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I 로스팅

소버린 AI

by 경영로스팅 강정구

‘소버린 AI(Sovereign AI)’는 인공지능 기술의 통제권을 외부가 아닌 국가 또는 조직 내부에 두는 전략적 접근입니다. DeepMind 공동 창업자 무스타파 슬레이만(Mustafa Suleyman)은 2023년 『The Coming Wave』에서 AI가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 기술 주권 확보의 핵심 전략으로 강조한 바 있습니다.


특히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소버린 AI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OpenAI, Google, Anthropic을 앞세워 AI 생태계를 선점하고 있으며, 중국은 Baidu, Alibaba, DeepSeek 등을 중심으로 국산화된 LLM을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이 두 초강대국이 데이터를 장악하고 AI 인프라를 독점하는 가운데, 다른 국가는 기술 종속과 가치관 침투의 이중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소버린 AI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의사결정 독립성과 디지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방어선입니다. AI가 언어, 역사, 윤리를 학습하고 실행하는 시스템이라면, 그 모델이 누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훈련되었는지, 어떤 규범을 반영하고 있는지에 따라 사회 전체의 방향이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 AI는 권력의 도구이자, 문화의 수출 플랫폼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국가와 기업이 소버린 AI를 실현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세 가지 전략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1) 자국 언어·문화 기반의 LLM 자체 개발

(2) 폐쇄형 인프라와 프라이빗 클라우드 기반의 AI 운영

(3) 오픈소스 생태계를 활용한 지역 특화형 경량 모델 설계


이 세 가지 방식은 기술적 여건과 정책적 의지에 따라 병행되기도 합니다.


첫 번째는 자국 언어와 문화를 반영한 LLM을 자체 개발하는 전략입니다. 한국은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 X’를 통해 한국어 기반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24개 언어를 아우르는 오픈소스 LLM 프로젝트를 가동 중입니다. UAE의 Falcon, 사우디의 국가 AI 전략도 이와 맥을 같이합니다. 이는 데이터 주권과 문화 보존, 그리고 글로벌 AI 영향력 확보를 동시에 추구하는 길입니다.


두 번째는 검증된 모델을 자국 내 폐쇄망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전략입니다. 이는 고성능 LLM을 활용하면서도, 민감한 데이터는 국가 내부에서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프라이빗 클라우드 기반의 AI 인프라를 뜻합니다. 한국은행의 폐쇄형 금융 특화 AI 플랫폼은 대표적 사례로, 공공 부문에서는 이 방식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 번째는 오픈소스 기반의 지역 특화형 경량 모델 설계입니다. LLaMA, Mistral, Falcon 등 오픈소스 LLM을 활용해 특정 언어, 산업, 지역에 최적화된 소형 모델을 구축할 수 있으며, 비용 효율성과 민첩성 측면에서 특히 유리합니다.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는 이 전략을 통해 기술 자립과 글로벌 협력을 동시에 꾀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전략 모두의 핵심은 결국 데이터 주권입니다. AI는 더 이상 중립적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의 사고, 판단, 행동을 설계하는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데이터를 누가 수집하고 가공하며, 결과를 해석하고 책임지는지가 곧 국가의 디지털 자율성을 결정짓습니다. 소버린 AI는 미중 양강 중심의 기술 질서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이며, 제3의 선택지를 열기 위한 전략입니다.


물론 소버린 AI를 실현하기 위해선 인프라, 인력, 정책, 민관 협력이 모두 요구됩니다. 단독 개발은 어렵고, 외부 기술에 대한 적절한 활용과 통제, 그리고 국제 협력의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국가는 자체 모델 개발과 오픈 생태계 참여를 병행하며, 하이브리드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활용하는 위치’가 아니라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가입니다.


AI는 단순한 혁신 도구가 아니라, 미래 권력의 작동 방식입니다. 소버린 AI는 기술 독립, 데이터 주권, 문화 보호, 안보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AI를 설계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누군가의 AI가 우리를 재설계할 것입니다. 그전에 선택지를 넓히고 전략을 갖추는 것, 그것이 바로 소버린 AI의 본질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미일 2030 세대의 AI 사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