다 존재하는 기능적 차이를 무화한다.

배우가 없으면 연습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조명이나 소품은 공연 직전 준비해도 된다.

이처럼 사회적 기능에는 필연적인 경중이 있다.

그런데 칼럼은 이런 차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모두 똑같이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몰아간다.

이는 현실의 구조를 단순화한 이상주의적 접근이다.


둘째, 칼럼은 존엄성과 기능적 중요성을 혼동한다.

노동의 존엄은 직업의 종류와 무관하게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노동의 기능이

동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능의 차이를 곧 존엄의 서열로 전도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기능 자체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귀천과 경중을 구분해야 한다.

귀천을 따지는 것은

곧 인간 존엄에 서열을 매기는 것이고,

이는 거부해야 한다.

반면 경중을 따지는 것은

사회적 기능, 파급력, 대체 가능성을 기준으로

역할의 무게를 가늠하는 일이다.

경중은 현실에 존재하지만,

그것이 곧 귀천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칼럼은 이 구분을 흐려버린다.


셋째, 칼럼의 유치원 연극 ‘나무 역할’ 사례는

배역 배정의 구조적 이유와 개인적 이유를 삭제한 채

단순 미담으로 소비된다.

실제로는 배역이 정해지는 과정에

구조적 요인(교사의 판단, 제도적 틀)과,

아이의 성향이나 태도 같은 개인적 요인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데 칼럼은 이 맥락을 지운 채

“역할은 중요하지 않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교훈만 강조한다.

이는 구조적 불평등도, 개인적 차이도 외면한 채 이상만 남긴 서술이다.


나는 칼럼이 전하고자 한 취지,

즉 “노동을 차별하지 말자”는 규범적 메시지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현실의 차이와 개인의 노력을 지워버리는 태도는 문제다.

아이가 나무 역할을 맡아도

최선을 다했다는 점은 존중해야 한다.

존엄의 평등과는 별개로,

개인의 노력은 분명히 의미 있는 가치다.

따라서 중요한 건 “차이를 무시하는 평등”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존엄과 노력을 함께 존중하는 균형이다.


마지막으로,

구조가 현실로서 주어진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직업과 역할의 위계, 자원의 불평등은

이미 사회에 깊이 자리 잡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모든 일이 중요하다”는 구호가

현실을 무시하는 공허한 문구가 되지 않으려면,

이상을 현실과 대화하게 만들고,

현실이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이상은 현실을 설득해야 하고,

현실은 이상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 긴장 속에서만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결국 칼럼의 부족한 점은

현실을 도외시하고 이상만 남겼다는 데 있다.

내가 보기에 필요한 건

현실을 직시하되 존엄을 지키고,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을 막으며,

개인의 노력을 존중하되

구조의 힘을 간과하지 않는 균형 잡힌 관점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만 “모든 일이 중요하다”는 말은

공허한 도덕 문구가 아니라,

현실을 움직이는 힘 있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챗gpt를 활용한 작업물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예배와 화목 중 더 중요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