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존재하지 않을 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은 후

by 재채기



이 책은 나의 인생 책으로 등극할 예정이다.


작가의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 진정성 있는 에세이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에 대해 꼭 필요했던 평전이기 때문이다.

철학과 과학 그리고 역사에 대한 교양서이지만 소설보다 재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가의 고민이, 이 책의 주제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너무나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중요한지, 내 인생에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다윈의 진화론으로 깨져버린 나의 영혼은 안주할 곳을 찾는 중이다.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한때 다윈이 말한 이 장엄함을 나는 본적이 있다.

그 장엄함에 압도당해 나는 그것으로 인생을 살아가기에 충분하다고 바로 생각해버렸다.


그러나 그 장엄함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압도적인 시각효과, 화려한 액션으로 채워진 영화가 있다고 해보자.

그 영화의 모든 장면이 장엄하다.

그러나 그 영화에는 아무런 스토리도 없다.

그 어떤 메시지도 없다.


그렇다, 그 영화는 장엄할 뿐이다.

나에게 다윈의 세계관도 그저 장엄할 뿐이다.


그 영화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의미도 없다.

다윈의 세계관 역시 중요하지 않고 의미가 없다.




작가는 끝까지 다윈의 세계관을 버리지 않았다.

작가는 끝까지 거짓말에 의존하기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우리가 중요함이 틀리없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우주적인 관점에선 우린 하찮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만큼은 나는 중요한 존재일 수 있다.

우리는 중요하지만, 누군가에게 중요하다.


나는 이 답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가 '책'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는다고 해보자.

사전을 검색하면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이라고 나온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이", "묶는다" 등의 뜻을 알아야 한다.

다시 "종이", "묶는다"의 뜻을 사전에 검색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검색해 갈 수 있다.


계속해서 이어간다면

우리는 이 모든 단어에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어떤 궁극적인 단어나 정의를 만나게 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궁극의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어느 순간 정의는 순환하기 마련이다.


서로가 서로의 의미를 부여해준다.

스스로 의미를 가진 단어는 없다.

수많은 단어가 그물망을 이루며 의미를 생성해 낸다.


나는 인간도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리고 실존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난 인간 스스로 의미를 생성해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없지만

나는 너의 의미가 되어줄 수 있다.

그리고 너도 나의 의미가 되어줄 수 있다.


그 그물망이 모인다면

나는 우리는 중요하다고, 의미가 있다고 말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천천히 그것이 초점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는 혼돈을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물고기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고 말한다.


나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는 결론이 될 수 없다.


혼돈을 인정하는 일은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이 책이 중간에서 멈추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조던 피터슨으로부터 배운 것,

그리고 아마 피터슨은 융에게 배운 것,

그것은 바로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혼돈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우리가 세운 질서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즉, 모든 질서는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물고기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후

바다 동물들은 더 세세하게 분류되었다.

새로운 분류체계가 등장했다.


마찬가지로 사랑했던 남자가 떠나고 혼돈이 찾아왔지만 작가는 새로운 직장, 새로운 애인을 만났다.

삶의 새로운 질서가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혼돈은 항상 존재한다.

그 혼돈이 우리를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기존의 질서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처럼 기만해서는 안된다.

불굴의 의지로 기존의 질서를 추구하는 것은 고통을 의미없이 생산해낼 뿐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혼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한다.

작가의 말처럼 혼돈이 좋은 것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우리는 혼돈 깊이 들어가 그곳에서 새로운 질서를 발견해서 올라와야 한다.


기존의 질서, 나의 신념, 나의 세계관을 버리기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나의 사랑스러운 자식이자, 나 자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그것을 죽이고 새롭게 부활시켜야 한다.

물고기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분류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 자신이자, 아들인 예수님이 죽고 부활한 것처럼 말이다.







이 멋진 책을 써준 룰루 밀러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 나는 정확히 이런 종류의 책을 쓰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

-W.B 예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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