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혼자서 외롭지 않아? 런던은 비도 자주 올 텐데.”
글쎄... 비가 올 땐 오는 거고 그 때문에 내 마음이 외롭지는 않다. 혼자 지낼 계획을 선택했을 때는 외로움에 대한 걱정보다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어려운 상황을 홀로 헤쳐나가며 ‘혼자임’을 뼈저리게 느껴보지 않고는 홀로서기가 어떤 것인지 짐직하기 어렵다. 한 자녀 가정이 주류를 이뤄도 혈연을 중요시하는 대가족 전통인 우리나라에서는 ‘혼자’보다는 ‘함께’를 지향하는 것 같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지 말라’는 뜻인 ‘좋은 게 좋다’라는 표현은 우리의 전통적 관계 성향을 잘 보여준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은 혼자만의 개성을 고집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협박처럼 들린다.
이모, 고모, 삼촌, 5촌 당숙, 선배, 후배, 고향 친구... 가족이나 지연, 학연 등의 내부 집단 (inner circle)에게 관대한 것에 비하면 그 밖의 외부 집단(outer circle)에 대해서는 냉정하다. ‘혼밥’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혼자의 삶’을 수용하려는 노력도 늘어나지만 한편으론 누구나 ‘인싸’(insider)이고 싶어 한다. 인싸에 대해서는 ‘정’ 때문에 도덕성이 결여되거나 불법을 저질러도 관용이 베풀어진다. 이런 문화에서 성장이나 성숙은 어렵다.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의 기준은 외부의 반응이나 상황에 자신의 내면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홀로서기를 통한 삶은 물질로 채워지는 삶과는 다른 차원인데 정서적 풍요로움의 만족감을 얻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된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외부에 의존해서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잠시 머물러 있다 보면 그 어려움의 실체가 드러난다. 상황의 크기보다 스스로 받아들이는 정도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과 상황 속에 충분히 머물러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 외에는 그다지 큰일은 사실 많지 않음을 알게 된다.
어려움에 처하면 많은 사람들은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자기의 불안한 감정을 던져버리고는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소위 전문용어로 ‘투사적 동일시’를 하는 건데 본인 스스로 상대에게 자기감정을 던져버리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베스트 프렌드들이 한없는 우정을 자랑하며 사흘 밤낮을 붙어 있다가 어느 날 각자 등지는 경우를 본다. 이 또한 어느 순간 자기의 힘든 부분을 친구에게 던져버리곤 자기가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친구의 모습이라고 믿어버리는 거다. 그래서 상대의 일정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결국 그게 자기의 마음인 것을 모른 채 괜한 오랜 관계만 깨뜨리고 만다.
서울서 아침부터 전화를 한 친구는 자기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고 싶어 전화를 한 것이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환경에 내가 있으니 외로울 것이라 짐작해대뜸 나에게 "외롭지 않아?”라고 묻는 것이다. 그 순간 외로움은 그녀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이럴 땐 그녀의 단어를 이용해 그대로 돌려주면 된다.
"너는 어떻게 지내? 외롭니?" 혹은 " 너 외롭구나"라고 물어주면 친구의 마음을 잘 받아 준거다. 하지만 "아니 난 안 외로운데?" , "뭐가 외로워? 볼 거 많고 할거 많아서 좋기만 해"라고 대화를 끌어간다면 머지않아 친구는 마음을 닫아 버리고 멀어지게 된다.
흔히 베스트 프렌드라는 관계는 서로 찰떡처럼 마음이 붙었을 때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것을 허락한다. 그래서 친할수록 남들이 모르는 서로의 은밀한 비밀을 나누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서로를 함부로 대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친한 관계일수록 서로 선을 지켜줘야 한다. 그러면 그 경계선이 두 사람의 관계를 오래도록 지켜주게 된다.
경계를 잘 지킬 줄 아는 사람은 홀로서기가 가능하다. 왜냐하면 경계를 지킨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안다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충족시킬 줄 알기 때문에 외로운 감정에 쉽게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모르기 때문에 상황이나 상대방에게 자신의 외로움을 충족해 달라고 조르는 아이와 같은 마음이 있다. 자신의 마음을 채워줄 수 없는 상대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