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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정원: 공진화

기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by 경영로스팅 강정구

《쾌락의 정원》은 마치 꿈속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세계를 그린 듯하다. 화려한 색채와 기이한 형상들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보는 이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중앙 패널에는 나체의 인물들이 거대한 과일들 사이를 누비며 온갖 쾌락에 빠져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하늘에는 기괴한 새들이 날아다니고, 땅에는 기묘한 동물들이 뛰어다니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상상력은 15세기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대적 초현실주의를 선취한 듯한 인상을 준다. 그의 붓끝에서 탄생한 이 기이한 세계는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놀라움을 안겨준다.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활동한 네덜란드의 화가로, 종교적 주제와 환상적 이미지를 결합한 독창적인 화풍으로 유명하다. 《쾌락의 정원》은 1490년에서 151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40세에서 60세 사이였던 보스의 성숙한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부유한 시민이자 ‘성모 마리아 형제단’의 회원으로서 종교적 배경이 그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쾌락의 정원》은 종교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인간 본성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 보스의 작품은 도덕적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며 복합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쾌락의 정원》은 세 개의 패널로 구성된 트립티크 형식의 그림이다. 왼쪽 패널은 에덴동산을, 중앙 패널은 쾌락의 세계를, 오른쪽 패널은 지옥을 묘사하며 인간의 역사와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에덴동산에서는 순수한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유혹할 뱀의 모습이 이미 보인다. 중앙 패널의 쾌락의 세계는 죄악의 장면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아담과 이브가 추방되지 않았다면 존재했을 유토피아로 보기도 한다. 오른쪽 패널의 지옥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처벌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며, 보스의 상상력이 극대화된 장면을 선사한다.


보스의 작품은 당시 기술 발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5세기 말은 인쇄술의 발달로 지식의 대중화가 시작된 시기였다. 이러한 기술적 변화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보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기이한 기계장치들은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며 그의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보스는 기술 발전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드러냈다. 《쾌락의 정원》에 등장하는 기괴한 기계들은 인간에게 고통을 안기는 도구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는 기술 발전이 반드시 인간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기술은 과연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쾌락의 정원》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작품은 우리에게 기술의 혜택과 위험성을 동시에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보스의 예리한 통찰은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유효하며, 균형 잡힌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의 작품은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고민을 던지며, 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한다. 《쾌락의 정원》은 우리에게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깊은 사유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이다.


The_Garden_of_earthly_delights.jpg 히에로니무스 보스,《쾌락의 정원》




하이데거의 기술론부터 공진화론까지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는 다양한 관점은 《쾌락의 정원》처럼 복잡하고 다층적인 현실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이데거의 기술론은 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그 위험성을 지적한다. 기술 결정론은 기술이 독립적으로 사회 변화를 주도한다고 보며, 그림 속 기괴한 기계장치들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사회구성주의는 기술이 사회적 맥락과 가치관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에서 보스가 자신의 작품에 시대의 기술과 사회를 반영한 사례와 일치한다. 공진화 관점은 《쾌락의 정원》의 세 패널처럼 기술과 사회가 상호작용하며 발전한다고 설명한다. 이 네 가지 관점은 각각의 강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기술의 역할과 영향력을 더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1954년 《기술에 대한 물음(Die Frage nach der Technik)》에서 현대 기술의 본질을 '게슈텔(Gestell)'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게슈텔은 세계를 자원으로 보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사고방식을 의미하며, 이는 《쾌락의 정원》에서 인간이 자연을 도구화하는 모습과 닮아 있다.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이 존재자에만 집중하고 '존재' 자체를 망각하게 만든다고 경고하며, 기술이 인간과 세계를 '부품(Bestand)'으로 취급함으로써 인간 소외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경고는 《쾌락의 정원》 오른쪽 패널의 지옥 장면과 연결되며, 기술 남용이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기술이 진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며, 이는 《쾌락의 정원》의 왼쪽 패널에 묘사된 낙원과 연결된다. 그는 '시적 거주(poetic dwelling)'라는 개념을 통해 기술과의 새로운 관계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이데거는 기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우리의 존재와 세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기술론은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도, 동시에 기술을 통해 새로운 존재 방식을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양면적이다. 이러한 양면성은 《쾌락의 정원》의 복잡한 메시지와 유사하다.


하이데거는 기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우리의 존재와 세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기술론은 그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비판을 받고 있다. 그의 기술 비판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며, 기술의 긍정적 측면을 간과한다는 지적이 있다. 논의가 추상적이고 난해하여 실제 기술 정책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제기된다. 또한, 서구 중심적 시각에 치우쳐 다양한 문화권의 기술 인식을 포괄하지 못하며, 나치즘 연루 이력으로 윤리적 문제를 내포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비판들은 하이데거의 기술론이 현대 기술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함을 드러낸다.




기술 결정론은 기술이 독립적으로 사회 변화를 이끈다는 입장으로, 하이데거의 추상적 접근과는 대조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이 이론의 대표적 학자인 자크 엘륄은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로, 보르도 대학에서 법학과 사회학을 가르쳤다. 엘륄은 1954년 《기술의 사회》에서 기술이 자율적이고 결정론적인 힘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자체적인 논리와 발전 방식을 가진 독립적인 체계로 보았다. 엘륄에 따르면, 기술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자체적으로 발전하며, 사회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관점은 기술의 발전이 사회 구조와 인간의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자체적인 논리와 발전 방식을 가진 독립적인 체계로 보았다.

기술 결정론자들은 주요 기술 혁신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나침반의 발명은 15세기 신대륙 발견을 가능케 했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16세기 종교개혁을 촉발했으며, 1945년 원자폭탄의 발명은 강력한 통제적 정부의 출현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기술 발전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맥락을 간과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인간의 행위자성과 선택의 역할을 축소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쾌락의 정원》에 등장하는 기괴한 기계장치들은 기술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기술 결정론적 시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러한 관점의 한계도 드러낸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술 결정론은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 중 하나로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사회구성주의는 하이데거의 기술론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기술결정론이 기술의 자율성을 과대평가한다는 비판을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이론으로, 기술이 단순히 기술적 요인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을 대표하는 네덜란드 트웬테 대학의 과학기술사회학 교수 위너 바이커는 1987년 《자전거의 사회적 구성》에서, 기술의 발전과 채택이 사회적 집단의 이해관계와 협상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19세기 말 자전거의 발전 과정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기술의 발전과 채택이 사회적 집단의 이해관계와 협상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회구성주의는 기술의 성공이나 실패가 그 기술의 내재적 특성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인의 상호작용 결과라는 점을 부각하며, 한때 혁신적인 약물로 각광받던 DDT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출간 이후 환경적 위험성이 부각되어 사용이 금지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사회구성주의는 기술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쾌락의 정원》에서 보스가 사회와 기술의 상호작용을 반영한 것과 같은 시각을 제공하지만, 기술의 물질적 특성과 제약을 과소평가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공진화 관점은 1960년대 생물학자 폴 에를리히와 피터 레이븐이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이후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도 적용되었다. 에를리히는 스탠포드 대학의 생물학 교수로, 레이븐은 미주리 식물원의 원장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원래 식물과 나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이 개념을 도입했지만, 이후 사회과학자들이 이를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공진화 관점은 1980년대 후반부터 과학기술학(STS)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네덜란드의 트웬테 대학의 아리 립(Arie Rip)과 영국 에든버러 대학의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가 이 개념을 기술-사회 관계에 적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기술과 사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한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공진화 관점은 하이데거의 기술론, 기술결정론, 사회구성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하이데거의 기술론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공진화 관점은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더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기술결정론이 기술의 자율성을 과대평가한다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기술과 사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적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균형을 잡으려 했다. 사회구성주의가 기술의 물질적 특성을 과소평가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기술의 물질성과 사회적 맥락을 동시에 고려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했다. 공진화 관점은 이러한 이전 이론들의 장점을 통합하고 단점을 보완하여,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더욱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이 관점에 따르면, 기술과 사회는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함께 변화하고 발전한다.


기술과 사회는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함께 변화하고 발전한다.

공진화 관점의 구체적인 예로, 1990년대 인터넷의 발전과 전자상거래의 성장을 들 수 있다. 인터넷 기술의 발전은 전자상거래의 가능성을 열었고, 이는 다시 더 빠른 인터넷 연결과 보안 기술의 발전을 요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사회적 관행과 법적 제도를 만들어냈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다시 기술 발전의 방향에 영향을 미쳤다. 공진화 관점은 이처럼 기술과 사회의 관계가 선형적이 아니라 순환적이고 상호의존적임을 강조한다. 이는 《쾌락의 정원》의 세 패널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과 유사하며, 기술과 사회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공진화 관점은 기술의 발전과 사회 변화를 더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과정으로 이해하게 해주며, 이를 통해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더 풍부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러한 접근은 기술 정책 수립이나 기술 영향 평가에 있어서도 더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




빅테크의 기술 개발


기술과 사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는 관계에 있다. 이는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DeepMind, OpenAI, Tesla와 같은 선도 기업들의 최신 프로젝트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DeepMind는 AI를 활용한 로봇 시스템을 개발하며 로봇 공학에서 혁신을 이루고 있다. OpenAI는 새로운 모델과 제품을 통해 AI의 창의성과 활용 가능성을 넓히고 있으며, Tesla는 전기차 생산과 배터리 재활용 기술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중요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처럼 기술과 사회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 공진화 과정은 쉽지 않다. AI 기술의 빠른 발전은 일자리 감소 우려와 함께 새로운 직업 창출과 인간 창의성 증진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기술 기업들의 영향력 증가는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기술 독점 문제를 야기하며, 강력한 규제와 윤리적 지침 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Google DeepMind는 다기능 AI 모델로 인류의 복잡한 문제 해결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의료 분야에서도 Google의 MedLM 같은 모델이 개인 맞춤형 의료 서비스에 기여하며 AI 활용이 확장되고 있다. 결국, 기술이 인류에 도움이 될지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DeepMind의 GenCast는 2024년 기상 예측 분야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 AI 시스템은 기존 모델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15일 앞선 기상을 예측할 수 있다. GenCast는 50개 이상의 가능한 기상 시나리오를 생성하고 각각의 확률을 평가하여 극한 기상 현상의 위험을 더 잘 예측하도록 돕는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DeepMind는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에 대한 기후변화 영향 모델링,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를 위한 AI 도구 개발 등 다양한 기후변화 대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러한 노력은 AI 기술이 기후변화라는 인류 최대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OpenAI는 2023년 7월, AI 안전성과 신뢰성을 강화하기 위한 자발적 약속에 동참하며 ‘AI Safety’ 연구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 DALL-E 3 출시 전 안전성 평가 및 레드팀 테스트를 수행해 모델의 잠재적 위험을 분석했으며, AI 생성 미디어의 출처를 추적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도 개발 중이다. OpenAI는 사이버보안 보조금 프로그램과 버그 바운티 프로그램을 통해 AI 시스템의 안전성을 높이고 있으며, Frontier Model Forum을 통해 위험한 AI 모델의 기능을 책임감 있게 공개할 메커니즘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증가하는 위험을 관리하고,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Tesla는 2023년 Impact Report를 통해 지속가능성 프로젝트에서 이룬 놀라운 성과를 발표했다. Tesla 제품 사용으로 2023년 한 해 동안 2천만 톤 이상의 CO2 배출이 방지되었으며, 배터리 재활용을 통해 43,000대의 Model Y 생산에 필요한 재료를 회수했다. 공장의 지속가능성도 크게 향상되어 Giga Shanghai의 에너지 효율성이 35% 개선되었고, Giga Berlin은 모든 전력 수요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특히 Tesla 태양광 고객들이 생산한 전기가 Tesla의 모든 시설 전력 수요의 3배 이상을 충당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AI와 지속가능한 기술의 결합이 환경 문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이러한 기업들의 노력은 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윤리적, 사회적 고려도 함께 발전해야 하며, 이러한 기술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보장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결국, 기술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지는 우리가 이를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술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그 위험을 관리하고, 모든 이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기술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은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논점으로,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본질과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하이데거의 기술론에 따르면,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 DeepMind, OpenAI, Tesla와 같은 선도 기업들의 프로젝트는 기술이 기후변화, AI 안전성, 지속가능성과 같은 인류의 핵심 과제들을 해결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 가능성은 기술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처럼, 기술은 낙원과 지옥을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


기술과 인류의 관계는 공진화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며 발전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윤리적 딜레마와 도전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GenCast와 같은 AI 기반 기상 예측 시스템은 기후변화 대응에 유용하지만, 데이터 편향성과 AI의 불투명성이라는 문제를 동반한다. OpenAI의 ‘AI Safety’ 연구는 이러한 위험을 관리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며, Tesla의 지속가능성 프로젝트는 기술이 환경 문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기술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보장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결국, 기술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지는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통제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술의 역할은 단순하지 않으며, 지속적인 성찰과 협력을 요구한다. 기술 개발자, 정책 입안자, 시민 사회는 기술의 혜택을 극대화하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또한, 기술 교육은 기술적 지식뿐만 아니라 윤리적 판단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함께 키워야 한다. 기술은 인류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과 같은 근본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 기술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지는 우리가 어떤 미래를 꿈꾸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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