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다면 할 이야기가 많다

Power of having done togeather

by culturing me

‘어제 찍은 사진을 우리는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다'라는 제목의 전시회에 갔었다.

작품은 작가가 직접 사용했던 생활용품 중 의미 있었던 것들을 엮어 역동적인 오브제로 재탄생시켰다. 언뜻 보기엔 조금 거칠어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인생의 세세한 단면까지도 조명한 작품들이었다.

어떤 전시 작품 옆에 붙여진 작품 노트 중 '이제는 연락이 안 되는 사람, 이제는 연락을 안 하는 사람, 이제는 연락을 못 하는 사람 그리고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사람도 그 사진에 있다'라는 부분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다 곁에 남지는 않는다.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은 쉽지 않아서 시간과 돈 그리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에 시간, 돈, 정성을 들일까?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겠지만, 결국 옆에 남겨두고 싶은 사람은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마음과 대화가 통하는 편안한 사람일 것이다. 이런 관계는 서로에게 소속감이 되어준다. 가족끼리는 "우리끼리 똘똘 뭉쳐야 해, 가족밖에 없어" , 연인끼리는 "우리는 천생연분이야" , 친구끼리는 "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야"라고 서로를 깊이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내부 집단 (inner circle)로서 관계를 규정한다. 내부 집단 안에서 안정감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중요하다. 그렇다 보니 집단으로 묶이는 것에만 중점을 둘뿐 서로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진짜 이야기는 부재한 경우가 많다.

가문의 역사가 있어 온 가족이 자주 모이는 집안, 책상 하나로 시작해 대기업으로 키워낸 회사, 빈손으로 결혼했지만 서로 힘든 시간을 감내하며 이룬 게 많은 부부 같은 경우는 그들만의 끈끈한 이야기가 있다. 자기들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있는 집안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더 마음의 뿌리가 튼튼하다. 각자 그 역사적 이야기에 소속되어 있고 그 소속감은 절대로 사라질 수 없는 집단 구성원 들의 공통분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함께 경험한 희로애락이 많고 각자의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는 부부라면 어떤 문제에 봉착하더라도 위기를 잘 헤쳐나갈 가능성이 높다. 둘만이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가 결혼생활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문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따라서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이처럼 아무리 큰 문제가 생겼더라도 함께 나눈 시간과 이야기가 많으면 해체되지 않는다. 잔뿌리가 많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이. 그러나 현실에서 큰 문제에 봉착하지 않은 부부라 하더라도 함께 나눈 이야기가 없으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해체될 수도 있다.

북에서 피난 나온 사람들이 유난히 잘 뭉치고 단합력이 강한 이유도 집 잃고 피난을 경험한 그들만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강한 연대감으로 맨 주먹으로 가족을 돌보며 살아낸 것이다.

어떤 관계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마음과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사랑이 가능한 것은 함께한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 자신도 모르게 정성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자.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이고 있는 관계가 있다면 그 안에는 자기의 자리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마음의 불안함을 누르기 위해 떠도는 관계를 하고 있다면 과연 그 관계가 당신이 넘어질 때 손을 내밀어 잡아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