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주인 없이 누린 행복의 결말과 두부전골

우리의 첫 집 원룸 오피스텔

by 제이

남편과 결혼해 처음 살았던 집은 오피스텔의 원룸이었습니다. 원룸이지만 남편의 책상 퀸 사이즈의 침대 그리고 2인용 소파를 놓고도 널널할 만큼 평수가 꽤 넓은 스튜디오형 원룸이었어요.


당시에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대출이라는 상품이 처음 나와서 나는 보증금 1억/월세 10만 원의 반전세 오피스텔을 1퍼센트대의 이자로 대출받아 아주 저렴하게 계약할 수 있었지요. 보증금도 전액 대출이 되어 저희는 정말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집을 구했습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계속 그 집에서 오래오래 살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집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마음에 들었고 집 근처 산책로와 맛집이 즐비하게 있는 곳이어서 신혼이었던 저희에게 추억이 많은 곳입니다.


저녁을 먹고 밤공기를 쐬며
산책하던 여름밤은 특별히 더 근사했습니다.


오피스텔이 있던 곳이 관광지 근처에 자리 잡고 있어 여름이 되면 북적북적 사람들이 모여 묘한 설렘을 안겨 주었거든요.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물고 돌아오는 그 길은 제게 신혼의 즐거운 조각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입니다.


집이 좁아도 나는 손님을 신나게 초대했습니다. 여섯 명 이상 모이면 스탠딩 파티를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나와 내 지인들은 모두 구김 없이 나의 작은 집을 사랑해 주었습니다.


문제는 이 집을 떠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출산을 앞두고 이사를 결심한 시점이 지난해 4월이었고, 전세 만기는 10월, 출산 예정은 9월이었습니다. 앞서 집주인분께 6개월 혹은 1년 치의 월세를 미리 드리곤 했는데 그달에는 3개월치를 드리며 임신 사실을 전달했습니다. 6개월치를 미리 드렸다가 혹시 한 두 달이라도 먼저 나오는 일이 생기면 계산이 번거로울 것 같으니 우선 3개월치를 드리고 그 이후에는 다달이 드리겠다고 말입니다. 혹시나 적당한 집이 매물로 나오게 되면 만기 전 먼저 나가게 될 수도 있다는 것과 그렇게 되면 미리 꼭 말씀드리겠다. 뒤에 올 세입자를 반드시 구하고 나갈 테니 걱정 마시라. 복비도 저희가 부담하겠다는 것도 미리 당부드렸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부동산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저희가 계약 전 이사를 가게 되어 6월에 들어올 세입자를 구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냐고 말입니다. 집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어서 집을 구하라는 말도 덧붙여서요.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어차피 세입자를 구해야 이사를 갈 수 있는 상황이니 최대한 빨리 이사 갈 집을 알아보라는 연락에 알겠다고 답하고 매물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집을 알아볼 당시만 하더라도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있는 데다 전세 매물 자체가 없어서 집을 찾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불러오는 배를 안고 부동산을 들락날락 거리며 집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가진 돈이 적으니 선택지가 적었지만 볼 수 있는 집은 최대한 다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제 우리 집은 우리만 살 곳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다 찾은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입니다. 지어진지 30년도 넘은 오래된 아파트. 재개발된 신식 아파트 단지를 지나 우두커니 언덕을 지키고 있는 작은 규모의 아파트였습니다.


오피스텔 원룸에서 아파트라니
대단한 발전 아닌가요.


넓은 방 두 개와 앞뒤 베란다 작은 거실과 주방이 있는 옛날식 아파트였지요. 베란다로 가는 문은 나무로 되어 있어 문을 열고 닫을 때 우당탕탕 소리가 나고 낡은 새시는 삐걱삐걱거렸습니다. 화장실 타일은 제각각에 여러 번 바뀐 집의 이용자들만큼 여기저기 타일에 구멍자국이. 콘센트는 노랗게 바래있었고 낡은 전화선용 콘센트가 이 집의 세월을 짐작케 했습니다. 나무 붙박이장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베란다 천장의 페인트는 삭아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우수수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대안으로 삼을만한 다른 전셋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고민 끝에 우리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집안 곳곳을 수리해 줄 것을 계약서에 확인받고, 일억칠천만 원에 실평수 21평짜리 지금의 우리 집을 전세로 계약하기로 말이지요.


가계약금을 넣고 집주인분과 부동산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사 갈 집이 정해졌으니 이사 날짜를 협의하여 세입자를 구하면 좋을 것 같다고요.


그러나 집주인분은 집을 내놓은 적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부동산에서 착오가 생긴 것 같다고요. 부동산 쪽에 지금 사는 세입자가 계약을 못 채우고 나갈 것 같다고 흘린 이야기를 집을 내놓는 것으로 오해를 한 것 같았습니다. 자기는 집을 내놓은 적이 없으니 저보고 알아서 부동산에 집을 내놓고 비용도 전부 부담하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계약 기간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 것이기에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집을 내놨으니 이사 갈 집을 구하라는 부동산의 연락이 없었다면 우리 또한 급하게 집을 구하지 않았을 텐데. 구체적인 기간까지 언급하며 그때까지 집을 구하라던 상대 부동산에서도 오해가 있었단 모양이라며 집은 금방 나가니 걱정마라고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이때부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지만, 이사는 갈 것이었고 조금 시기가 당겨졌다 생각하자.라고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이사 갈 집의 집주인분은 어차피 집수리도 해야 하니 입주 날짜를 여유 있게 잡을 것에 흔쾌히 동의해 주셨고, 남편과 저는 남은 두 달의 시간 동안 세입자를 구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집을 알아보러 다닐 즈음에는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더니, 막상 저희가 집을 내놓고 나서는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집주인 분께서 무리하게 월세를 올린 게 문제였습니다. 전체 수리는 커녕 도배도 새로 안 한 집을 올수리 기준으로 받으려고 하신다니 나는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결국 부동산에서도 이 가격은 말이 안 되는 가격이라고 판단했고, 부동산 중개인 분의 설득 끝에 월세를 조정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시세에 비해 비싸게 느껴졌지만
나를 도와주기 위해 본인은 손해를 감수하는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집주인분께서는 말끝마다 계약 기간을 안 채워서 본인이 손해를 본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이 말은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본인은 제가 대신 복비를 내주어 공짜로 세입자를 구하는 데다 이전 세입자인 저보다 월세도 올려 받을 상황인데 대체 뭐가 손해라는 것인지. 그리고는 (나는 부탁도 하지 않았으나 본인이 동결해 주겠다고 해서) 동결된 월세를 들먹이며 계속 손해를 보셨다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아니 제가 부탁한 적도 없는데 기분 좋게 선심 쓰듯 동결하실 때는 언제고 저 때문에 손해를 보셨다니요.


더럽고 치사하다 어서 세입자나 구하자. 집주인이야 집 나가면 끝인 사람이니 그러려니 하자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그러나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없고 마냥 부동산을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저는 부동산 중개를 도와주는 직거래 카페부터 지역 커뮤니티까지 글과 사진을 올리며 세입자를 직접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최대한 단정하게 사진을 찍어 여기저기 글을 올리니 연락들이 오더군요.


그렇게 도저히 나갈 것 같지 않던 그 집이 극적으로 나가게 됩니다. 젊은 신혼부부였습니다.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 눈에 선하게 보였습니다. 남편과 나는 이 젊은 부부가 이 집에서 우리가 그러했듯 행복을 누리길 바랬습니다. 집 곳곳을 점검하고 일부 가전제품은 사비를 들여 수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풀옵션인 오피스텔이라 연식이 오래된 가전은 고장이 날 경우 집주인이 고쳐주거나 교체해 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이사 올 사람이 정해졌고 이사 갈 집이 있으니 감사했습니다. 새집처럼 깨끗이 쓰시라고 임신 8개월 차에 임산부는 화장실부터 부엌까지 몇 번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화장실 타일에 얼룩 하나 남지 않게 과탄산을 물에 풀어 여기저기 닦고 또 닦았습니다. 이사 오기 전보다 더 깨끗한 상태로 청소를 하며 이분들의 행복을 빌었습니다.


이사당일이 되었습니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남편과 함께 이삿짐을 정리하고 짐을 뺀 집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진짜는 마지막에 또 한 번 찾아왔습니다.


집 열쇠를 직접 받으러 오시겠다던 집주인분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남편과 나는 그동안 감사했다며 집안 곳곳 우리가 수리한 흔적을 짚어 말씀드렸습니다. 이사 올 분들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과 큰 잡음 없이 그동안 지낸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약간의 생색도 내고 싶었어요.


그런 나에게 집주인분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제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새댁 때문에 내가 본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라고 운을 띄웠습니다. 복비는 당연히 그쪽에서 내는 거지만, 월세 동결해서 사실 더 받을 수 있었는데 자기가 안 받았다는 것. 그리고 계약 기간 전까지 집 내놓고 사실 몇 달 더 기다렸다면 자기가 원하는 가격에 세입자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저 때문에 월세를 깎아서 2년 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 세입자가 구해지고 계약서를 쓴 후에 다른 사람이 찾아와서 처음 올린 가격에 계약을 하고 싶어 했다며 (그럴 리가요?)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이 봤다고 주장하는 손해를 줄줄이 늘어놨습니다.


이 이야기의 결론이 궁금하신가요?


네, 이 분은 저에게 줄 장기수선충당금 50만 원을

주지 않기 위해 구구절절이 자기 얘기를 늘어놓고 있었던 겁니다.


세상에 이토록 치사한 드라마가 있을까요.


그러나 그 모든 말에 일일이 항변하기에 만삭의 임산부와 그의 남편은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 반포장 이사로 전날부터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짐 정리를 해야 했거든요.


남편과 잠시 눈이 마주쳤을 때 남편이 눈으로 말했습니다. 그냥 가자. 싸울 힘도 없다.라고요.


아 네 그러세요.


긴 설명에 큰 반박 없이 이어진 짧은 대답에 주인분은 별말 없이 열쇠를 받고는 이사 잘 가라며 문 앞에서 마중을 해주었습니다.


새로 이사 올 분들에게 드리려고 달았던 예쁜 키링을 빼내어 열쇠만 전달하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는 마쳤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참 이해되지 않는 계산법입니다.


복비를 대신 내준 것과 집 곳곳을 사비로 수리해 준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 집을 수리하며 들어가게 될 장기 수선 충당금까지도 저희가 대신 내드렸으니 말이죠.


그렇게 주인 없이 누린 행복의 결말은 막을 내리는 듯했습니다.


이사를 온 후에도 가끔 그때 당했던 부당한 대우가 생각나서 화가 나곤 했습니다. 금전적인 것은 물론이고 그분의 태도에 대한 화였습니다. 월세도 꼬박꼬박 미리미리 일 년 치 혹은 육 개월치를 지불했고, 살면서 고장 난 가전제품 중 저희 부주의로 발생한 것은 저희 사비로 교체 혹은 수리. 연식이 오래돼 교체할 것들을 (당연한 것이지만) 교체해 주셨을 때는 너무 감사해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서로 간에 부딪힘 없이 잘 지냈다 생각했으니, 배신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 일련의 시간을 지나며 깨달은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집주인은 집주인일 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그들에게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 서로에게 앞선 친절은 피차 서로 베풀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옳다는 것입니다.


그저 이 집을 빌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우리는 행복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와 남편 그리고 나의 아가. 우리 셋은 착실하게 이 집에서 우리의 행복을 누리는 중입니다.


주인 없이 누린 행복의 결말,

끝맛은 조금 씁쓸했지만 9할은 기뻤으니 괜찮습니다. 우리의 행복을 부서 버리기에 더 좋은 추억이 많으니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부동산 계약을 하며 갑과 을의 관계에서 뜻하지 않게 생긴 오해나 부당한 대우로 속상한 적이 있으셨나요?


그 마음 훌훌 털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식으로 그 마음 채우시라고 뭉근한 두부전골 한 그릇 올려드릴게요.


뭉근 따끈 두부전골 고기가 없다면 버섯과 야채로만 해도 충분해요


<오늘의 요리>

억울한 마음까지 포근하게 감싸줄 두부전골


재료: 알배기 배추, 좋아하는 야채(저는 당근 단호박쌈야채 남은 것을 넣었습니다.) 전골용 혹은 불고기용 소고기, 버섯, 두부, 육수용 티백


만드는 방법

1. 육수용 티백과 물을 넣고 먼저 육수를 우려냅니다. 저는 해물육수를 넣겠습니다. 육수의 간은 소금이나 간장으로 합니다. 저는 달달한게 좋으니 간장으로 간을 하겠습니다.

2. 육수가 우러나오면 티백을 건지고 위의 재료를 모두 한 번에 다 때려 넣으셔도 되지만, 예쁘고 정갈한 음식을 만드는 수고 뒤에 소란했던 마음도 잠잠해지는 법입니다. 육수는 따로 담아냅니다.

3. 야트막한 전골냄비 혹은 일반 냄비도 괜찮습니다. 빈 냄비를 준비해 주세요. 밀푀유 전골처럼 알배기 배추 사이사이에 소고기를 넣는 수고도 한 번쯤 해볼 만합니다. 켜켜이 소고기를 넣고 적당히 자른 배추를 예쁘게 담아냅니다.

버섯과 각종 채소를 둥글게 둥글게 쌓은 후, 가운데에 살포시 두부를 얹어 주세요.

(냄비가 깊을 경우 아래편에 버섯과 야채를 깔아서 층을 만들고 그 위에 예쁘게 다듬은 야채로 먹기 좋게 담아냅니다)

4. 준비된 육수를 넣고 보글보글 몽근하게 끓여주세요.

5. 맛있게 먹습니다.


다 끓고 나면 모양은 흐트러지니 끓이기 전 예쁜 사진도 잊지 마세요. 오늘도 모두들 수고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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