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tle Singularity
샘 알트만의 최근 글을 읽으며 묘한 감정이 일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변화를 예고하면서도, 마치 내일 비가 온다고 말하듯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이 차분함 속에는 단순한 평정심 이상의 메시지가 숨어 있다.
알트만은 “우리는 이미 사건의 지평선을 넘었다”라고 선언한다. 그러면서도 “2030년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가족을 사랑하고, 호수에서 수영을 즐길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예측이 아니라, 혁명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질에 대한 철학적 확신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의 상대적 관점이다. 그는 “특이점은 조금씩 일어나고, 융합은 천천히 일어난다”라고 표현한다. 급진적인 변화조차 당사자에게는 연속적으로 느껴진다는 통찰이었다. 2025년 현재 2020년을 되돌아보면 이 말의 의미가 생생하다. 우리는 분명 엄청난 변화 속에 있으면서도, 그 변화를 매일의 작은 연속으로 체감한다.
하지만 그 느림이 안도감을 주지는 않는다. 변화가 점진적으로 다가온다고 해서 그 충격이 덜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뜨거운 물속 개구리처럼, 우리는 점점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중요한 신호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트만의 세계관은 두 가지 핵심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하나는 과학의 진보가 인류 복지의 엔진이라는 계몽주의적 신념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은 무엇에든 적응한다는 진화론적 확신이다. 이 믿음은 역사적으로 대체로 옳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산업혁명기의 러다이트 운동은 인간이 변화에 저항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기술은 복지의 열쇠가 될 수도, 혼란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알트만의 일자리 소멸에 대한 태도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는 “전체 직업군이 사라지는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곧 “세상은 빠르게 부유해질 것”이라는 거시적 낙관론으로 논지를 돌린다. 미래 어느 시점의 낙관적 이상점과 당장 내일의 불확실한 현실을 대비하도록 돕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는 “인간은 기계보다 사람에게 관심을 둔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에 지배당하며 기계가 설계한 관심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알트만 자신도 이를 “정렬되지 않은 AI의 사례”라 인정한다. 그럼에도 왜 미래의 AI는 다를 것이라 믿는지, 그 근거는 여전히 흐릿하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권력의 집중이다. 알트만은 “초지능을 널리 분산시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은 소수의 빅테크 기업이 AI 인프라를 독점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알트만 자신이 있다. 권력을 분산시키겠다는 이가 권력의 정점에 서 있을 때, 우리는 그 약속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알트만이 ‘부드러운(gentle) 특이점’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도 생각해 보게 된다. 기존 ‘특이점’이라는 개념이 파괴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이미지를 가지기에 중화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본래 특이점은 되돌릴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변화를 의미한다. 알트만은 이를 “인상적이지만 관리 가능한 변화”로 재포장하고 있다.
결국 알트만의 글은 기술 리더의 시선으로 본 미래의 청사진을 담고 있다. 그 미래는 통찰력 있고 희망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그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구체적 방법론이다. 변화의 주체인 이들의 낙관주의와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은 작은 의지와 공동의 논의에서 시작된다.
이제 질문은 우리의 몫이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AI 게임에서 한국은 어떤 AI 모델과 통제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AI 문해력에 따른 개인 생산성의 양극화를 우리는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가. AI 접근성이 취약한 계층을 사회는 어떻게 끌어안아야 하는가. 그리고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적 가치는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이 물음들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미래는 분명 흥미롭다. 하지만 그 미래에서 우리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능동적 참여자가 되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준비해야 한다. AI 윤리에 관한 책을 읽고, 동료와 기술의 미래를 논하며, 작은 프로젝트라도 AI 도구를 활용해 보는 일이 그 준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 첫걸음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행동을 시작하는 일이다.
샘 알트만뿐 아니라 많은 AI 전문가들이 ‘특이점’을 예견한다. 그 지점을 AGI라 부르든, ASI라 부르든, 다가올 미래의 한 모습임은 분명하다. 다만 그 순간이 과연 우리에게 ‘부드럽게’ 다가올지는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그 부드러움은 결코 주어지지 않으며, 결국 우리의 선택과 준비가 만들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