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골 마을 가브레(Gavray)
1920년대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드니즈와 에밀리엔 자매는 평생 동안 삶의 많은 부분을 함께 했다. 언니인 드니즈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비행기를 고치던 기술자와 결혼해 아들과 딸 하나를 각각 두었고, 에밀리엔은 약국에서 일하며 평생을 혼자 살았다. 종전 후 파리의 경찰이었던 드니즈의 남편은 성격이 괴팍했다고 한다. 아마도 전쟁의 트라우마가 그로 하여금 평온한 삶을 포기하게 만든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에밀리엔은 투페 집안의 막내였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결혼을 하지 않고, 그녀의 부모님을 돌보며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 은퇴 후 노르망디로 다시 돌아온 드니즈는 남편이 알코올 중독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는 동생 에밀리엔과 함께 살았다. 각자의 집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 그들은 특히 드니즈의 딸과 그의 손자, 손녀들과 함께 소소한 기쁨을 공유했다. 그들은 마을의 소 시장에서 어린 소가 눈물을 흘리며 팔려가는 것을 함께 구경했고, 외손자가 처음으로 운전 연습을 하던 순간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던 그녀들의 집은 드니즈가 아흔이 넘은 나이에 알츠하이머에 걸려 죽은 후, 그녀의 딸 프랑수와즈가 처분했다. 어떤 물건들은 골동품 상점에 내다 팔고, 추억이 담긴 것들은 노르망디에서 그르노블까지 트럭으로 실어 날랐다. 그중에는 천장까지 닿을듯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노르망디 스타일의 그릇장이 있었는데 역시 프랑수와즈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되었다. 조잡한 그림이 그려진 중국식 도자기와 함께.
그로부터 몇 년 후, 에밀리엔 역시 알츠하이머에 걸려 대부분의 기억을 잃은 채 노르망디의 요양원에서 삶을 지탱하다 세상을 떠났다.
너무 작아서 볼 것도 없는 노르망디 시골 마을에는 왜 갔을까
올해 여름, 남편의 이모할머니 그러니까 내 시어머니가 이모라고 부르는 사람이 돌아가셨다. 특별히 이모와 가까이 지냈던 시어머니는 많이 슬퍼하셨다. 장례식은 단 몇 사람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끝났다. 나와는 얼굴도 본 적이 없고, 멀다면 먼 관계이지만 평소 남편이 이모할머니 이야기를 자주 했고, 바캉스 때마다 너무나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낸 추억이 있다기에 나도 마음이 쓰였다.
우리는 이번 여름 바캉스를 노르망디로 떠났는데, 간 김에 이모할머니 묘지에 찾아가기로 했다. 바로 에밀리엔이 잠들어 있는 곳 말이다.
이곳이 가브레(Gavray)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저기서 소 시장이 열렸고, 남편은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드니즈와 에밀리엔의 의자
우리 집에는 네 개의 오래된 의자가 있는데 그중 두 개는 시할머니 드니즈로부터, 나머지 두 개는 에밀리엔으로부터 온 것이다. 드니즈의 의자는 곡선이 더 많고 정교하지만, 에밀리엔의 것보다 더욱 낡았다. 다리를 지탱하는 가운데 부분의 나무가 아예 부러진 곳도 있고, 색도 바랬다. 오래된 라탄은 앉으면 포근하게 엉덩이를 감싼다. 그만큼 여러 사람을 거쳐 다듬어지고, 또 늘어날 대로 늘어난 라탄은 최적의 편안함을 선사한다.
나무의 가장자리 벌어진 틈에 손을 살포시 대어 본다. 근원적으로 오래된 것이 주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깊은 슬픔 또한 전해져 온다. 그것은 세대를 거슬러 내려온 한 가족의 역사,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시간들을 의자는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제 기능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의자가 맞은편에서 나를 바라본다. 바로 시간을 잃어버린 드니즈와 에밀리엔이다. 세상의 누군가는 상실하고, 또 기억하며 생성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원리가 우리의 삶을 구축하고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낡은 의자를 통해서 나는 매일 한 가족의 역사와 만난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나의 시할머니와 그녀의 동생을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