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천 평원의 노랫소리
"축양산(杻陽之山)에 짐승이 있는데, 그 생김새는 말(馬)과 같으나 머리가 하얗고(白首), 몸에는 호랑이 같은 무늬(如虎)가 있으며 꼬리는 붉다(赤尾). 그 소리는 노래하는 것(如謠)과 같으며 이름을 록촉이라 한다. 이것을 몸에 지니면 자손이 번성한다." — 《산해경》 남산경 中
사천성 성도에 위치한 '두장연(都江堰)'은 중국 최초의 치수 시설로 불립니다. 거대한 강줄기를 나누어 사천 평야를 풍요로운 옥토로 바꾼 전설적인 장소이지요. 하지만 인간에게 '치수(治水)'와 '경작'의 승리였던 이 역사는, 그 땅에 살던 동물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잃는 '서식지 파괴'의 서막이었습니다.
오늘날 아마존 열대우림이 농경지로 변하며 생태계가 파괴되듯, 수천 년 전 사천 분지에서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생명체의 멸종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삼성퇴 유적에서 발굴된 거대한 코끼리 상아 더미는 그 증거입니다. 한때 이곳은 아프리카처럼 거대한 초원이 펼쳐져 있고, 거대한 상아를 가진 코끼리와 야생 말들이 자유롭게 뛰놀던 '아시아의 세렝게티'였을지도 모릅니다.
중원의 한족에게 점령당해 역사가 지워진 삼성퇴의 주인공들처럼, 그 평원을 누비던 기이하고 아름다운 짐승들도 기록 속에서 요괴의 형상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천 평야에 코끼리와 야생 말들이 공존하던 그 찬란했던 시절을 상상하며, 축양산의 노래하는 짐승 록촉(鹿蜀)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기록은 록촉을 '말의 형상에 호랑이의 무늬'를 가졌다고 묘사합니다. 이는 현대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아시아의 울창한 숲에 살던 말레이테이퍼(Malayan Tapir)나 오카피(Okapi) 같은 동물들이 남긴 강렬한 시각적 잔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말레이테이퍼의 새끼는 태어날 때 몸 전체에 호랑이 같은 줄무늬를 가졌다가 자라면서 흑백의 대비가 뚜렷한 모습으로 변합니다. 사천의 습한 숲속에서 빛과 그림자가 교차할 때, 하얀 머리를 치켜들고 호랑이의 옷을 입은 채 말처럼 달려가는 이 짐승의 모습은 고대인들에게 세상의 모든 강인함과 신비로움이 응축된 존재로 비쳐졌을 것입니다.
록촉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울음소리가 '노래하는 것(如謠)' 같다는 점입니다. 짐승의 비명이 아닌 노래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이 동물이 인간에게 공포가 아닌 '평화'와 '풍요'의 상징이었음을 뜻합니다.
두장연의 치수 사업 이전, 자연적인 물줄기가 풍부했던 사천 평야는 먹을 것이 넘쳐나는 낙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평화롭게 울려 퍼지던 록촉의 노랫소리는 곧 대지의 생명력을 의미했습니다. 인간의 번성으로 서식지가 파괴되고 이들이 멸종의 길을 걷게 되자,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이 동물을 '자손 번성(宜子孫)'의 부적으로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라져가는 생명의 찬가를 몸에 지님으로써, 자신들의 생명력만은 영원히 이어지길 바랐던 고대인들의 애달픈 염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삼성퇴의 유물들이 보여주는 이국적이고 압도적인 청동기 문화는 중원의 문화와는 확연히 궤를 달리합니다. 하지만 그 화려했던 문명도, 그들과 공존했던 거대 상아 코끼리와 록촉 같은 짐승들도 승자의 역사 속에서 '남방의 괴이한 이야기'로 전락했습니다.
록촉의 '붉은 꼬리'는 어쩌면 석양 속으로 사라져가는 마지막 야생의 뒷모습이었을까요? 아니면 멸종이라는 비극 앞에서도 끝까지 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그들의 마지막 열정이었을까요?
이제 우리는 《산해경》 속 록촉의 기록을 풍요로운 낙원의 실종 신고서로 다시 읽습니다.
"두장연의 물길이 땅을 가르고 인간의 곡식이 숲을 대신할 때, 노래하는 말 록촉은 마지막 호랑이 무늬를 번뜩이며 숲의 심연으로 사라졌다. 하얀 머리를 흔들며 그들이 부르던 노래는 이제 들리지 않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화려했던 가죽의 기억을 몸에 지니며 자손의 안녕을 빈다. 록촉은 재앙을 막는 신수가 아니라, 인간의 번성이 빼앗아 간 '자연의 가장 찬란했던 한때'를 증언하는 슬픈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