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은 두 달간의 순조롭고 느긋했던 여정 중 처음으로 문제가 생겨 다소 긴박하게 보냈던 날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떠나 다음 목적지인 Lassen-Volcanic 국립공원을 향했다. 이동 거리가 500 킬로미터가 훨씬 넘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또 공원 내에 유일하게 개방되어 있는 캠핑장의 사이트 수가 겨우 20 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데다가, 모두 FF(First come First serve) 사이트로만 운영이 되기 때문에 최대한 일찍 도착을 해야 했다. 그런데 아침에 요세미티에서 눈을 치우느라 예상보다 출발이 늦었고, 또 요세미티 밸리 전망 포인트에서도 시간을 소비했기 때문에 마음이 약간 조급해졌다. 왜냐하면 집을 떠나기 전, 공원 안에 있는 캠핑장 이용이 불가한 경우를 대비해 공원 근처 다른 숙박 시설을 검색해 보았는데, 가까운 곳에 적당한 시설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벗어나 조금 지나자 갈림길이 나왔다. 그런데 내 차에 내장된 GPS와 핸드폰 구글 GPS가 서로 다른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구글 GPS가 더 빠른 것 같길래 구글 안내를 따랐다. 그런데 도로 한쪽이 낭떠러지로 돼있는 위험한 산길 도로를 20분 넘게 가다 보니 중간에 도로가 바리케이드로 막혀있는 게 아닌가! 높은 산악 지대 도로라서 눈 때문에 폐쇄를 시킨 것이다. 구글, 이번 여행에서 나를 여러 번 성가시게 하는구나! 그런데 도로를 폐쇄할 거면 갈림길의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쳐야지 입구는 열어 놓아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가게 하는 이유가 뭘까? 도중에 무슨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산 길이다. 순간 설마 여기가 전망 포인트인가 하고 둘러보았지만 그럴리는 없었다. 왜 입구를 막지 않았는지 심히 의구스럽다 할 수 없이 좁고 위험한 도로에서 조심조심 몇 번을 후진한 후 차를 되돌렸다.
다시 그 갈림길로 돌아와 차에 내장된 GPS가 안내하는 길로 들어갔다. 안 그래도 지체되었는데 왕복 40분의 시간을 버렸다. 다시 한 시간 반 정도 산길을 달렸다. 그래 어딜 달려도 경치는 좋구나. 산길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잠시 달렸다. 그다음에는 한 시간 내내 가도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대관령 목장길 같은 탁 트인 초록의 벌판을 달리게 되었다. 분명히 고속도로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속도도 낼 수 없는 이런 길로 가게 하는 거지? 의아해하면서 한 시간 반 가량을 혼자 달리니 드디어 농장 비슷한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사람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주변이 탁 트인 녹색의 평야와 멀리 보이는 산들, 그림 속 풍경처럼 평화로워 보이긴 하는데 어떻게 지나가는 농부 차량 하나 보이지 않는지. 지금 이 길이 제대로 가는 길인지 의심스러웠다. 만약 저녁이었다면 긴장할 만도 하겠지만 아직 오전이고 날씨도 화창하게 좋으니, 때가 되면 산에서 내보내겠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운전했다. 생각해 보니 아마 구글 GPS에서 교통 체증을 피해 가는 기능이 활성화돼 있던 탓인 것 같다. 타지를 여행할 때 밤에 운전할 때는 이 기능을 비 활성화 시키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 막히는 도로를 운전하는 것이 밤에 외딴 도로를 운전하는 것보다 나을 테니 말이다. 돌아가면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해야지. 국립공원을 여행할 때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GPS에 공원을 입력할 때 절대 공원이름을 입력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해서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경고문이 많다). 반드시 정확한 도로 건물 주소를 입력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관광 안내소 주소다. 공원 입구 주소가 있는 국립공원도 있지만 없는 국립공원도 많다. 만일 공원 이름을 입력하면 지형적으로 공원의 중심이 되는 위치, 즉 산속 한가운데로 안내하게 된다. 낮에도 물론이지만 저녁이나 밤이라면 이 경우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항상 정확한 건물 주소를 입력해야 한다.
드디어 지루했던 산길 도로가 끝나고 시골 주택가를 조금 달리다가 다시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운전을 하다가 lassen-Volcanic 공원상태를 체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보통은 구태여 이동 당일 날 공원 홈페이지를 다시 체크하진 않는다.) 오후 한 시 반쯤 되었으니 잠시 운전 브레이크를 가질 타이밍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가기에 적당한 exit이 보이지 않는다. 도시 외곽 고속도로인지, 도로변에 쇼핑센터나 상가 건물들이 보이지 않고 산업 시설 같은 것들만 보인다. 할 수없이 운전을 하며 Lassen-Volcanic 국립공원에 전화를 했다. 놀랍게도 그날 1시 이후에 공원의 남쪽입구와 관광 안내소, 그리고 캠핑장이 스노 스톰 때문에 모두 폐쇄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당일 폐쇄를 결정한 것이다. 중간에 이래저래 지체한 시간이 있어 Lassen-Volcanic 국립공원까지는 아직 3시간 넘게 남아있었다. 놀라고 난감했지만 한편으론 그래도 공원 입구에 도착해서 공원이 폐쇄된 걸 아는 것보다는 중간에 알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세울 수가 없으니 운전하면서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다음 목적지는 Redwood 국립공원이었는데 캠핑장은 내일 날짜로 하루가 예약이 되어있었다. Lasssen 국립공원은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동쪽으로 300킬로미터 넘게 육지로 들어와 있고, 레드우드 국립공원을 포함해서 내가 앞으로 여행할 몇 개의 국립공원은 서쪽 해안 쪽에 있었기 때문에 다음 여행지인 Redwood 국립공원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쪽으로 이동하다가 중간에 숙소를 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GPS에 레드우드 캠핑장을 입력했더니 예상 도착 시간이 무려 7 시간 후로 나왔다. 중간에 주유소도 들려야 하니 밤 9시가 다 되어 도착하는 것이다. 이미 4시간 반가량 운전하고 있었는데 7시간을 더해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피곤해진다. Redwood 국립공원의 해 지는 시간을 체크했더니 8시 10분경으로 나왔다. 해가 지고 30분 정도는 어둡지 않으니 아무리 늦어도 8시 40분 전까지는 도착을 해야 했다. 보통은 느긋하게 운전하는데 이 날은 속도를 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중간에 쉴 수도 없다. 국립공원이 보통 외진 곳에 있으니 어두워진 후에 도착해서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상황은 피해야 하니 말이다.
이 날은 내 평생에 운전을 가장 많이 한 날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중간에 주유소에 들르는 시간을 제외하고 쉴 새 없이 운전을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루에 10시간 넘게 운전한 건 25-6년 전인 거 같다. 운전을 하며 지나치면서 찾아보았지만 숙박하기에 적당한 마을도 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래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즉 공원에 도착한 후 캠핑장에서 머물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근처에 호텔을 알아보라고 했지만 괜찮은 호텔은 모두 예약한 캠핑장에서 1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다고 했다. 일단은 호텔리스트를 받았지만 될 수 있으면 캠핑장에 머무르는 것이 여러모로 최선이었다. 만약 캠핑장 예약이 다 찼다면 밤늦게 거기서 다시 1시간 넘게 운전해서 호텔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 경우는 피하고 싶다. 그래서 플랜 B를 계획했다. 왠지 이 플랜 B대로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운전을 하다가 잔여 시간을 보니 8시 30분 전까지는 도착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한 시간 정도는 캘리포니아 해안선을 따라 나있는 산길을 달리는 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아쉬웠(?)다. 이윽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이고 너무도 예뻐서 멈추고 싶었지만 무시하고 계속 밟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8시 반경 어두워지려는 찰나 캠핑장에 도착했다. 11시간이 넘게 꼬박 운전한 것이다.
꽤 큰 캠핑장이었는데도 역시 우려했던 대로 그날 예약이 다 차 있었다! 원래 내일로 예약이 되어있는데 오늘 여정에 문제가 생겨 11시간 넘게 운전하고 왔다고 캠핑장 호스트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친절한 호스트 부부가 편의를 봐주어 자신들의 사이트를 이용하게 해 주었다. 이것이 사실 나의 플랜 B였다. 그런데 내가 부탁도 하기 전에 호스트 아주머니가 먼저 제안을 해 주었다. 아마 내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길고 피곤했던 하루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수고가 많았다.
레드우드 국립공원은 원래 캘리포니아 주립 공원이었던 3개의 공원을 1968년에 하나의 국립공원으로 제정했는데,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116미터 키의 레드우드 나무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실 이 공원은 북쪽에 있는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 하루 쉬어 가기 위해 들르기로 한 곳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Mount Rainer 국립공원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북쪽으로 1400 킬로미터 넘게 떨어져 있으니 어차피 3일을 이동해야 했다. 그래서 중간 경유지로서 하루 일정으로 방문하게 된 3개의 국립공원이 바로 Lassen-volcanic, Redwood, 그리고 Crater lake 국립공원이었다. Lassen-volcanic이 닫혔으니 본의 아니게 Redwood 국립공원에서 이틀간 머물게 되었다.
레드우드에 도착 한 다음 날 아침, 관광 안내소를 가서 트레일 정보를 받고 Karl Knapp trail 입구로 갔다. 이 트레일은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4 킬로미터의 원형 트레일이다. 워낙 경치가 좋은 트레일을 많이 가 봤고 또 세쿼이아 국립공원에서 큰 나무들의 숲을 많이 봤기 때문에 특별히 인상적인 트레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레드우드 숲 속으로 나있는 트레일을 한 바퀴 돌았다. 중간에 Big tree wayside 표지가 있는 길로 빠지면 1500년 된 거대한 레드우드를 볼 수 있다. 내일 떠나는데 오늘 할 수 있는 걸 추천해 달랬더니 파크 레인저가 Newton B. Drury scenic parkway 드라이브가 유명하니 꼭 가 보란다. 찾아보니 어차피 내일 아침에 다음 목적지인 Crater lake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선 이 도로를 지나야 했다. 그래서 어젯밤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쳤던 아름다운 해변으로 가 보기로 했다. 남쪽으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데 해변에서 저녁을 먹고 일몰을 보기로 했다. 차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일몰을 기다리다가 찍은 사진인데 페인팅처럼 보여서 마음에 든다.
집 앞에 산책로에서도 일몰을 자주 보고 집에서도 서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일몰을 자주 본다. 그 시간들을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바다에서 보는 일몰이 훨씬 더 아름답다. 아무리 봐도 질리거나 식상하지 않다. 언제나 처음처럼 감동을 준다. 벌써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 지나갔다. 중반을 넘은 것이다. 느긋하기도, 또 쉴 새 없이 바쁘기도 했던 여정이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지? 차곡차곡 많이 쌓아 왔다.
Redwood 국립공원 Redwood 국립공원 Redwood 국립공원 다음 날 아침 Crater lake 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Newton B. Drury scenic parkway에 들어 서니 양쪽으로 하늘 높이 치솟은 레드우드 숲이 보인다. 도로 양쪽에 오래된 레드우드가 빽빽이 둘러 싸여있어 도로 위의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 빽빽이 막고 있는 틈 사이로 햇빛 줄기가 쏟아지는데 수백 개의 beam 조명이 내리 붓는 것 같다.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당연코 레드우드 국립공원에서의 최고의 경험이었지만 아쉽게도 사진은 찍지 못했다. 아침이라 차가 거의 없길래 10마일 되는 길을 일부러 천천히 운전하고 갔는데도 너무도 빨리 그 길이 끝나 버렸다. 어차피 레드우드 국립공원은 지나치는 곳이었지만, 이른 아침 환상적인 빛줄기가 쏟아지는 숲길을 드라이브하는 것만으로 이틀 전의 힘들었던 운전에 대한 보상을 받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