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담자 P Apr 12. 2020

심리상담은 단순한 고민상담과는 다르다

심리상담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오해들이 있다. 상담이란, 그저 상담사에게 내 어려움과 말 못 할 고민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잔뜩 쏟고 나오는 일 아니냐는 것.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 고민 털어놓는데 이렇게 비싼 비용을 왜 내야 하지? 친구한테 고민 상담하면 되지 왜 굳이 상담을 받아?' 

하지만 심리상담은 단순한 고민상담과는 다르다.

고민상담도 분명 도움은 된다


힘든 일이 있거나 고민이 생겼을 때 우리는 보통 친구, 선배, 가족, 멘토 등을 찾는다. 그들에게 내가 처해있는 상황과 어려움을 토로하고 위로를 받는다. 나를 그대로 주는 이해해주는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당장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힘들었던 마음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때로는 좋은 해결책을 얻을 때도 있다. 이처럼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와 소통은 우리 삶에서 분명 필요한 것이고, 예상치 못하게 닥치는 여러 힘든 일을 이겨나가게 해주는 고마운 시간들이다.



그럼에도, 고민상담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고민상담으로 심리상담을 대체할 수는 없다.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나의 어려움과 힘듦을 털어놓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가 분명히 있고, 일반인으로서는 쉽사리 손대기 어려운 지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의 분야에도 전문가가 있는 거다)

심리상담을 받으려는 사람에게 "왜 굳이 비싼 돈 들여서 상담을 받아? 야 그 상담 내가 해줄게." 하는 경우도 있다. (네가 전문가냐!) "야, 친구가 최고지. 힘들면 언제든지 불러. 뭘 상담을 받겠다고 그러냐. 너 그 정도로 안 심각해"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한다. (네가 의사냐!)

자신에게 그런 방법이 잘 통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고민상담으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일반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한 번만 떠올려보고 입을 열길 바란다. (제발)


1) 가까운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일단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전혀 없는 사람이 있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거리를 둔 상태인 경우다. (상상이 안 되면 그냥 이해될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라.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돼?" 같은 말로 스스로의 편협함을 증명하지 말고.)

또는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끔찍하고 힘든 일을 겪은 경우도 있다. 물론 가벼운 고민일지라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음으로써 그들을 걱정시키는 것을 미안해하고 힘겨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 외에도,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이기에, 오히려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도 있다. 사회에서 비정상, 비주류로 여겨지는 내 안의 소수자성에 대해서 가족과 지인에게 얘기할 용기를 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2) 용기 내어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오히려 더 속상해지는 경우도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 고민을 잘 털어놓지 않는다.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받기를 바라는 것과 그들이 주려고 하는 것이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을 털어놓은 후에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빠지거나 괜히 얘기를 꺼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나는 해결책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조언이나 해결책만 들으면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경청과 공감, 마음을 읽어주는 부분이 부족했던 거다. 게다가 그 조언이 내 마음이나 내 상황에 잘 맞지 않는 경우에는 더욱더 실망스럽다. '그 사람한테는 고민을 털어놓지 말아야겠어.' 다짐을 하게 되기도 한다.

반대로, 고민을 열심히 들어주기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도 있다. 그날 그 시간 동안은 마음이 조금 후련해지는 것 같지만 그다음 날이 되면 현실의 문제는 또다시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대화를 통해 잠깐의 스트레스를 해소했을 뿐 문제 해결의 실마리나 상황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은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믿었던 사람에게 용기 내어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오히려 그들의 배려 없는 말에 상처를 받아서 입을 꾹 다물게 된 사람들도 있다. 상대의 관점에서 그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상대방을 답답하게 바라보고 툭 던진 말이 가시가 되고 칼날이 된다.

 


3) 고민상담은 단기적인 미봉책이다.


게다가 고민상담을 통해 얻은 해결책은 단기적인 해결을 지원해줄 뿐, 또 다른 형태로 발생한 새로운 문제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반복되는 패턴을 눈치채지 못한 채 누군가는 끊임없이 새로운 고민과 걱정과 고통에 사로잡힌다. 그는 가까운 사람에게 끊임없이 고민을 털어놓으며 매달리게 되고, 상대방은 늘 받아주는 역할만 하게 되는... 수평이 깨진 관계가 생겨난다.

때로는 내 마음의 렌즈가 뿌옇기 때문에 세상을 흐리게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 사람에게 물체의 실제 색깔과 모양을 알려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런 것은 일회성에 불과하다. 24시간 쫓아다니면서 눈 앞에 보이는 모든 물체를 설명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식으로 해결해주다 보면 도와주는 사람도 결국 지친다.

그러므로 그 렌즈를 닦아주는 것이 보다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안전하게 진행해주는 것이 상담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심리상담은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경직된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어주어서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 또한 그 효과는 장기적으로 지속된다. 이후에 다른 모양을 한 (그러나 패턴은 비슷한) 다른 어려움이 찾아와도 보다 수월하게 이겨낼 수 있다. 실제로 마음의 렌즈를 닦고 나면, 의외로 쉽게 문제가 풀리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문제가 아니었던 걸 문제로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고 놀라기도 한다.

     

4) 쌍방향적인 관계에서는 내 고민을 일방적으로 털어놓기가 어렵다. 


고민상담과 심리상담의 차이점은 또 있다. 친구라는 관계는 쌍방향적이다. 그래서 항상 내 고민을 일방적으로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내 고민을 들어준 상대를 위해, 그의 고민과 힘겨움도 들어주고 토닥여주어야 한다. 때로는 내가 경황이 없을 때라도 상대방이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이라면 없는 에너지까지 짜내서 그를 위로해주어야 할 때가 있다. 가끔은 새벽마다 한 시간씩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도 온다. (잠 좀 자자) 마음이 단단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 쉽게 감정이입을 하는 성격이라면 상대방의 고민상담을 들은 후에 오히려 더 큰 짐을 짊어지고 집에 돌아올 수도 있다. 때로는 "다들 똑같이 힘든데... 나만 괜히 힘들다고 약한 소리 했네." 같은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5)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지속적으로 받아주고 고민을 들어주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민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들어주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내 힘든 감정이나 고민을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털어놓았다가 그들과 관계가 멀어져 본 경험이 있지는 않은가. 반대로, 자기감정 속에 빠져 끝없이 힘겨워하는 사람의 고민상담을 매번 들어주다가 완전히 지쳐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떠올려본다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과 상처 입은 마음을 지속적으로 어루만져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낄 것이다.

그 사람이 아무리 내 배우자이고, 부모이고, 자녀라고 해도, 나는 또 나의 삶을, 나의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그 사람의 감정을 케어해주는데 모든 시간과 모든 노력을 쏟다 보면 쉽게 지치고 소진된다. 나만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그를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그들을 밀착 케어하다가 자기 자신까지 덩달아 우울해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 그게 나다) 우울증인 지인이나 가족을 둔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말을 인내심 있게 끈기 있게 경청하다가도 그것이 네 번, 다섯 번, 열 번이 되면 지치기가 쉽다. 결국 "그만 좀 해! 너만 힘든 거 아니잖아. 나도 힘들어."라고 소리치거나, "나도 잘 모르겠다."식으로 대충 회피하거나, 빨리 해결해주려고 기계적으로 이런저런 방법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정도까지 이르면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도 적반하장으로 짜증을 낸다. "너, 내 말 듣기 싫구나? 내가 귀찮지?"

이대로는 나까지 흔들릴 것 같고, 내가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에 뒤늦게 패턴을 바꿔보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그동안 쏟았던 에너지를 약간 줄였을 뿐인데 상대방으로부터 "너, 변했다"는 말을 듣거나 "너도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아" 같은 상처되는 말을 듣기도 한다. 마음이 아파온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나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주려고 하지 말고 전문가를 연결해주어야 하는 게 그 이유다.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약물 치료를 권한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손을 떼거나 그를 포기한다는 게 아니다. 내가 하기 어려운 부분은 '맡기기(위임)'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의 공감과 정서적 지지에 집중하자는 거다. 그 사람도 살려야 하지만, 나도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 곁에 오래 머물러줄 수 있다.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도울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설령 내가 할 수 있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더 나은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다면 과감하게 그의 도움을 빌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더 지혜롭다.




민간요법을 써서 병이 나은 적이 있으니 굳이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동의하는가? 물론, 굳이 병원에 가지 않고도 낫는 병이 있다. 가벼운 감기일 때는 병원에 가든, 자기만의 방법으로 치료하든, 개인의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늘 감기만 걸리는 건 아니다. 전문적인 수술이 필요한 심각한 질병도 있다. 때로는 분초를 다투는 위급상황인 경우도 있다. 그때도 과거의 경험만을 떠올리며 민간요법을 고집하겠는가? 수술비가 많이 드니 일단 버텨보자고 하겠는가? 

     

육체의 건강과 생명유지는 꽤나 진지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함부로 단정 짓고 판단을 한다. "나는 병원 안 가고도 나았는데 네가 면역력이 약해서 그래. 그 정도는 남들도 다 이겨내며 살아. 사람들은 그 정도로는 병원 안 가." 이런 헛소리를 나는 살면서 들어보지 못했다. 설령 하더라도 대차게 반박하는 말을 쏘아붙일 수 있다. 그런데 왜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고개를 주억거려야 하는가.

"네가 멘탈이 약해서 그래. 그 정도는 남들도 다 이겨내며 살아. 사람들은 그 정도로는 정신과 안 가. 그 정도로 심리상담받진 않아."

그런 시선들 때문에 정신과 방문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수년을 원인 모를 우울 속에서 고통받았던 나라서, 이제와서야 주체적인 선택으로, 내 돈 내가며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나라서, 이 글을 쓴다. 정신과 의사들이, 상담사들이 아무리 말해도 "다 장사야. 멀쩡한 사람 문제 있는 것처럼 만들고 없는 병도 찾아내서 치료하려고 하지. 마치 과잉 진료하는 치과의사들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내가 이 글을 쓴다. 

나는 의료종사자도, 상담 업계 사람도 아닌, 이 분야에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일반인이니까.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그들보다는 먼저 겪어본 사람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