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으로 나를 만드는가
지난해 11월,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접하며 내가 먹어온 음식들의 기괴한 실체를 마주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공장에서 만든 음식이란 그저 연구원들이 가장 맛있는 조리법을 찾아 대량 생산한 결과물이라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식재료는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원자 단위로 분해된 ‘푸드 슬러리(food slurry)’로 변형되어 있었다.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본래의 성질이 거세된 재료들, 그 허전한 빈자리를 메우는 화학 약품과 최적의 중독성을 설계하는 재조합 기술. 그것이 ‘초가공 식품’의 진짜 모습이었다.
최근 바이럴 된 미국의 식단 지침은 더 이상 '무엇을 먹으라'는 권고를 넘어, '무엇을 피해야 하는가'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그렇게 결심이 조금씩 흐릿해질 때쯤, 미국의 새로운 식단 지침이 최근 인터넷에서 바이럴되는 것을 보았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자료를 접하게 되면서 초가공 식품을 줄이고 건강한 식품을 섭취하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의 신년 계획 중 하나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다행히 환경은 나쁘지 않았다. 집에서는 가족들과 천연 재료를 직접 조리해 먹고, 회사 구내식당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건강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이외의 공간, 즉 ‘틈새의 시간’에서 발생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한 끼를 때워야 할 때, 건강한 식단은 경제성과 편의성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3,700원짜리 데리버거는 348킬로칼로리를 빠르고 저렴하게 제공한다. 반면, 건강해 보이는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 들면 가격은 7,500원으로 훌쩍 뛴다. 비슷한 열량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두 배에 달하는 셈이다.
운동 전 간편하게 챙겨 먹던 단백질 바나 음료 역시 마찬가지다. 가공된 제품 대신 닭가슴살을 직접 데우고 잘라 먹는 일은, 동일한 편의점이라는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일지라도 적지 않은 번거로움을 동반한다. 초가공 식품은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시간의 측면에서도 강력한 유혹을 선사하며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조금의 번거로움을 감수하고라도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콜라 같은 액상 과당 음료 대신 담백한 탄산수나 생수를 집어 드는 일, 오후의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과자를 사기보다 아침 출근길에 사과 한 개를 챙겨 나서는 일, 간단한 식사를 고르더라도 밀가루보다는 통곡물을 선택하는 일.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 내 삶의 질감을 바꾼다.
비록 완벽하게 자연식품만을 고집할 수는 없더라도, 내가 지금 먹는 것이 나를 구성하는 세포의 재료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가성비와 편의성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푸드 슬러지의 유혹을 한 번이라도 더 거절해 보는 것, 그 불편한 선택이 결국 나를 아끼는 가장 구체적이고 정직한 실천임을 깨달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