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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12. 2020

파퓰러 편곡법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 8

음악 전공자는 아니지만 막연히 궁금해서, 혹은 준전문가 수준의 이론과 실력이 필요했던 분들이 봤을법한 책. 이제는 절판되어 인터넷에서 표지 이미지조차 찾을 수 없는 책. 18년 전 대학교 시절 친구에게 빌렸었고, (아마도) 이사할 때마다 그의 자리를 옮겨 다니다 시골집 책장에서 발견된 책.



   프로젝트의 기획이 좋아서 덜컥 신청해버린 탓에 다른 분들의 글을 하나하나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섰다. 어떤 책을 고를까 고민하던 중, 어머니께 시골집 책장에 꽂힌 책 제목들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십사 하고 부탁해 발견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책이름은 <파퓰러 편곡법>.


   제목에서 느껴지듯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이 보는 책이다. 이제 더 이상 음악활동을 하지 않는 내게 18년 만에 발견된 그 책은 잠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보라는 시그널이었다. 


인터넷에서 책 표지 이미지도 찾을 수 없다




어떤 책인가?


   ‘음악을 혼자서 즐기려면, 노래는 부르거나 악기로 연주하면 그만이지만, 같은 곡을 마음이 맞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노래하든가 앙상블(합주)로 즐기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일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하여 익힌 편곡 테크닉을 이용하여, 가족 또는 친구들과 홈 파티나 라이브 등에서 자신이 직접 편곡한 앙상블 플레이의 성취감을 만끽하기 바랍니다.’ (머리말 중)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크레딧 / 경음악 편곡법, 파퓰러 편곡법>


   실용음악의 교과서로 불리는 ‘경음악 편곡법’(1988)보다 3년 늦은 1991년 발행되었다. ‘가요·동요·팝송 등의 편곡을 자유롭게’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을 자유롭게 즐기고 표현하기 위해 악보를 적고, 작곡과 편곡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CONTENTS
STEP 1. 악보를 적는 방법
 -> 음의 높이, 박자, 셈, 연주 용어와 연주 표, 조성과 조표, 장조와 단조, 도돌이표 등 악보에 기입하는 표에 대한 기초지식을 설명
STEP 2. 코드 입문
 -> 흔히 화음이라 일컫는 코드의 구조와 이름, 쓰리 코드(주요 3화음), 코드의 자리바꿈과 연결에 대해서 설명
STEP 3. 멜로디 창작 입문
 -> 악곡의 형식, 멜로디 라인을 만드는 방법, 코드 진행의 기본 등에 대해서 설명
STEP 4. 편곡 입문
 -> 기본적인 리듬 패턴, 피아노 어레인지(편곡) 스타일, 앙상블 어레인지(악기 구성에 따른 방법), 인트로와 엔딩에 대해 설명
부록
 -> 다양한 스코어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연습해볼 수 있도록 권유


   전체적인 내용은 경음악편곡법과 비슷하지만 좀 더 알기 쉽게 되어있고, 고난도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은 다루지 않아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조금이라도 악기를 배웠거나, 음악에 관심이 있었던 분들이라면 읽고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법한 난이도.




이 책이 발굴된 위치와 입수 경로


   서울로 다시 온 지 3개월 여 밖에 되지 않아 대부분의 책이 시골집에 보관되어 있어서 어머니께 책장의 책들 제목이 보이게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다. 사진들 중 하나의 가장자리에서 <파퓰러 편곡법>이라는 제목을 발견했고, 제목을 떠올리자마자 대학교 때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사할 때마다 몇 번은 자리를 옮겼을 그 책은 시골집 책장에 고이 꽂혀 있었다


   ‘경음악 편곡법’은 구매해서 본 기억이 있는데 이 책은 내가 산 기억이 없다. 우리 집 책장에 이게 왜 꽂혀있는 걸까 기억을 끄집어내 보았다. 책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책 아래에 새겨져 있는 이름. 바로 대학교 통기타 동아리 동기의 이름!


   ‘아, 그에게 빌렸던 것이구나!’


   동아리의 부활 기수였던 우리는 2학년이 되면서 신입생을 모집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 후배들 보기에 능력 있는 선배가 되기 위해 필살기를 하나씩 준비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열심히 막일을 뛰어 후배님들에게 맛있는 밥을 많이 사주려 노력했고, 누군가는 학교생활과 학점관리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과생활, 동아리 생활, 학회 생활 등 가리지 않고 열심히 했을 것이며, 누군가는 동아리의 본분에 충실하려 열심히 골방에서 기타 연습에 몰두했을 것이다.


   2학년이 되면서 맞이할 신입생, 나라고 왜 기대감이 없었겠는가. 나는 나름대로 기타 연습도 열심히 하고, 음악이론에 비교적 능통했던 동기에게 음악이론 관련 책을 빌려 후배들에게 해줄 기타 티칭 시간을 준비하였다.


   그때 빌렸던 책이다. 18년 동안 반납을 안 했다. 그 친구는 목회를 하고 있고, 나도 이제 음악과 관계없는 일을 한다. 나도, 그도 찾지 않는 책이 되었다. 그렇게 18년 동안 잊혀있었다. 




멜로디 라인을 만드는 방법?


   전문 음악가가 아닌 보통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궁금해할 만한 챕터는 바로 ‘STEP 3. 멜로디 창작 입문’ 일 것이다. 과연 좋은 멜로디 라인을 만들어내는 기술적인 방법이 존재하는 것일까? 이 책의 필자도 솔직한 입장을 서두에 밝혀 놓았다(36P).


   ‘멜로디 창작이라고 해서 어떤 구체적인 방법이나 규칙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실마리가 되는 테크닉과 같은 것은 있는 것이므로, 지금부터 그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공부하기로 합시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입장이긴 한데, 그럼 실마리가 되는 테크닉, 한 번 봅시다.


   멜로디 라인을 만드는 방법 (A) (37P)

1. 너무 넓은 음역을 사용하지 말 것.
 -> 보통 보컬을 염두에 두고 멜로디를 만들게 되므로 노래로 할 수 있을 범주 안의 음역대 안에서 생각할 것.
2. 같은 길이의 음을 너무 계속시키지 말 것
 -> 단순히 같은 길이의 음표를 나열하는 것보다는 길이의 변화가 있는 음표를 나열해보도록 하고, 테크닉에 좀 더 익숙해진다면 8비트나 16비트를 사용하거나 셋잇단 음표와 같은 리듬을 혼합할 수도 있을 것.
3. 같은 높이의 음을 너무 반복하지 말 것
 -> 일정한 높이의 음만으로 만들면 멜로디의 기복이 없게 되므로 적당히 높이를 변화시키는 것은 창작에서 중요한 포인트임. 또한 악센트를 붙일 때 단어의 구분에 주의하여 붙이도록 하고, 악센트를 붙여야 할 가사는 비교적 높은음으로 처리하도록 할 것.
4. 떨어진 음정만을 계속시키지 말 것
 -> 아름답고 노래하기 쉬운 멜로디라는 것은 대개 악보 상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참조하여 자신이 만든 곡을 검토해볼 것. 음정이 너무 까다롭거나 도약하는 프레이즈만 사용했다면, 부드러운 음정도 적당히 배합할 것.


   모든 표현이나 단어들이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떤 의미인지 대략 알겠다. 그런데,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거냐고요? 뒤에 그 밖의 음(비화성음)에 대한 설명도 있다.


   멜로디 라인을 만드는 방법 (B) (40P)

   경과음, 보조음, 전과음, 계류음, 선행음, 에샤페 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코드의 구성음(C 코드의 경우 도, 미, 솔)은 아니지만, 코드 구성음 사이의 음이거나, 구성음과 일정한 거리를 가지거나, 다른 위치에 있다가 다시 구성음으로 돌아오는 모션을 가진 음 등에 대한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사랑의 도전자>, <푸른 시절>, <사랑의 로맨스> 곡의 일부분을 예시로 들어 위에서 열거한 기능을 가진 음들의 실제 쓰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경우를 예로 살펴보고, 해당 음들을 사용함으로써 앞으로 작곡과 편곡에 활용해 보라는 당부가 되어있고.


   이 책을 처음 접했던 18년 전에 나도 그랬지만 ‘가요·동요·팝송 등의 편곡을 자유롭게’라는 부제목을 가진 책다운 명쾌한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책의 모든 챕터에는 ‘기본적이고 당연한 법칙 안내 –> 실제 곡을 통한 적용 사례 안내 –> 본인이 만든 곡에 적용시켜 연습해볼 것을 권유’의 과정이 있을 뿐이다.



음악도 하나의 기술일 뿐


   책에서 소개하는 학습과정이 ‘기본적이고 당연한 법칙 안내 -> 실제 곡을 통한 적용 사례 안내 -> 본인이 만든 곡에 적용시켜 연습해볼 것을 권유’의 흐름으로 되어있는 것은 음악도 그저 하나의 기술 혹은 학문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타고난 재능이 출발선을 다르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결과물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변수는 결국 시간과 노력뿐이라는 것(노래를 만들고, 악기를 구성해서 공연을 해본 경험을 돌아봐도, 작·편곡 영역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왕도는 수많은 곡들을 카피해보는 것뿐이다).


   돌아보면 나는 대학교 시절 그저 몇 가지 것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음악을 하겠노라고 마음먹고 엄청난 착각을 했었다. ‘음악은 재능으로 하는 거니까. 나는 재능이 조금 있는 것 같으니까’


   그리고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일 역시 내 전공이나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아니어서 비슷한 어려움과 고민이 시작되었기도 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대하는 태도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 등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이 책의 발견을 통해서.




이 책, 현재의 가치?


   이 책은 절판되어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간혹 중고매물이 나오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기미도 거의 안 보인다. 이 책을 구할 수 있다면, 음악전공자는 아니지만 음악을 시작해보려는 이에게 좋을 것이다. 추천할 만하다.


   하지만 중고 본을 구하기 위한 시도를 해야 할 정도로 가치 있고 대체자원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이 책은 보다 먼저 나왔던 '경음악 편곡법'이나 '파퓰러 음악 편곡법'을 좀 더 쉽게 풀이한 정도의 책이

라고 볼 수도 있다. 역시 절판되었지만 그래도 중고 본을 구할 수 있는 ‘경음악 편곡법’을 보길 추천한다.


   본인에게는 이 책이 내 잃어버린 시간을 생각하게 해 주었기에 특별했다.



음악전공자는 아닌데, 음악공부를 시작하려는 이에게 ★★★★☆

30대 후반 이상의 음악선배들과 술자리 대화 중 언급 용도로 ★★★☆☆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는 계속됩니다. 다른 작가분과 함께 매거진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매일 각기 다른 작가의 1~2편 글이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함께 써 내려갈 것이고, 함께 책으로 묶을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lost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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