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늪에서 살아남고자 버둥대고 있어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 바로 시간이다. 같은 시간 동안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을 얼마나 성취했는가 에 따라 사람들은 평가되곤 한다. (공부, 취업, 자격증, 결혼 등)
그래서일까. 나는 특히 '동갑'들의 성과에 마음이 쓰인다. 비교는 답이 없음을 알면서도 누군가 '너는 뭐 했냐'하며 비교하진 않을까 지레 겁먹을 때가 있다.
비교는 결국 나를 깎아먹는다는 말에 백 번 동의한다. 나는 열등감을 원동력 삼아 발전해 본 적도 없다. 그리고 질투하는 순간 내가 가장 못나 보인다. 사람들이 흔히 외모 저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웃지 않아서라고 하는데, 정말 속으로 누군가를 시기하면 자연스러운 웃음이 지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질투할 때 얼굴도 못생겨 보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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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의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상처받지 않은 척, 부럽지 않은 척을 내려놓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고 싶었다. 누군가 나를 저격해도 여유 있게 대처하고 때로는 저격하는 줄도 모르고 그 순간을 흘려보내는 자존감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1년 반이나 공부하고도 떨어진 공무원 시험에 붙은 친구가 "나는 3개월 만에 붙었어"라며 나를 보고 씨익- 웃을 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 주기 어려웠다. '너는 경력직이잖아. 나와 같은 시험을 본 게 아니잖아'라는 말이 차올랐지만 그 말을 기어이 내뱉으며 더 못나질 수는 없었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와 나를 비교하는 어른들 앞에서 "저 친구는 캐나다에 살다 온 친구잖아요"라는 말은 결국 하고 말았다. 내가 비교를 하지 않으려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는 나를 저울 위에 끌어올리고 나는 버틸 틈도 없이 비교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초등학생이 됐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 동일한 출발점에서 동등한 조건을 가지고 경쟁을 시작했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데 보통은 그렇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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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세상, 서로 귀여워하며 삽시다'
석촌호수도 얼어버린 날, 내 마음을 녹여버린 사랑스러운 사람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리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 누군가 나를 비교로 속상하게 한다면 귀여워해 버리자. 그마저도 되지 않는다면 생각하자.
'역시 내가 너무 귀여운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