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이 터졌다. 다행히 난 구경꾼이었고 당사자들은 나와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를 같이 하고 있는 두 동기였다. 주먹다짐보다 더 무섭다는 키보드 전쟁이었다. 발단은 이랬다.
K라는 친구가 커뮤니티 게시판에 이런 기사를 올렸다. 미국의 교도소 수감자 수가 얼마나 상상 이상으로 많은지를 데이터로 시각화한 내용이었다.
https://mkorostoff.github.io/incarceration-in-real-numbers/
이 게시글을 본 C라는 친구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며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댓글은 단순 반대의견 표시를 넘어 비방과 욕설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왜 갑자기 C는 K에게 그렇게까지 분을 뿜어냈을까?
C는 중국인 유학생이고, K는 미국인이다. 시진핑 vs. 트럼프 구도가 연출됐다. 위 기사에는 미국의 교도소 수감자 수가 인구가 훨씬 큰 중국보다 더 많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 230만, 중국 170만). 여기까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중국 교도소 수감자의 과반 이상인 100만 명이 위구르족이라는 설명이 붙은 것이 문제였다. 우리가 뉴스에서 많이 들어본 그 '신장 위구르' 말이다.
C는 분개했다. 먼저 미국 등 서양에서 대중들이 접하는 중국에 대한 인식이나 자료는 근거가 없다고 일갈했다. 정확히는 미국 내 중국 관련 뉴스가 포르노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중국 내 위구르족이 100만 명이나 수감돼 있다는 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며, 신빙성이 떨어지는 한 NGO 대표의 발언에 근거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도 있다. 자료 출처에 대한 불신이 있을 수 있고, 그래서 제시된 근거가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럴 권리와 자유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C는 K에게 이딴 식으로 싸움 거는 게 재수 없다며, '일부러 위구르족 이슈를 이용해서 중국을 돌려차기 하려는 속내를 모를 것 같으냐?'는 둥 매섭게 쏘아붙였다. 토론은 없었고 분노와 비방만 있었다. 이런 C를 지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K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C의 이런 반응이 어이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해당 게시판 담당의 교수의 뒤늦은 중재로 더 이상 욕설, 비난 댓글은 달리지 않았지만, 여러 생각을 들게 한 해프닝이었다.
첫째, C는 현재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 불만이 많이 쌓인 상태다. 트럼프 정부가 코로나 사태를 포함해 근거 없는 비방으로 중국을 지속 공격하고 있다는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민감하다.
둘째, C는 중국 신장 지역에서 위구르족이 한족의 엄청난 정치적 압박과 핍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믿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맞다. 근거의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중국 정부 주장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세뇌 교육이 잘 된 건가.
고백하자면 사실 난 원래 저 'C' 자리에 '중국인'을 넣어 생각했다. 중국인들은 트럼프 정부에 불만이 많다. 중국인들은 신장 위구르 지역 관련 뉴스를 믿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자기 정부 주장과 근거를 굳이 의심하지 않는다. 중국인들 생각엔 자기들이 누구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보다는, 미국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다는 불만만 가득하다. 중국인들은 참 문제가 많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나 표현은 잘못됐고 위험한 것이다. C는 중국 인구 14억 명 중 하나에 불과하다. 지극히 섣부른 일반화인 것이다. 코로나 백신을 한 명에게만 임상실험을 한 뒤 14억 인구에 배포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이런 일반화에 익숙하다. 편리하지만 나쁜 습관이다. 우리 1번 뇌는 편리하고 빠른 길을 선호한다. 생존에 유리한 선택이지만, 자주 돌아봐야 한다. 방금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그렇다는 판단이 들면 2번 뇌를 꺼내 써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 중 하나지만, '한국인'이 아니라 '최혁재'다. '한국인'이란 모델은 실존하지 않는다. 한국 국민이라는 태그가 붙은 각기 다른 5천만 명이 존재할 뿐이다. 예를 들면 '한국인은 착하고 중국인은 나쁘다'는 식의 명제는 허상과 허상을 대조하는 것으로, 허무맹랑한 명제다. 당신도 나도 '한국인'이란 한 단어로 정의될 수 있는 공산품이 아니다(그렇게 믿고 싶다).
물론 여기에 누군가는 '평균'을 들이밀지 모른다. 개개인의 다양성은 인정하지만 '평균적으로' 한국인은 이렇고 중국인은 저렇지 않으냐고 말이다. 그럴듯해 보이는데, 여기서 문제는 분산, 즉 평균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정도가 간과된다는 점이다. 분산이 클수록, 평균으로 개개인을 대표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평균 집값을 강남에 갖다 댈 수는 없듯이.
C와 K가 싸운 것은 중국인과 미국인이 싸운 것이 아니다(나중에 그렇게 번질 수는 있지만). 그렇게 보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난 스스로 되뇐다. 그냥 C와 K가 다툰 것이고, C의 행동으로 '평균적인' 중국인에 대한 내 머릿속 이미지를 수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한 명은 그 어떤 집단도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믿음을 수정하는 데에는 아직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동기들의 다툼으로 새삼 일반화에 익숙한 내 게으른 사고방식을 반성하게 됐다. 남자, 여자, 군인, 미국인, 일본인, 학생, 직장인, 의사, 기성세대, 청년층. 그런 건 없다. 단어가 하나라고 대상도 하나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기억해야겠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Sharon McCutcheo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