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읽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by 재채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은 혼돈을 마주함에 대한 책이다.


작가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물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혼돈뿐인 세상에서, 물질뿐인 이곳에서 나는 중요한지, 인생의 의미가 있는지.

과학자였던 아버지는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겐 그러한 대답이 절망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듯했다.

아버지는 활기차게, 하고 싶은 대로,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갔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대답을 듣고 난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왜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런 작가에게 다윈의 명언인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를 말해 주었다.

그러나 작가에게 그 문장은 장엄함을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라는 비난처럼만 다가왔다.


작가는 우울했고, 결국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다음에는 꼭 성공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살아가고 있을 때

그녀의 인생에도 좋은 일이 생겼다.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그 남자도 그녀를 좋아해 주었다.

그와 동거하며 너무나 행복한 일상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여자와 부적절한 행동을 하였고 남자는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녀의 인생은 다시 혼돈으로 가득 찼다. 그동안 쌓아 온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녀는 혼돈 앞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어차피 무너져내릴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던 그녀는 일생의 연구가 파괴된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았던 한 학자를 알게 된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 과학자였던 그는 알려진 물고기의 5분의 1을 발견한 사람이다.


데이비드는 화재로 자신의 연구가 다 불타도 절망하지 않고 바로 일에 착수했다.

아내가 죽어도 무너지지 않고 다음 아내를 만나고 앞으로 나아갔다.

지진으로 일생의 연구가, 모든 물고기 표본이 바닥에 쏟아져도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호스로 물을 뿌렸다.

물고기 비늘에 이름표를 바늘로 꿰맸다.


그는 물고기에게 이름을 붙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매번 혼돈이 들이닥쳤지만, 질서를 부여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그를 압도적인 혼돈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게 해주었을까.


작가는 그 비밀을 알아내야만 했다.

혹시 떠나간 남자가 작가에게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데이비드도 신을 믿지 않았다.

데이비드 역시 진화론을 받아들였고,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혼돈 앞에서 무엇이 그를 계속해서 살게 했을까

작가는 그 비밀을 알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작가가 알아낸 비밀은 뜻밖이었다.

결국 데이비드 스타 조던도 거짓말에 의지했다.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라고 믿었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생명에는 사다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곳에 도덕적인 가치를 담고있는 계층구조가 있다고 믿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자신의 숭고한 선교활동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기만이 그를 불굴의 사나이로 만들었다.


바로 그 기만이

그가 다른 사람을 협박하도록

그가 살인하도록

살인을 은폐하도록

그리고 우생학을 신봉하도록

우생학을 근거로 수많은 사람을 불임으로 만들고 감금하고 학대하는 데 앞장서도록 만들었다.


작가는 더 이상 그를 존경할 수 없게 되었다.

그의 기만이 무시무시한 악을, 수많은 고통을 초래했다.


작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지 않은가?


그러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돈과 명예를 누리며 살았다.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싸운 사람으로 여전히 존경받는다.

그가 전쟁이 우월한 유전자는 전장에서 죽이고 부적합한 사람을 번식하기 만들기 때문에 반대했다는 사실은 잊히고 말았다.


기만하며 살았던 그에게 아무런 심판도 없었다면, 그의 삶을 진정으로 부정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하늘이 그의 인생을 대신 부정해주었다.


그의 일생을 바친 연구는.

물고기를 발견하고

물고기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물고기를 연구하고

물고기의 계층구조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는 물고기에게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가 결국 발견한 것은

조류, 양서류, 파충류는 있지만

어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고기는 진화적으로 동일한 계통을 가진 하나의 집단이 아니다.

물고기의 내부구조는 서로 너무나 상이하다.


다양한 종들이 물에 살고 있었을 뿐.

물고기라는 종이 있다고 하는 것은

산에 사는 종이 있다고 하는 것처럼 틀린 말이다.


물고기의 계층을 발견하고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철저히 부정당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혼돈은 데이비드의 인생을 모두 잡아먹었다.


작가는 철저한 무신론자였지만 이 세상 어딘가 정의가 있는 것만 같은 달콤한 환상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작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추진한 우생학 정책으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았다.

수용소에서 서로 도와가며 생존한 사람들을 만나고 깨달았다.


우리는 중요하다는 것을


우주적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서로에게 정말 중요할 수 있다.


작가는 우생학의 오류를 보며 깨달았다.


혼돈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감히 혼돈에게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던 조던은 틀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 적합한 인간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다윈이 발견한 것은 정반대이다.

종이라는 것은 항상 변하며 그 구분은 임의적이다.

어떤 특성이 더 좋은지, 적합한지, 우월한지는 절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다양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것은 민들레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세상은 혼돈이며. 질서는 인간의 교만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혼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혼돈은 나쁜 것이 아니다.

혼돈은 혼돈일 뿐

혼돈이 좋은 것을 줄 수도 있다.


사랑하는 남자가 떠나자 작가는 혼돈을 만났다.

그러나 그 혼돈은 그녀에게 새로운 직장을

그녀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새로운 애인을 가져다주었다.


이 책은 혼돈을 마주함에 대한 책이다.


혼돈뿐인 이 세상에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하다.

혼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