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의 새로운 이름

AI를 탓하지만 법적 서류에는 다른 이유를 쓰는 실리콘밸리의 민낯

by 최혁재

뉴욕 주 정부는 2025년 3월부터 기업이 직원을 해고할 때 의무 신고서에 체크박스 하나를 추가했다. 'AI나 자동화로 인한 해고인가?' 아마존, 골드만삭스를 포함해 28,300명을 해고한 162개 기업이 이 서류를 냈다. AI에 체크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전부 '경제적 이유'였다. (HR Grapevine, 2026.2)


그런데 이 회사들은 주주 서한에서, 보도자료에서, X에서 "AI 때문에 일자리를 줄였다"고 공언하고 있었다.



AI-워싱이 시작됐다


2026년 2월, Block(구 스퀘어)의 CEO 잭 도시(Jack Dorsey)는 전 직원의 40%인 4,000명을 해고했다. 주주 서한에 이렇게 썼다. "인텔리전스 툴이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더 작은 팀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주가는 당일 24% 급등했다. (Bloomberg, 2026.3)


그런데 정확히 11개월 전 내부 메모에 도시가 남긴 말이 있다. "특정 재무 목표를 맞추려는 것도, AI로 직원을 대체하려는 것도 아니다." 미즈호 아메리카스의 애널리스트 댄 도레브(Dan Dolev)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감원의 대다수는 AI 때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아틀라시안(Atlassian) CEO 마이크 캐넌-브룩스(Mike Cannon-Brookes)는 2025년 10월 팟캐스트에서 "5년 뒤 우리 회사는 지금보다 더 많은 엔지니어를 고용할 것"이라고 했다. 5개월 후 그는 R&D 직원 900명을 포함해 전체 인력의 10%, 1,600명을 내보냈다. AI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서라고 했다.



데이터는 다른 말을 한다


가트너(Gartner)가 2025년 하반기 115만 건의 해고를 분석했더니 AI가 원인인 경우는 1% 미만이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Oxford Economics)는 한발 더 나아갔다. AI가 정말 대규모로 노동자를 대체하고 있다면 생산성이 급상승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반대라고 지적했다. 생산성 증가율은 오히려 둔화되고 있다. (Fortune, 2026.1)


도이체방크 애널리스트들은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다. "AI 레던던시 워싱(AI redundancy washing)." 과잉 채용을 정정하거나 비용을 줄이면서 AI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행태다.


클라나(Klarna)는 이 논쟁에서 드물게 솔직한 사례가 됐다. CEO 세바스티안 시에미아트코프스키(Sebastian Siemiatkowski)는 AI가 직원 700명 몫을 한다며 인력을 7,400명에서 3,000명으로 줄였다. 고객 만족도가 곤두박질치자 그는 인정했다. "우리가 너무 멀리 갔다." 그리고 다시 채용을 시작했다.



어쩌면 이건 AI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워튼스쿨 피터 캐펠리(Peter Cappelli) 교수의 말이 이 구조를 정확히 요약한다. "헤드라인은 'AI 때문'이지만, 본문을 읽으면 'AI가 이 일을 커버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말이다.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냥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투자자들이 그걸 듣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Fortune, 2026.1)


AI 때문에 해고된 게 아닌 사람들이 AI 때문에 해고됐다는 공식 발표와 함께 회사를 떠나고 있다. 그리고 그 회사들은 법적 서류에 다른 이유를 쓴다.


모두가 AI를 핑계 대는 세상에서, 진짜 AI 전환이 왔을 때 우리는 그 신호를 알아챌 수 있을까.



참고 자료


- HR Grapevine (2026.2): https://www.hrgrapevine.com/us/content/article/2026-02-11-ai-absent-as-reason-for-layoffs-in-new-york-warn-filings


- Bloomberg (2026.3):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6-03-01/jack-dorsey-s-4-000-job-cuts-at-block-arouse-suspicions-of-ai-washing


- Fortune / Oxford Economics (2026.1): https://fortune.com/2026/01/07/ai-layoffs-convenient-corporate-fiction-true-false-oxford-economics-productivity/


- CNBC / Atlassian (2026.3): https://www.cnbc.com/2026/03/11/atlassian-slashes-10percent-of-workforce-to-self-fund-investments-in-ai.html


- The Conversation (2026.3): https://theconversation.com/tech-companies-are-blaming-massive-layoffs-on-ai-whats-really-going-on-278314

매거진의 이전글이번엔 공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