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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겨울을 이겨낸 노장 과학자들

겨울을 건너는 방식을 남기다

by 경영로스팅 강정구

한때 인공지능은 실현 불가능한 꿈처럼 느껴졌다. ‘AI 겨울’이라 불리는 두 번의 침체기는 연구 자금이 끊기고 기대마저 얼어붙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눈보라처럼 몰아치던 회의와 냉담 속에서도, 두 과학자는 조용히 촛불 하나를 지켰다. 그들이 지켜낸 온기는 훗날 인류가 다시 길을 밝히는 불씨가 되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신경망은 인간의 뇌를 본떴다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계산 장치에 머물러 있었다. 퍼셉트론이라 불리던 이 초기 인공지능은 입력을 받아 단순한 기준에 따라 ‘예’ 혹은 ‘아니오’로만 반응했다. 그러나 현실은 선 하나로 나눌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가장 상징적인 실패가 ‘XOR 문제’였다. 입력값이 다를 때만 ‘참’을 출력해야 하는 이 단순한 논리는, 직선 하나로 구분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퍼셉트론은 결국 이 문제 앞에서 멈춰 섰고, 신경망은 더 이상 뇌를 닮지 않았다. 기계는 ‘생각’하지 못했고, 학습은 공허한 말이 되었다. 그렇게 첫 번째 겨울이 찾아왔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두 번째 겨울은 더 깊고 길었다. 당시 인공지능의 중심에는 ‘전문가 시스템’이 있었다. 인간 지식을 수천 개의 규칙으로 입력해 문제를 푸는 방식이었다. 초기에는 정형화된 문제에 잘 작동했지만, 현실은 언제나 예외를 품고 있었다. 환경이 바뀌고, 규칙 바깥의 상황이 등장하면, 시스템은 무기력했다.


결국 문제는 ‘배움의 부재’였다. 전문가 시스템은 기억은 했지만 배우지 못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발견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더 나은 판단을 만들어내는 머신러닝의 가능성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AI는 여전히 정적인 기계였고, 차가운 기대만이 연구실을 떠돌았다. 과학자들은 손에 쥔 꿈이 서서히 녹슬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러나 절망의 바닥에서도 두 갈래의 길이 보였다. 하나는 사고를 논리와 기호로 구성하려는 기호주의였고, 다른 하나는 뇌의 연결 구조에서 배움을 찾아내려는 연결주의였다.


기호주의는 인간의 사고를 규칙으로 번역하려 했다.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처음 제안되었을 때, 사람들은 충분한 규칙만 모으면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전문가 시스템은 그 믿음의 산물이었지만, 살아 있는 세계는 정해진 문법으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반면 연결주의는 뇌의 리듬을 닮고자 했다. 무수한 뉴런과 그 연결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을 통해, 인공지능은 정답이 아니라 의미를 스스로 찾아야 했다. 1980년대, 이 꺼져가던 불씨를 다시 일으킨 이들이 있었다. 존 홉필드와 제프리 힌튼이었다.


1982년, 존 홉필드는 '홉필드 네트워크'를 발표했다. 그는 왜곡되고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도 가장 가까운 답을 찾아내는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흐릿한 기억 조각 속에서 전체 그림을 더듬어가는 인간처럼, AI는 처음으로 ‘회상’이라는 행위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제프리 힌튼은 더 깊은 길로 들어섰다. 그는 데이터 속 숨은 패턴을 발견하는 방법을 찾았고, 1986년에는 '역전파 알고리즘'을 제안했다. 결과의 오차를 거슬러 올라가며 신경망의 연결을 조정하는 이 방식은, AI가 실패를 기억하고 수정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학습의 탄생이었다.


이 혁신은 오랜 시간 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2012년, '역전파 알고리즘'이 발표된 지 26년 만에 힌튼과 제자들이 선보인 'AlexNet'은 이미지 인식 분야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내며 AI의 부활을 알렸다. 깊은 층을 가진 신경망은 스스로 의미를 포착했고, 대규모 데이터 시대에 걸맞은 지능으로 깨어났다.


그리고 2016년, 알파고가 바둑의 신화를 넘어섰다. 인간이 만든 기보를 배우고, 스스로 경기를 반복하며 전략을 진화시킨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통해 기계가 창의성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바둑판 위에 놓인 한 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닮은 사유였다.


홉필드와 힌튼이 뿌린 씨앗은 이후의 시간 속에서 자라났다. 의료 영상 분석에서는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자율주행차는 길 위에서 생명을 지킨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인간의 말과 감정을 이해하며, 때로는 조언자로, 때로는 창작자로 우리 곁에 머문다. 기술은 도구가 되었고, 조용한 동반자가 되었다.


이 모든 혁신 뒤에는 겨울을 견디고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던 두 과학자의 인내가 있었다. 존 홉필드와 제프리 힌튼은 AI를 논문 속 수식에서 인간의 삶 속 기술로 이끌어낸 노장들이었다.


2024년, 두 과학자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들은 인공 신경망의 구조를 밝혔고, 기계가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는 단지 AI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지능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새로운 정의였다. 노벨상 역사상 처음으로 인공지능 연구가 인류 지식의 본류로 들어간 순간이었다.


그들의 연구는 단지 과학의 경계를 넓힌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 만든 도구가 다시 인간을 닮아가는 여정을 열어주었다. AI는 이제 일상이 되었고, 질문은 더욱 깊어졌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인간이 품은 물음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묻는다. 다음 겨울이 온다면, 우리는 어떤 불씨를 품고 있을 것인가.


그들이 남긴 것은 기술이 아니라, 겨울을 건너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불꽃은, 오늘도 조용히 우리의 손에서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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