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로 가르친 소비, 소비로 배우는 정리
얼마 전, 아이가 책상 정리를 도와 달라고 했다. 평소 나 혼자 정리하던 때와 달리, 함께 물건을 나누고 버리면서 아이에게 정리의 원리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
먼저 물건들을 종류별로 모은 뒤, 이미 다 썼거나 망가져 사용할 수 없는 것, 사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쓰지 않는 것, 현재도 사용 중인 것으로 구분했다.
망가진 물건부터 과감히 버리는 것으로 정리를 시작했다.
그다음 ‘사용하진 않지만 멀쩡한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 것은 12색, 24색 등 세트로 구성된 색연필과 사인펜이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세트에서 한 자루만 없어져도 늘 새 세트를 사다 보니 필기구가 쌓였다고 했다. 각 자루는 멀쩡해 버리지도 못한 채, 결국 비슷한 세트가 여러 개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함께 하나씩 맞춰 보기로 했다. 뜻밖에도 빠진 줄 알았던 세트 중 두세 개는 완전한 세트로 다시 조립할 수 있었다. 멀쩡해진 세트는 다음번 사용할 때 우선 쓰기로 약속했다. 나머지 세트 중 낱개만 남은 것들은 한주머니에 모아 두었다. 훗날 세트에서 색이 빠지면 그 주머니에서 찾아 채워 넣기로 했다. 온전한 세트는 아니지만, 나름의 질서가 생긴 셈이다.
정리를 하다 보니 아이가 주로 빨강, 파랑, 초록, 노랑을 즐겨 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히 빨간색은 항상 먼저 닳거나 사라져 있었다. 참고서를 풀 때나 공부할 때 빨간색을 자주 쓰기 때문이었다. 문구 사이트를 찾아보니 빨간색 색연필은 낱개로도 판매되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세트를 사지 말고, 주말에 가까운 문구점에서 꼭 필요한 색만 낱개로 사 보기로 했다.
이 경험을 통해 아이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고, 나는 불필요한 소비 대신 ‘필요의 소비’를 가르쳐 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작은 정리 습관이 곧 합리적인 소비와 자기 관리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나의 어린 시절은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풍요로운 시대다. 그러나 풍요를 ‘잘 누리고 관리하는 법’은 여전히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청소는 가르치지만, 물건을 정리하고 선택하는 법은 배우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아빠가 책장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책상 정리를 함께하자고 한 아이가 참 기특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에게 정리의 습관과 소비의 균형을 가르쳐 줄 수 있었던 시간이 내게도 뿌듯한 경험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