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98%, 세종은 9%. 지역 격차 넘어 교육의 본질을 묻다
2025년 1학기, 전국 초등학교의 AI 디지털 교과서 채택률은 약 30%, 고등학교 1학년은 23~24% 수준입니다. 전체 전국 평균은 32.4% 이지만, 지역별 편차는 극심합니다. 대구는 무려 98.1%의 학교가 AI 교과서를 도입했으며, 반면 세종은 9.5%에 불과합니다. 기술 수용을 넘어, 교육의 철학과 속도에 대한 지역 간 시선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 셈입니다.
교육부는 AI 교과서를 “맞춤형 학습을 위한 디지털 전환”이라 설명합니다. 교사는 AI 대시보드로 학생별 학습 상황을 실시간 확인하고, 학생은 요약·문제 추천·질문 재구성 기능이 포함된 인터랙티브한 교과서를 통해 학습합니다. 이는 단순한 e-book이 아니라, AI가 수업 구조에 개입하는 새로운 교육 실험입니다.
그러나 논란은 기술의 유무보다, 교육이 무엇을 길러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정보는 풍부해지지만, 사고는 얕아질 수 있습니다. AI가 ‘정답’을 빠르게 제시해 주는 동안, 학생이 ‘왜’와 ‘어떻게’를 탐색할 기회는 줄어듭니다. 학습의 깊이보다 속도와 편의가 앞서는 흐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걱정도 있습니다. 스마트 기기에 일찍 노출된 아동일수록 전두엽 발달이 더디고, 집중력과 사고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학습의 기술적 편의성은 높아질지 몰라도, 아이의 뇌가 깊이 생각하고 연결 짓는 능력은 저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의 속도’보다 ‘노출의 깊이’가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우려는 북유럽에서 먼저 현실화됐습니다. 디지털 교육의 상징이었던 스웨덴은 2017년 유치원부터 디지털 기기 사용을 의무화했지만, 2023년 전면 철회했습니다. 6세 미만 아동의 디지털 학습을 금지하고, 823억 원을 들여 실물 교과서를 다시 도입했습니다. 정책의 중심축은 다시 ‘종이책’으로 이동했습니다.
스웨덴 정부의 급선회는 국제읽기문해력연구(PIRLS) 결과에서 비롯됐습니다. 초등 4학년의 문해력 점수가 2016년 555점에서 2021년 544점으로 하락했고, 디지털 교육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습니다. 기술이 ‘편리함’을 제공한 반면, 읽고 쓰는 능력은 약해진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작동한 것입니다.
핀란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디지털 학습의 선도 국가로 알려진 핀란드는 최근 수업 중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며, 종이책 중심의 수업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역시 유아 대상 디지털 교육을 사실상 중단했습니다. ‘디지털은 무조건 진보’라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정책 변화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것은 아닙니다. 스웨덴의 종이책 회귀는 보수 정부가 전임 진보 정부의 디지털 정책을 전면 폐기하면서 정치적 배경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디지털 교육을 둘러싼 선택은 결국 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철학과 정권의 가치관이 작동하는 복합적인 결정입니다.
더 큰 문제는 아직까지 AI 교과서가 학습 효과를 명확하게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디지털 교재가 학습 능력을 높인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AI가 학습을 향상시킨다는 명제는 여전히 가설에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현재 도입 방식은 교사 재량에 맡기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국가 주도 교육 혁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혼란은 적지 않습니다. 교사 연수 부족, 인프라 차이, 학생들의 실제 활용도 미비 등 정책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뚜렷합니다.
기술 자체는 중립적입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어떤 구조와 문맥 속에 작동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질문 없이 답을 제공하는 시스템, 스스로 탐색할 여지를 줄이는 인터페이스는 오히려 교육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AI를 도입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설계하느냐’입니다.
결국 AI 교과서 논란은 기술 논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배움의 태도를 가르치고 싶은가에 대한 사회적 선택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능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을 설계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입니다. AI는 도구일 뿐, 교육의 중심이 되어선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