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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담자 P May 26. 2020

내담자 자작시 - 차 한 잔이 나오기까지

#심리상담 #내담자

이런저런 일상 속 사건

뽀글뽀글 커져가는 생각

불쑥 올라오는 감정


그 빳빳한 이파리들을

하이얀 일기장에 넓게 펼쳐놓고서

하룻밤을 자고 나면

찻잎도 마음도

조금은 부들부들해지지




말린 찻잎을 솥에 덖을 땐

온도가 일정하도록 불 조절을 잘해야 한대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그치, 불 조절 잘해야지


관계가 내 맘처럼 안 된다며

속상해하지도

난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며

체념하지도 않게


그러면서도

내 안의 부정적인 생각은 옅어지고

그윽한 향기만 남게


잘 덖어진 마음을 문지르고 토닥이며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살아낸 나를 위로해


그 날 너, 마음이 많이 슬펐겠다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상담 날이 가까워오면

하고픈 말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분주해져


나 그때 왜 그랬을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햇빛에 말리며 맘을 마저 들여다보고

내 나름의 답을 찾으려 애써봐


절구로 콩콩 찧고 모양내고 나면

앗, 어느새 상담 갈 시간이네


선생님은 알려나


고작 50분 동안

선생님이랑 차를 홀짝이는 게

미치도록 좋아서

그 시간을 준비하며 14일을 살아간다는 걸

그 기억을 떠올리며 또 14일을 산다는 걸






* 이 시는 차 만들기 과정의 일부를 담고 있습니다.

보이차 기준입니다.


1. 찻잎 따기(채엽, 흐리고 비 오는 날은 피해야 해요.)

1. 채다한 찻잎 시들리기(생엽 탄방/위조)

2. 가마솥에 찻잎 덖어 엽록소 제거하기(살청)

3. 찻잎 주무르고 문질러 맛과 향 좋게 하기(유념)

4. 햇빛에 다시 한번 말리기(일광 건조/쇄청)

5. 수증기에 찌기(긴압)

6. 절구로 찧고 모양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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