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 맥시멀리스트 되기

디지털 시대, 나만의 장치와 ‘허세’의 균형

by 중년의 모험가

6인치 스마트폰 한 대, 8인치 태블릿 두 대, 블루투스 이어폰 하나, 그리고 종이책 한 권이것이 요즘 내 EDC(Every Day Carry)다. 주말 외출에는 노트북이 가끔 추가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 하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한다면 앱도 최소한만 남기라고 조언한다.
나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스마트폰에는 정말 필요한 금융과 업무용 앱만 남기고, 그 외 앱은 모두 지워버렸다. 불필요한 소비를 막기 위해 쇼핑앱마저 삭제했다. 그런데, 내가 가진 8인치 태블릿이 둘이라 고민이 하나 더 생겼다. 새로 산 태블릿에는 LTE 기능이 있다. 결국 여기엔 쇼핑과 멤버십, 각종 여가 앱을 죄다 설치했다. 오래된 태블릿(10년차, WiFi 전용)에는 전자책 앱만 남겼다.

기기별 역할 분담은 단순한 ‘장비 나누기’가 아니다.
즉흥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을 때, 혹은 별 생각 없이 소비를 하고 싶을 때 나를 통제할 장치가 필요했다. 회사에 일을 하러 갈 때는 당연히 업무용 앱만 설치된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출근한다.하지만 퇴근 후에는 스마트폰, 태블릿, 그리고 종이책까지 모두 조합하며 일에서 벗어난 자유를 온전히 누린다. 커피 한잔 하며 책을 읽고 싶을 때는 전자책 앱을 깔아둔 태블릿만 챙긴다. 반대로, 쇼핑이나 멤버십 혜택을 누리고 싶을 때, 충동적 소비 욕구가 고개를 들 때는 LTE 태블릿을 챙긴다. 기기를 고르는 순간부터 내 행동에 어느 정도의 ‘사전 계획’이 개입된다. 첨단 기기 배분 자체가 내 소비 억제 시스템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완벽한 미니멀리스트가 되지는 못했다.
전자책 태블릿이 있어도 나는 꼭 한 권의 종이책을 들고 다닌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라고 해도 좋다. 물성을 지닌 책을 손에 쥐고, 책 표지를 펼치며 앉는 그 순간만큼은 마치 ‘실물을 소비하는 인간다운’ 만족감을 얻는다.
물론 누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 허세라고 인식하면서도 항상 챙긴다. 내 일상 속 디지털과 아날로그, 즉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이 교차하는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삶의 효율과 만족감 사이에서
디지털 시대의 미니멀리즘은 꼭 ‘적게만’ 남기는 게 아니다. 자신이 진짜 필요한 장비만 남기고, 장비의 기능을 최대로 뽑아 쓰는 맥시멀리즘적 자세 역시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태블릿 두 대를 본능적으로 분배하고, 종이책을 허세처럼 들고 다니는 습관이 결국 나만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인정하게 된다.
내 손에 들린 종이책 한 권에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작은 허세와 자존감, 그리고 미니멀리스트지만 맥시멀리스트적인 즐거움까지 모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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