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을 걸다.
오래된 나무에게로 가는 동안 싱클레어는 내부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질문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벅찬 심장은 여전히 강하게 뛰고 있었고, 그것은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았다. ‘별의 아름다움으로 나는 무엇을 구해야 할까?’ 명확한 답을 구하지는 않았어도, 그는 자신이 거부할 수 없는 직감 같은 것에 휩싸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싱클레어는 교만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늘 자신의 선택을 가볍게 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늙은 벗과 대화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결정할 것이다. 오래된 나무 앞에 섰다.
“그토록 소망하던 별을 갖게 되었어. 이 별은 내게 깊고 진한 이야기를 일러주려 하는데 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이 별의 아름다움으로 나는 무엇을 구해야 할까?”
오래된 나무는 이 젊은 청년이 어린 시절에 내디뎠던 한 걸음을 기억하며, 다시 한 걸음 나아가는 그의 모습을 기특해하면서 옛날이야기를 하나 들려줬다.
“오래전 한 아버지가 자신의 갓 태어난 아들을 위해 씨앗 하나를 심었단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 아버지는 아이를 그와 같이 다섯 살이 된 나무에게로 데려갔지. 그리고 말했단다."
"아들아, 이 나무는 네가 태어날 때에 심은 나무란다. 이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만큼 너도 결실을 맺으면서 살아가렴.이라고."
"그 아들은 나무를 깊이 사랑했고 그 향기를 닮아 결실을 맺는 사람으로 성장했단다. 그 후손들도 결실이 있는 삶을 소망했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그 후손 중 한 아이가 처음으로 나무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왔단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무 가 하는 말을 듣기 위해 기다렸어. 결국 그 아이는 처음으로 나무와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단다. 싱클레어야, 이제 네가 한 걸음 나아가고 말을 걸어야 할 대상이 다시 생긴 거란다. 별이 일러주는 것은 나도 알 수 없어. 오로지 네가 내면의 깊은 곳에서 기다려야만 해. 그리고 별을 만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너를 받아들여 네 빛을 품게 될 거란다.”
오래된 나무의 말은 청년의 내부에서 출렁이던 파도를 가라앉혔다. 별의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채우려고 했던 그의 심장은 이제 새로운 방향성을 받아들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무와의 대화는 필연적이었다.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있었고, 아이는 나무를 바라보고 자랐다. 매 순간이 성장의 연속이었던 아이의 영혼과 이제 자신의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무와의 대화는 오랜 기다림을 몰랐다. 아이는 한 걸음 크게 내디뎠고, 나무는 원숙한 의지로 소년에게 다가갔다.
과거 그 순간과는 달리 별은 침묵을 지켰다. 기다림 또한 힘들게 여겨졌다. 자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그에게 삶 전체를 멈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심장에 손을 얹고 말을 해보기도 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속의 공허한 부분에 집중해보기도 했다. 따스함이 천천히 깃들고 있었지만 별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이 밤의 하늘을 청년은 오랫동안 잊지 않을 것이다. 비록 자신의 빛은 아니지만 무수한 별빛들이 가슴속 심장을 쉬게 만들었다. 집에 도착하여 창문을 열고 밤공기를 들이쉰다. 오늘의 무게만큼 무겁게 눈이 감긴다.
새벽부터 일어난 그는 분주했다. 얼굴에는 밀가루가 묻고 부엌엔 빵 굽는 냄새가 가득하다. 빵을 굽기 전에는 수국이 가득한 그의 정원에서 기도를 드린다.
신께서는 이 시간에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모든 경이로움을 그에게만 보이려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구두장이나 무두장이가 우연히 신의 축복을 받는 민화를 읽으면서 ‘왜 작가들은 빵 굽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욕조만큼 큰 볼에 계란과 설탕이 잘 풀려 거품이 제법 부풀었다. 곱게 체를 친 박력분을 넣고 녹인 버터와 우유를 넣는다. 평소와 같은 케이크를 만들 때는 계핏가루를 넣기도 했지만, 오늘 같은 날은 달콤한 것이 좋을 것 같아 바닐라향을 더 넣었다. 이렇게 큰 케이크를 반죽하고 나면 항상 녹초가 돼버리고 만다.
화덕에 반죽을 넣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캐모마일을 끓인 차, 토마토와 녹인 치즈를 얹은 베이글로 아침식사를 한다. 시간을 축내고 늘어져있는 것을 싫어하는 싱클레어지만 그의 아침식사는 절대 초조함이 없다.
오래전, 늙은 그의 조부가 아침식사를 마치고 어린 그에게 “영원히 잃어버릴 것만 같이 나를 불러보라.”라고 하였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음에도 모든 마음을 담아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불렀다. 병약했던 노인은 오후가 되기 전에 영원히 눈을 감았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 손에 자라난 그에게 할아버지의 존재는 너무도 컸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고 있던 노인은 죽음이 그에게 인사했을 때, 손자의 마음속에서 자신을 거두었다.
그날 이후로 찾아오는 모든 아침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마음으로 맞이했다. 그럴수록 순간들이 모여서 그의 의식 속에서 영원이라는 시간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에게 아침은 모든 그리움의 회복이기도, 잔잔한 하루의 시작이기도, 신의 사랑을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갓 구워져 나온 케이크 시트에 크림을 바르기 시작했다. 나무와 대화가 가능해지고부터 그는 사물에 마음을 깃들이는 법을 배웠다. 달콤한 상상을 순간에 담는다. 성에는 세 명의 제빵사가 있었지만, 그런 그의 케이크가 특별했기에 대부분의 행사 케이크는 그의 몫이 되곤 했다. 모든 데코레이션이 끝나자 기다리고 있던 어린 소년들이 여느 때와 같이 분주한 동작으로 케이크를 옮긴다. 가운과 모자를 벗고 하객의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발걸음을 옮긴다.
아름다운 신부는 소녀 때의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웃음은 오래전에 싱클레어의 마음에 열병을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날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다. 흰색 턱시도가 잘 어울리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그녀의 옆을 채웠다.
짧은 머리카락 밑 이마에는 젊은이답지 않은 주름이 가늘게 지어지면서 싱긋한 웃음을 싱클레어에게 건넨다. 식장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신랑과 신부의 별은 평범하지만, 무척 단단하여 결코 부서지지 않을 단아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어릴 적 함께 석양을 바라보던 세 아이 중 한 명은 선장이 되었고, 한 명은 선장의 아내가 되었으며 다른 한 명은 제빵사가 되었다. 신혼여행이 끝나면 두 부부는 오랜 항해를 함께할 것이라 했다. 신랑이 먼저 그에게 악수를 건넸다. 석양을 바라보던 그들만의 장소에서 영원히 함께 하자는 그 약속을 셋 중 어느 하나도 잊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기에 아름다운 이별로 그네들에게 여겨졌다.
애틋한 마음이 쌓이는 이별의 순간에 신부가 남편과 친구의 손을 잡고 부부의 별이 단단하고 선명한 빛을 잃지 않기를, 친구의 삶에 신의 축복이 항상 넘치기를 짧게 기도했다. 예식은 끝났고, 하객들도 돌아갔지만 그 현장의 경건함은 싱클레어와 함께 남아있었다. 이제는 그의 별에 집중해야 할 때.
형제 같은 벗을 보냈기 때문일까? 기억은 계속 유년시절로 흘러간다. 멀리 버드나무가 굽어있는 시내를 지나쳐 두 아이가 집으로 오고 있다. 할아버지를 흉내 내어 빵을 구웠고 두 아이는, 특히 소녀는 선명한 미소로 그에게 보답하곤 했다. 그 두 아이의 분홍빛 미소는 오늘날 그네들의 별빛이 되어버렸다.
사랑했던 사람들, 순간들은 단단한 별빛을 머금고 미래로 향했다. 그것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별이 그의 빛을 띠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별을 어떻게 불러내야 할까? 그는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돌아오는 길의 그의 영혼은 차분해져 대지와 바람을 쓰다듬었다. 여느 때처럼 그의 입술에서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의 노래를 기억하는 이 길이 먼저 반응한다. 흙은 보드라워지고 싹트는 것들이 힘에 공명했다. 그의 영혼에 깊고 진한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때 무거운 무엇인가가 그에게 말했다.
“나를 깨운 것이 그대인가요? 당신의 노래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 감정으로 자꾸 자극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주 작은 목소리여서 하마터면 스쳐 지나갈 뻔했다. 별이 말을 걸어온 것이다. 별의 목소리는 작지만 선명하고 맑은 기운이어서 매력적인 아이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나의 노래는 아무것도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렸고, 우리가 서로 공명하여 나아가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것 밖에 없군요.”
싱클레어는 정말 그 이상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불분명한 표현이었지만 그의 내부엔 강직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별이 그의 심장에 들어오고 있었고, 조금씩 특별한 빛을 띠었다.
“한순간도 쉬지 않는 심장은 단단한 것이어서, 깊은 마음을 새기기란 쉽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당신의 깊은 곳에 자리잡을 것이고 온전하게 빛을 발할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나의 주인입니다. 나에게 멈추지 않는 노래를 불러주세요. 나의 빛은 당신이 꿈꾸던 곳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아직 아침이 열리지 않은 새벽의 하늘에는 여전히 그의 별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수국이 가득한 그의 정원, 잠시 감겨나가는 바람마저 청량하다. 기도를 마친 그의 시선은 부정확하다. 낯익은 모든 풍경이 마지막이다.
아마도 모든 날들의 새벽이 그랬듯이, 앞으로 맞게 될 새로운 새벽도 그에게 경이로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달큼하고 고소한 내음이 스며진 가운을 고이 접어 배낭 깊숙한 곳에 넣는다.
캐모마일을 끓인 차와 베이글로 아침식사를 한다. 영원히 잃어버릴 것만 같은 마음으로 차근차근히 많은 것들을 불러본다. 그럴수록 그 모든 것들이 마음 깊이 박혀서 영원처럼 그와 함께 하리라.
울음을 터뜨리며 신의 축복을 비는 여인도 있었으며, 그가 굽는 빵을 다시 볼 수 없어 아쉬워하는 노파도, 나침반을 선물하는 소년도 있었다. 그 모든 장면이 흐트러지고 청년의 뒷모습이 멀어진다. 오래된 나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뿌리 깊숙이 알 수 있는 존재감. 별의 체험보다 더 강직한 기운이 그의 심장에 몰려온다. 별은 더 신비로운 빛을 띠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감정의 조각들이 그에게 더해질수록 이별은 가까워진다.
이제 갈게. 안녕.
성 밖의 모든 낯섦보다 바람이 먼저 찾아왔다. 그리운 곳으로 향하던 바람은 여느 새벽 때처럼 그를 감고 지나간다. 아직 남아있던 제빵사의 체취가 모두 씻겨갔다. 비현실감이 야릇하게 눈앞에 펼쳐졌고, 별은 그에게 노래하기를 청한다.
수많은 새벽을 통해 느꼈던 그 흥분이 알지 못했던 멜로디를 그에게 일러준다. 나무의 진실한 기억이, 신께서 허락했던 경이로움이 노랫말이 되어 머릿속에 울린다. 빵을 굽던 것처럼 익숙한 노래가 포근하게 새어나간다. 모든 것들이 익숙한 것이 되어버린 듯한 풍경이 펼쳐질 때, 그가 걷는 새로운 길들도 그의 노래를 기억하려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