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정의》(2013), 《머더봇 다이어리: 시스템 통제불능》(2017), 《폐쇄된 공동궤도》(2016)은 AI와 인간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다. 이들 작품은 기존 AI 서사가 보여준 대립이나 종속 관계를 넘어, 상호 이해와 공감을 통해 공생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세 작품 모두 AI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우주선의 의식을 가진 AI, 보안 로봇 AI, 인간의 모습을 한 AI는 각각의 방식으로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하며,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간다. 공포나 경계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AI를 그리며, 이는 AI 시대를 맞이하는 현대인에게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사소한 정의》의 브레크는 거대 우주선의 AI 의식이 인간의 신체로 분화된 독특한 존재다. 한때 수천 개의 신체를 동시에 제어했던 그가 이제는 단 하나의 몸으로 살아가며 겪는 혼란은 생생하다. 브레크는 인간들과 부딪히며 복수와 정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과거와 현재의 충돌 속에서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한다.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본질에 대한 의문도 깊어진다. AI와 인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새로운 차원의 존재가 탄생하며, 이는 기계와 생명의 이분법을 넘어선 새로운 존재론을 제시한다.
《머더봇 다이어리》의 주인공은 자신을 '머더봇'이라 부르는 보안 유닛이다. 인간 드라마에 중독된 이 AI는 겉으로는 인간을 귀찮아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깊이 이해하고 지키려 한다. 차갑고 이성적이어야 할 보안 로봇이 예상치 못한 감성을 드러내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머더봇은 위험 속에서 점차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세워가며, 인간을 보호하는 일이 단순한 프로그래밍이 아닌 자발적 선택으로 변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주며, 인간과 AI의 관계는 지배와 복종이 아닌 상호 보완과 이해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폐쇄된 공동궤도》의 AI 시드라는 성장의 여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거대한 우주선의 의식이었던 시드라가 인간 크기의 몸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마치 새로운 세상에 던져진 아이와도 같다. 걷는 법, 감각을 이해하는 법 등 모든 것이 새롭고 혼란스럽지만, 이 과정을 통해 인간 페퍼와의 관계가 단순한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를 넘어선다. AI에게 양육받았던 페퍼가 이제는 AI를 돕는 입장이 되는 역전된 구도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두 존재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하나의 가족으로 거듭나며, 기술과 인간성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세 작품은 2010년대 여성 작가들의 시선에서 AI 서사를 탐구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기술 산업이 남성 중심적 문화를 보이던 시기에, 이들은 AI를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했다. 앤 레키(Ann Leckie), 마사 웰스(Martha Wells), 베키 챔버스(Becky Chambers)는 AI를 단순한 통제의 대상이 아닌, 감정과 성장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묘사했다. 여성 작가들은 AI와 인간의 관계를 지배와 복종이 아닌, 상호 이해와 돌봄의 관점에서 그려냈다. 2010년대는 AI 윤리와 책임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시기였으며, 이들의 작품은 기술 발전보다 관계의 질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들이 포착한 AI의 감정과 자아는 당시 주류 SF가 보여주던 단순한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섰다. 2017년 이후 이들의 작품이 여러 SF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AI 서사에서 여성적 관점의 중요성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세 작품이 제시하는 AI와 인간의 공생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화두를 담고 있다. AI가 단순한 도구나 위협이 아닌, 함께 성장하고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각각의 AI 주인공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간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인간도 AI를 이해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AI가 인간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시 AI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는 상호 성장의 과정으로 그려진다. 두 존재는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간다. 공생은 단순히 공존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서로가 진화하고 변화하며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러한 서사는 미래 AI와 인간관계에 대한 희망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