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갈길이 먼 한국에서의 세계시민교육
본 칼럼은 2020년 3월 13일 (금) The Korea Times 오피니언 섹션에 실린 제 칼럼의 한국어판입니다.
‘세계시민교육 (Global Citizenship Education: GCE)’은 최근 새로이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1990년대 글로벌화와 함께 대두되기 시작하여 현재에는 하나의 글로벌 교육 의제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UNESCO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논의에 따르면 GCE란 인종, 문화, 종교를 넘어 다양한 지구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다. GCE는 UN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주요 목표로도 다루어지는 어젠다이기에 전 세계 많은 정부와 교육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을 논하지 않고서는 GCE가 주목받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 힘들다. 기술의 발달로 세계는 점점 더 평평해지며 국가 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국가 간 인적 물적 자원의 교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 국가 간 상호 연결성과 의존성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에 개인 또는 국가가 세계 시장에서 추구할 수 있는 기회는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GCE의 필요성은 재차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GCE를 ‘영어의 습득을 통한 국제교류’로 좁게 해석하는 오류를 범한다. 지금도 일부 교육자들은 영어 (혹은 제2 외국어) 습득을 통한 외국과의 교류를 GCE가 달성해야 할 주요한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학교 교육과정의 틀 안에서 GCE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가치 교육’이다. GCE는 평화, 인권, 다양성, 민주주의, 관용 등과 같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의 이해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영어의 유창성’ 또는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 등과 같은 과목은 그러한 ‘가치 교육’에 보충되는 개념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한 GCE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식 또는 내용의 습득을 위한 교육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타인들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 중심적인 교육이 요구된다. 상이한 관점들에 대한 열린 태도, 비판적 사고능력, 공감능력이 무엇보다 GCE에서 강조되는 이유이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반기문 UN사무총장의 등장 이후 글로벌 리더 양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증대됨에 따라 향후 GCE의 역할도 더욱 주목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를 들여다보면 GCE가 들어설 자리는 없는 것 같다. 청소년들이 향후 지구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주역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교육제도 하에서 그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성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GCE를 꽃피우기에는 MCQs (5지선다형) 위주의 대학 입시교육 문화가 너무나 강력한 장애물로 작용한다. GCE의 도입을 위해 현재의 대학 입시제도를 수정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GCE는 책 속의 지식에서 벗어나 실제 세계에서의 참여를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 형태의 교육보다는 참여 형태의 교육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참여형 교육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도될 수 있지만, 필자는 세계시민교육의 속성에 맞게 국가 간 협력 프로젝트 학습을 권장하고 싶다. 학교 차원에서 외국 학교와 협정을 맺어 양교의 학생들이 공동으로 GCE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주제는 평화, 인권, 다양성, 민주주의, 관용 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Skype 또는 Zoom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은 international collaboration을 위한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레 상대방의 생각과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다. 만일 한국의 대학 입시전형에서 그러한 GCE international collaboration project에 가산점을 부여한다면, 학부모들 및 학생들의 관심을 한층 더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international project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서는 GCE를 향한 의지와 학습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가 간의 교류가 활발해 짐에 따라 GCE의 중요성은 날로 증대해 갈 것이 분명하지만, 여전히 GCE를 향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지지는 아직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게다가 현행 대학 입시경쟁 속에서는, 학생들이 세계시민으로서 필요한 가치관을 형성하기 매우 어렵다.
지금 당장 GCE를 한국의 대학 입시전형에 반영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GCE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국민적 관심을 받는다면 GCE의 위상은 지금과는 확연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GCE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조금이라도 증가하여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향후 세계 시민으로서 더 많은 기회와 역할을 지구촌 곳곳에서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