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보통의 가난과 닭고기 스프

프롤로그. 이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가 아닙니다.

by 제이

누구나 한 번쯤 나의 위치를 저울질해 봅니다. 나는 가난한 편인가 부유한 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중간 정도는 위치할까. 저의 경우는 적당히 부유한 적도 적잖이 가난한 적도. 두루두루 있었지요.


좋은 학군에 위치해 제가 살고 있는 사과 시(지역을 밝히기 어려우니 사과 시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에서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좋은 동네 좋은 아파트에 잠시 살았던 시절이 있습니다. 잘 짜인 싱크대와 새시가 갖추어진 볕이 잘 드는 아파트였습니다. 길 건너편에 대형 마트와 공원이 있고 길만 건너면 초중고등학교가 있던 그런 곳 말이에요.


그런데만 살았다면
오늘 나는 내 가난을 쓸 일도 없었겠지요


아빠의 사업이 부도가 나서 빨간딱지가 붙어 그 집과 가구가 통째로 넘어가는 일을 겪은 후 나는 지독한 가난과 마주하게 됩니다. 겨울이면 보일러가 얼고 여름이면 곰팡이가 온 집을 뒤덮는. 바선생과 지네를 비롯한 각종 벌레와 맞닥뜨려야 하는 옥탑방에 살면서부터였지요. 공과금은 밀리기 일쑤였고 교회에서 쌀과 용돈을 받기도 했습니다. 조폭 같은 아저씨가 찾아와 빚을 받으러 왔다며 부엌 한켠에 몇 시간을 앉아 있다가 털어도 동전 하나 튀어나오지 않을 집이라며 그냥 돌아간 기억도 있네요.


어린 시절의 나는 이상하리만치 긍정적이어서 이 모든 상황이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들이 성공하기 이전 겪게 되는 고난인 것처럼 쉽게 받아들이고 쉽게 적응해 나갔습니다. 지금 떠올려도 그 시절의 시간들이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던 것을 보면 말이에요.


옥탑방에서 보낸 7년간의 가난을 어느 정도 청산한 후 우리 가족은 보통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 간 집에서의 삶은 지난 시간을 위로해 줄 만큼 꽤 질 좋은 행복을 주었지요. 우리 돈으로 산 쌀이 있고, 더 이상 곰팡이 슬은 집이 아닌 데다 언제든 물을 틀면 온수가 나오니. 내가 누리는 이 모든 형편과 상황은 감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나는 정말로 내가
중간 정도의 삶을 사는 보통의 사람이라
여기며 그 행복을 달콤하게 맛보았습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일푼과 무일푼이 만나 결혼을 했으나, 우리 각자가 가진 실력과 비전이 있으니 각자의 일을 하며 불행하다 느낄 만큼 가난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근사한 곳에서 가끔 외식도 했고 돈을 모아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전세 대출을 받아 작지만 안락한 집을 구했고, 큰돈은 아니어도 매달 서로가 일을 해 돈을 벌었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우리 이 정도면 중간 정도는 하잖아라고 여전히 생각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이루어낸 것들이니 그 행복의 값은 상중하 중에서 상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게 마냥 해맑게 매일매일 긍정의 바퀴를 굴리던 내가 가난한 쪽에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들어간 산후 조리원에서였습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상대적 가난에서 오는 깊은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 배경 가지고 있는 재산 등을 이야기하면서 나 자신이 쪼그라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조리원에 있는 엄마들 중에
내가 제일 가난하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라는 것. 어쩌면 이것을 자랑이라고 착각해 왔을지도 모릅니다. 몇 년째 갚고 있는 학자금대출도. 부모 도움 없이 결혼해서 살고 있는 것도. 나는 이것을 나의 자랑이라 여기며 양가 부모님 돈 한 푼 없이도 결혼할 수 있다고 지인들에게 무용담처럼 이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습니다.


하지만 조리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의 삶을 비교하다 보니, 나의 삶이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긍정적이고 행복했던 나의 지난 시간들이 잠시 슬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실 부모로부터 받은 크고 작은 재산으로 자신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손자 손녀에게까지도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누어주고 있으며, 안타깝지만 나와 내 가정은 무일푼과 무일푼이 만나 결국 우리 스스로 무언갈 일궈내지 않으면 이 아이에게 또 다른 형태의 보통과 가난 중 가난에 가까운 그 상태를 안겨주게 될 거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이 참 슬펐어요.


한동안 그 서글픈 마음이 내가 누리는 행복을 야금 야금 갉아 먹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니 상대적 가난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는 듯 했습니다.


물려받을 혹은 물려받은 재산이 없고 전세 혹은 월세에 살고 있으며, 다가올 카드값이 걱정이고, 대출 이자에 허덕이며, 부모님에게 받을 것은 없지만 부모님의 노후가 걱정되는. 적어도 난 중간은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 삶이 흙속에 있어 매일매일이 치열합니다. 위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 바닥은 아닌. 상대적 가난이 주는 박탈감에 가끔은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여러분. 그래서 저는 정말이지 보통에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의 찌질하고 속상한 마음을 달리 둘데가 없었거든요. 보통의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적당한 가난의 이야기. 오늘부터 나는 내 가난을 팔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가 아닙니다.

함께 서로의 치부를 건드리며 끌어내리는 글이 되진 않을 거예요. 천성이 긍정인 사람이라 저는 그 가난이 주는 상실감에서 오래 머물러 있지는 않으려해요.


제가 마주한 크고 작은 가난의 순간에 어떻게든 살아내는 삶을 함께 다시 살아가길 바래요. 구구절절 이어질 그 이야기 뒤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어 줄 맛있는 요리도 함께 내어드릴게요. 추운 마음을 녹여 줄 닭고기 스프처럼 말이예요.


저도 주로 밑반찬에
찬밥을 데워먹는 신세입니다만,
스스로 만든 정성스러운 식사는 그날 하루를 윤택하게 하는 힘이 있거든요.


함께 읽다 보면 그리고 함께 만들어 먹다 보면 힘이 나기도 하는, 조금씩 꺼내어 먹을 수 있는 글이 될 거예요. 심야식당컨셉이랄까요. 내 마음 한켠의 속상했던 하루가 조금은 다정해지는 그런 얘기를 전해볼게요. 가끔의 우울과 슬픔 가끔의 기쁨과 행복을 담아서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부터 이렇게 나는 가난을 팝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