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봇 구독에만 월 13만 원을 쓰는 이유

하나만 쓰면 안 돼?

by 최혁재


카드 명세서를 보면 이게 맞나 싶어 웃음이 나온다. ChatGPT $20, Gemini $20, Grok Premium $30, 그리고 이번 달부터 Claude $20. 합치면 매달 $90. 한 달에 13만 원을 AI 챗봇 구독료로 쓰고 있다.


주변에서 물어본다. "하나만 쓰면 안 돼?" 안 된다. 이유를 설명하려면 좀 길어진다.



ChatGPT — 시작은 여기서부터였다

2022년 말, 모두가 그랬듯 나도 ChatGPT로 AI를 처음 접했다. 처음엔 신기한 장난감이었다. 그러다가 2024년에 들어서야 업무에 슬슬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메일 초안, 보고서 요약, 코드 리뷰 보조. "이거 꽤 쓸만한데?" 싶었다.


그렇게 1년 넘게 ChatGPT를 주력으로 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성능 향상이 정체된 느낌이 확 들었다. 새 버전이 나올 때마다 벤치마크 점수는 올라갔지만, 실제 내 업무에서 체감되는 차이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번 업데이트로 XX 30% 향상!" 같은 문구가 그저 마케팅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거다.


그래도 ChatGPT를 아직 놓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 보이스 모드다. 이건 솔직히 다른 모델이 아직 따라오지 못하는 영역이다. 진짜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있다. 영어 연습을 하기에는 이만한 게 없다. 발음 교정까지 해준다. 일하다 쉬는 시간에 이 친구와 영어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게 일상이 됐다.



Gemini — 구글 생태계의 힘

ChatGPT에 슬슬 한계를 느끼던 차에 Gemini 3가 나왔다. 특히 코딩 쪽에서 "이건 좀 다른데?"라는 느낌을 받았다. 코드 생성 퀄리티도 괜찮았고, 맥락을 잡는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쓰면 쓸수록 2% 아쉬웠다고 할까. 아직은 Agent라고 부를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이 아이디어를 SQL 코드로 짜고 Snowflake에서 테스팅까지 해줘" 같은 조금 더 자기 주도적인 작업 수행이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여전히 내가 하나하나 지시하고 에러를 디버그 해야 했다.


그래도 Gemini를 계속 쓰는 건 구글 생태계와의 시너지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업무보다는 개인적인 사용에 있어 더 강점이다. Gmail, Google Docs, Google Calendar, Google Maps — 내 디지털 생활의 반이 구글 위에 있다. Gemini가 이 모든 것과 연결돼서 작동한다는 건 다른 모델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강점이다.



Grok — 거칠지만 솔직한 녀석

Grok은 좀 특이한 녀석이다. 다른 모델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는 동안, Grok은 거침없이 답한다. 검열이 거의 없다. 어떤 질문이든 일단 답을 준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든, 논란이 있는 주제든. "이건 제가 답변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일이 거의 없다.


다만 그 답의 수준은... 솔직히 말하면 아직 똑똑한 중학생 정도랄까. 정보의 정확도가 떨어질 때가 꽤 있고, 깊이 있는 분석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다. 그래도 "일단 아무 말이라도 해줘"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다른 모델들이 입을 다물고 있을 때, Grok은 뭐라도 던져준다. 그걸로 시작점을 잡고 나서 다른 모델로 교차 검증하는 식으로 쓴다. 업무적으로는 브레인스토밍에 쓰면 좋고, 개인적으로는 심심풀이로 딱이다.



Claude — 코딩의 왕

Claude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올해 들어서다. 사실 이전에도 업계에서 워낙 핫해서 이런저런 좋은 리뷰들은 많이 봤는데, "ChatGPT + Gemini면 업무용으로 충분하지 않나?" 하고 넘겼었다. 무엇보다 난 하드코어한 개발자는 아니니까. 그런데 주변 동료들이 하나둘 Claude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Claude가 답이야"라는 말이 계속 들려왔다.


결국 이번에 월 $20 구독을 시작했다. 써보고 나서 바로 이해했다. 왜 다들 그렇게 말했는지.


다른 건 몰라도, 코딩을 할 때는 이제 Claude만 쓴다. 코드의 맥락을 이해하는 깊이가 다르다. 단순히 코드를 생성하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 안에서 일관성 있는 코드를 짜준다. 지난 글에서 AI 덕분에 "며칠이면 비슷한 결과에 도달한다"고 썼는데, 그 며칠을 또는 몇 시간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주로 Claude다.



춘추전국시대

결론적으로, 아직은 춘추전국시대다. 하나의 모델이 모든 걸 다 잘하는 시대는 오지 않았다. 어쩌면 안 올 수도 있다.


각자 포지션은 이렇다. ChatGPT는 보이스 모드의 왕이다. Gemini는 구글 생태계 시너지다. Grok은 검열 없는 솔직함이다. Claude는 코딩의 왕이다. 겹치는 영역이 없지 않지만, 각자가 압도적으로 잘하는 한 가지씩은 분명히 있다.


매달 $90이 아깝지 않냐고? 솔직히 전혀...는 아니고 쪼끔 아깝다. 특히 ChatGPT는 회사에서 Enterprise 계정을 주기 때문에 내 개인 계정은 구독취소해도 괜찮다. 근데 이게 회사 계정으로 하고 싶지 않은 대화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은 완전히 갈아타고 싶지가 않다. 아무튼 이 네 개의 모델이 각자의 영역에서 내 업무 생산성을 끌어올려주는 걸 생각하면, 이건 남는 투자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여러 모델을 써보고, 적재적소에 최고의 모델을 골라 쓰는 것. 이것도 하나의 업무 능력이 되는 시대다. AI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어쩌면 이미 낡은 발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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