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내 직업을 대체할 수 있을까

재무본부 데이터 애널리스트의 솔직한 생각

by 최혁재


지난 글에서 AI가 생산성을 진짜로 올리는지 따졌다. 그런데 그 글을 쓰면서 더 큰 질문을 피하고 있었다.


내 직업이 AI로 대체될 수 있을까?


내 일을 설명하는 게 약간 까다롭다. 직함은 비즈니스 아키텍트(Business Architect). 소속은 소프트웨어 회사의 재무본부. 업무의 절반 정도는 SQL이나 Python으로 코딩하는 일이다. 개발자와 다른 점은, 어떤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거다. 대신 다른 팀들이 제대로 된 분석을 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하고, 가공하고, 강화하는 일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데이터 기반을 닦는 것, 이렇게 설명하면 가장 가깝다.


보다시피, 겉으로 보면 AI가 못 할 게 없어 보인다. 데이터를 가지고 노는 일이니까.



GPT-5 전까지는 솔직히 겁먹었다


2024년까지만 해도 "5년 안에 이 일도 대체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SQL 쿼리는 AI가 이미 꽤 잘 짰고, Python 코드도 그냥 물어보면 나왔다. 완벽과는 아직 거리가 멀기는 했지만. 아무튼 내가 하는 일의 겉면만 보면, AI가 못 할 게 별로 없어 보인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GPT-5가 나왔다. 그리고 모두를 실망시켰다. 나는 실망하고 또 안심했다.


앞선 글에서 썼던 그 스케일링의 벽이 현실이 됐다. AI 연구자들이 "기한 초과, 과대광고, 그리고 실망스러운"이라고 평가한 그 결과. 막연히 갖고 있던 두려움이 조금 내려갔다. 5년이라고 생각했던 타임라인이 꽤 길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현실은 역설적이다


2025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나는 인사고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AI 덕분이다. 이전보다 업무 속도가 빨라졌고, 커버하는 일의 범위가 넓어졌다. 예전엔 사흘 걸리던 데이터 가공이 하루로 줄었다. 남은 시간에 더 깊이 들어가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AI가 내 일을 잘 도와줄수록 회사에서 내 입지는 더 강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낙관만 하는 건 아니다


장기적으로 나 같은 직무가 지금보다 적게 필요해질 거라는 건 명확하다.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을 할 수 있게 되면, 회사는 사람을 덜 뽑는다. 대량 해고 글에서 썼던 그 간단한 산수다.


다만 피해를 먼저, 크게 볼 그룹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엔트리레벨의 20대.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 정확히 주니어들이 입사해서 처음 배우는 일이다. 데이터 정리, 기본 쿼리 작성, 보고서 초안. 이 반복 작업을 하면서 감을 익히고 성장하는 구조인데, AI가 그 자리를 채우면 성장의 사다리가 사라진다.


또 하나는 AI 활용에 구조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는 50대 이상. 새 도구를 익히는 속도 자체가 느려지는 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타이밍의 문제다.


나는 그 사이에 있다. 그냥 운이 좋아서.



일단은 안심. 그러면서 동시에 불편하다


그 안도감이 20대 후배들의 줄어드는 기회 위에, 50대 선배들의 구조적 불리함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대량 해고 글을 쓸 때 느꼈던 그 survivor's guilt와 비슷한 감정이다.


AI가 내 직업을 대체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아직 아니다. 오히려 도움이 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아마 그럴 것이다. 다만 나 혼자가 아니라, 많은 직업이 같이.


얼마나 오래 내 영역이 남아 있을지는 모른다. 그저 그 영역을 계속 넓혀가면서 최대한 오래 버티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다. 10-20년 뒤는 어차피 아무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게 변한다는 사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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