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담배도 안 피워요?”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가 말했다. 상처받은 불쌍한 우리 아버지는 그 후로 담배를 배웠다고 한다. 어째서 여자의 말 한마디는 이토록 무서운가! 소개팅의 그녀가 불붙인 담배 연기는 결국에 나에게까지 날아왔다. 어릴 적부터 나는 아버지의 담배 냄새를 많이 맡아왔다. 그래서인지 담배 냄새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 아니, 오히려 담배 냄새가 좋다! 잠시 담배에 대한 나의 추억 얘기를 들어봐 주지 않겠는가? 나의 추억이 할 말이 있단다.
어떤 집 아버지는 술을 먹고 주먹을 휘두른다고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반대였다. 아버지는 술을 먹으면 기타를 꺼내 드셨다. “화창한 봄날에 코끼리 아저씨가~”하고 노래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와 누나는 아빠 앞에 가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좋겠다고 어렸던 나는 생각했었다. 그때는 술이 마냥 좋은 것인 줄만 알았다. 담배 이야기를 한다고 해놓고 술 얘기부터 해서 미안하다. 술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술과 마찬가지로 담배 역시 좋은 기억 중 하나일 수 있다고도 말하고 싶다.
“메가파이어~”라고 말한 뒤 아버지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셨다. 혹시 디지몬 어드벤쳐를 아는가? 나는 어렸을 때 디지몬에 집착했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디지몬만 틀어져 있으면 집에 혼자 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티비가 꺼지거나 애니메이션이 끝나면 토하기까지 했다. “메가파이어”는 디지몬에 나오는 불을 내뿜는 기술 이름이다. 아버지는 담배를 필 때 나를 위해 담배 연기로 메가파이어를 시전해 주셨다. 내가 얼마나 좋아했을지 상상이 가는가? 아니면 “어떻게 어린아이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가 있지?”라고 생각 중인가? 맞는 말이지만, 우리 아버지가 특별히 나쁜 아버지였던 것은 아니다. 그 시절에는 담배가 건강에 안 좋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던 시대가 아니었으니까. 예전에는 길가는 물론 버스에서도 심지어는 목욕탕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비행기 좌석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렇다, 예전에는 그랬다. 아버지는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우셨다. 담배 피우는 아버지를 볼 수 있는 날은 아버지가 직장에 나가지 않는 날, 함께 있는 날을 의미했다. 담배 연기란 아버지가 나를 놀아준다는 의미였다. 나는 담배 냄새가 좋았고, 지금도 좋다.
요즘 담배는 혐오를 받고 있는 것 같다.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나는 사실 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간접흡연조차 건강에 나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부터 건강을 그렇게 신경을 썼는가? 운동도 안 하고 잠도 잘 안 잔다. 튀긴 음식, 단 음식도 잘 먹는다. 건강에 나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술에 관대한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 왜 담배에만 엄격해지고 있는가? 건강 때문에? 비흡연자의 건강을 걱정해서?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흡연자의 건강 때문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흡연자들이 꽁초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거리를 더럽게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쓰레기와 더러운 거리에 대한 혐오이지, 담배에 대한 혐오는 아니다.
“담배 냄새 극혐~”, “담배 냄새 역겨워~” 주위에서 들려오는 이런 반응을 보면 아마 혐오에 대한 원인은 냄새인 것 같다. 물론 내가 설문조사를 해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담배 냄새에 진저리 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냄새가 좋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에게 묻는다. “이 냄새가 좋아?” 그러면 나는 되묻는다. “이 냄새가 싫어?” 만일 당신이 담배 냄새 혐오자라면 너무 기분 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이왕 이해 못 함 김에 계속해서 무례를 범해볼까 한다. 담배 혐오자를 보면 나는 의심하게 된다. “과연 담배 냄새는 나쁜 냄새일까?” 사실 담배 냄새는 정말 나쁜 냄새일 수도 있다. 내가 담배 냄새를 좋게 느끼는 이유는 단지 좋은 추억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냄새라는 것은 주관적인 감각이지 않은가? 객관적으로 나쁜 냄새라는 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오히려 그들이 담배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역겹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했다거나, 담배를 피우는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다거나. 그들이 담배 냄새를 혐오할 때, 사실은 과거 담배 냄새가 났던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담배 냄새 혐오자들을 보며 그들의 끔찍한 과거를 상상해 보고는 한다. 못된 상상이지만 상상은 자유이지 않은가? 용서를 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용서를 구합니다. 글로 썼으니까 ㅎㅎ)
이미 의심을 제기한 김에 계속해서 제기해 볼까 한다. 나는 담배 냄새에 유난을 떠는 사람을 보면 이렇게 의심한다. “과연 담배 냄새가 싫어서 저러는 걸까?” 담배 냄새를 한 번도 역겹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서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 담배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금기시된다. 그래서인지 양아치 짓을 하고 싶어 하는 중고등학생들의 타깃이 된다. 금기시되는 것, 양아치, 건강의 나쁜 것, 이런 이미지들이 합쳐져서 담배는 비도덕적인 물건이 되었다. 마피아 영화는 언제나 담배 연기로 자욱하지 않던가? 퇴폐적인 캐릭터 입에 담배가 물려 있지 않은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의심해 본다. 혹시 담배 냄새에 유난을 떨 때, 그들은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은 담배를 역겨워할 정도로 깨끗하다고 주장하고 싶어 할 뿐인 것은 아닐까? 나는 그 동기를 의심해 본다.
최근에 아파트 단지 전체를 금연 구역으로 만드는 곳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깨끗하고 건강한 동네를 만들기 위해서? 정말 그럴까? 나는 그 동기를 의심해 본다. 물론 금연 단지를 반대할 배짱은 없다. 금연 단지를 만들어서 나쁠 것은 전혀 없을 테니까. 흡연자들은 담배를 덜 피우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깨끗한 공기를 마시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지 않는가? 결과와 동기가 무조건 일치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좋은 동기로 하는 일의 결과가 나쁠 수도 있다. 반대로 좋은 일을 나쁜 동기로 하는 것도 가능하다. 금연 단지라는 좋은 결과는 과연 좋은 동기로 만들어졌는가? 혐오와 경멸이 그 배후에 있지는 않을까?
혐오와 냄새는 아주 강한 연결고리가 있다. “어딘가 구린 냄새가 난다.” 우리는 비도덕의 증거를 냄새로 표현한다. “무신사 냄새 나” 개성 없는 패션을 혐오하는 표현이다. 영화 기생충을 보았는가? “지하철 냄새”, “행주 삶는 냄새”가 난다며 부자 가족들은 계급이 낮은 자들을 보며 코를 막았다. 관객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듣는다. 신기하지 않은가! 어린애들조차 왕따인 친구를 보며 코를 막고 냄새가 난다며 괴롭힌다. 냄새와 혐오의 연결은 인류 보편적 본능이다. 나치는 유대인에게 악취가 난다고 광고했다. 알다시피 나치는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 심리를 다루는 측면에서는 가히 천재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악취와 혐오를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담배 냄새를 좋아하는 나는 담배 냄새에 악취라는 낙인이 찍히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만일 그렇게 역겨운 냄새라면 비행기 안에서 담배 피우던 그 시절은 어떻게 평가되는 걸까? 물론 담배를 혐오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혐오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담배처럼 생명을 해치는 존재일 테니까. 그러나 나는 담배가 악취로 혐오 받고 있다는 사실이 걱정된다. 흡연자들이 악취가 난다는 이유로 아파트 단지에서 쫓겨나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나는 담배에 대한 혐오가 흡연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것이 걱정이다. 왜냐하면 무조건 이어지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한국인들한테서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의 마늘 소비량을 보면 충분히 그럴만 하다. 한국인이 마늘을 끊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국인과 마늘 냄새는 분리할 수 없다. 그런데 만일 외국인들이 마늘 냄새가 악취라고 말하며 우리를 보고 코를 막는다면 어떨까? 한국인을 혐오하고 싶다면 우리에게 고약한 마늘 냄새가 난다고 광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잠깐! 담배도 마찬가지 아닌가? 흡연자들이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들과 담배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흡연하는 인종이다. 그러나 비흡연자 인종은 담배에서 악취가 난다고 광고하고 있다. 흡연자 인종에 대한 은밀한 억압이 느껴진다. 그들은 점점 격리당하고 있다!
끊임없는 불쾌한 질문들. “비흡연자의 힘이 어떻게 이렇게 커졌을까?”, “내가 만났던 사람 중 담배 냄새를 못 견디는 사람은 왜 꼭 여자일까?” 그러나 그만두자. 나는 왜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글을 쓰고 있는가? 혐오를 멈추어야 한다든지 하는 고귀한 동기는 아닌 것 같다. 혹시 이런 이유는 아닐까?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무서운 것이다. 그들이 담배 냄새가 싫다고 할 때, 나는 내심 상처를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담배 냄새는 곧 우리 아버지 냄새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메가파이어”라는 소중한 추억이 공격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 글도 옹졸한 복수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두려움에 떠는 겁쟁이가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방어하고자 하는 시도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혹시 기분이 나빴다면 부디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
다정하고 유머 넘치는 나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담배를 끊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나에게 화를 내셨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화장실에서 울음을 터트렸었다. “남자가 담배도 안 피워요?”라고 아버지에게 말했던 여자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담배를 피우는 어떤 남자랑 결혼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녀를 낳아 부모가 되었을 것이다. 자녀는 지금쯤 대학에 다니고 있을까? 나는 상상해 본다. 그녀의 아들도 담배를 배운다. 부모님 덕분에 냄새에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남자라면 담배를 피워야 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담배를 피우고 수업에 들어간다. 그가 짝사랑하는 여자의 옆자리가 비어있지만, 그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결국 그녀를 지나쳐 그녀의 뒷자리에 앉는다.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으~ 담배 냄새 좀 빼고 오지! 역겨워”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담배 냄새가 나는 그의 곁에서 빠르게 사라진다. 그는 오늘도 혼자 귀가한다. 그날 저녁 그는 엄마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아파트 단지가 금연단지로 바뀌었다는 소식이다. 엄마, 아빠, 아들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단지 밖까지 걸어 나간다. 이웃들은 걸어 나가는 그들을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저길 봐! 꼴초 가족이야! 악취 나는 사람들이야! 단명할 사람들이야!” 그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이웃들의 눈빛을 살핀다. 남편은 담배를 피우면서 고민한다. “이사를 가야 할까? 금연 단지로 바뀌지 않는 곳, 흡연자들이 살기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아버지, 이 정도면 복수가 되지 않을까요? 담배 혐오자들아, 더욱더 노력해다오!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도록! 아, 참고로 나도 깨끗하고 우월한 인간인 비흡연자다. 나도 기꺼이 당신들과 함께 코를 막아 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