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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Sep 23. 2022

정동길과 덕수궁길

매일의 기록

아주 오래 전, 경복궁의 정문이 광화문인 것도 모르던 시절. 아마도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에 처음 올라왔던 해. 변변찮은 직장도 구해두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일 하겠다고 상경한 나를 어머니는 내내 못마땅해 하셨다(나같아도 그랬겠다..). ㅎ


그러던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씩 풀리고(어떻게 해도 이놈이 자기 맘대로 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신 것 같은..), 엄니와 함께 첫 서울나들이를 하던 날의 기억. 아마도 우린 함께 덕수궁에 갔던 걸로 기억한다. "하이고, 이게 덕수궁 돌담길이구나~" 돌담을 쓰다듬으면서 감탄하는 어떤 아저씨를 보면서 우린 마치 서울에 익숙한 것처럼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고 점잖게 돌담길을 걸었었다. ㅎㅎ


아마도 시립미술관 덕수궁관에 가서 전시도 보고, 시청역 바로 옆 어떤 건물에서 파스타도 먹고(그때였는지, 한참 뒤였는지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이게 서울이구나. 내가 살고 있는 망원동도 좋지만 정동길과 덕수궁길에 와보니 정말 서울시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어.



6년의 시간이 흐른 2016년, 정동과 또 한 번의 인연을 맺었다. 지도회사 일에 슬슬 지겨움을 느끼던 시절. 남이 원하는 것들만 만들어주는 일에 싫증을 느껴 이리저리 도시에 대한 공모전이나 공모사업에 눈길을 돌렸다.


대학생 내내 공모전이나 취업에 관심도 없고 생각도 안 하다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런 걸 해보겠다고.. 근데 어떤 공모전에 운이 좋게 선정되었고, 그 대상 장소가 바로 정동길과 덕수궁길이었다.


나는 정동길과 덕수궁길을 완전 보행길로 만들고 곳곳에 정동길과 덕수궁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남겨둘 수 있는, 실제로 장소에 가야만 접근할 수 있는 게시판 개념의 저장장치를 고안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로 당선이 되었었다.


그걸 핑계로 정동길과 덕수궁길에 몇 년만에 몇 차례 가보고, 잘 모르고 있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정동이 정말 너무 좋은 동네라는 것도 그 때 (다시) 알게 되었고.



이후 몇 차례 더 그곳에 갔을 것이다. 언젠가 정동극장 안 카페에 몇 번, 르풀에 샌드위치를 사러 몇 번, 프란치스코 회관 카페에 몇 번, 바로 인근 성공회주교좌성당도 몇 번, 서울도시건축전시관도 몇 번, 돈의문박물관마을에도 몇 번, 강북삼성병원에도 한 번..


그리고 오늘은, 정동에 일을 하러 갔다. ㅎㅎ 카페루소라는 곳. 잘 몰랐는데 브런치가 아주 유명한가봐, 사람들이 정말로 많더군. 그런거 잘 모르고 진행하고 있는 사업 참가팀 미팅 장소로 거길 정해서 종일 팀들을 만나 이야기 나눴다.


여유가 없긴 했지만 중간중간 잠시 밖에 나가 거리를 잠깐 걷기만 해도 좋고, 노트북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기만 해도 좋고, ㅎㅎㅎ



아직 여전히 서울의 중심부에서 나는 촌놈이기에 정동이 주는 모든 것들이 여전히 좋더라고. 질리지 않고. ㅎㅎ


일상이 되면 지겨운 루틴일지도 모르겠는데, 예전에 광화문 쪽에서 일할 때 점심시간마다 잠시 하던 경희궁 산책이, 조용히 신문로 쪽을 걷던 기억이 나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


내일도 종일 정동에서 일할텐데, 그것도 벌써 기대된다. 내일도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서 한 테이블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아 조금의 고단함과, 한 움큼의 설렘과 기대를 갖고 그곳을 찾아오는 창업팀들을 만나 즐겁게 이야기 나누길. 날씨가 아주 좋기를.



(인스타나 페북에는 계속 올리고 있었는데, 얼마간 브런치를 까맣게 잊었었네? 다시 잘 올려봅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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