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녹오산의 고조(蛊雕)

욕망의 울음소리와 이성의 닻

by 중년의 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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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有獸焉, 名曰蛊雕, 其狀如雕而有角, 其音如嬰兒之音, 是食人.

"물속에 짐승이 있는데, 그 이름은 고조(蛊雕)라 한다. 그 생김새는 독수리(雕)와 같으나 뿔이 있고, 우는 소리는 갓난아기의 소리 같으며, 사람을 잡아먹는다." — 《산해경》 남산경 中




프롤로그: 시간의 밀납을 뚫고 들려오는 고전의 음성

어린 시절, 무릎을 맞대고 앉아 조부모님께 듣던 옛날이야기나 서재 한구석에서 아버지가 건네주신 낡은 고전 소설 속 문장들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씨앗처럼 심겨 있습니다. 그 씨앗은 세월이라는 비를 맞고 자라나, 나이가 들어 우연히 그 이야기를 다시 접하게 될 때 묘한 정겨움과 함께 예상치 못한 울림을 줍니다. 신기한 점은, 단순한 아동용 모험담인 줄 알았던 그 짧은 기록들이 중년이라는 삶의 고개를 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전혀 다른 '어른의 언어'로 말을 걸어온다는 사실입니다. "아, 이 이야기가 수백 년의 풍파를 견디고 살아남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은 고전이 주는 가장 짜릿한 선물입니다.


최근 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현대적 리더십과 연결하여 다시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히 세이렌(Siren)의 섬을 지나는 오디세우스의 대목은 제 흥미를 강렬하게 끌었습니다. 그는 부하들의 귀를 밀납으로 단단히 막게 하여 유혹의 소리를 차단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돛대에 온몸을 포박한 채 그 치명적인 노래를 듣기를 자청합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의 놀라운 양면성을 보았습니다. 그는 신비로운 미지에 대한 갈망과 금기된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진 한 인간'인 동시에, 그 유혹이 파멸임을 알고 미리 자신을 묶으라 명령하는 '지혜와 계획이라는 이성을 가진 리더'였습니다. 세이렌의 노래에 미친 듯이 몸부림치면서도,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대업의 계획을 지켜내는 그의 처절한 자기 통제는 부하들에게 단순한 명령 이상의 신뢰를 주었습니다. 욕망을 부정하지 않되, 이성으로 그 방향을 조율하는 리더의 모습. 어린 시절 단순한 탈출기인 줄 알았던 이 신화가 인생의 중반에 접어든 제게는 가장 현실적인 '자기 경영'의 지침서로 다가온 순간이었습니다.


동양의 고전 《산해경》에 등장하는 괴조 고조(蛊雕)에게도 이와 닮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산해경의 원문 속 고조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내어 사람을 홀려 잡아먹는 끔찍한 괴물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무시무시한 기록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전혀 다른 옷을 입게 됩니다. 맹목적으로 물질과 욕망을 쫓아 안개 속으로 뛰어드는 자들에게 고조는 세이렌의 노래처럼 죽음을 선사하는 포식자이지만,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처럼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이성을 지킨 자들에게는 오히려 천상의 세계와 미래를 열어보여주는 구원의 인도자가 된다는 이야기로 말입니다.




1.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동정심이라는 함정

고조가 내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는 자연계의 장수도롱뇽(娃娃鱼)이 내는 소리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깊은 계곡, 안개 자욱한 물가에서 들려오는 가냘픈 아기 소리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본능인 '동정심'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이 소리는 구원을 바라는 생명의 소리가 아니라, 방심한 인간을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포식자의 정교한 함정입니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노래에 매료되었듯, 고대인들은 이 기이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공포와 호기심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입니다.




2. 금과 옥의 산, 녹오산: 물질적 욕망의 상징

고조가 사는 녹오산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지만 금(金)과 옥(玉)이 풍부한 곳입니다. 이는 고조가 지키는 함정이 단순한 생존의 문제를 넘어 '물질적 욕망'과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부를 쫓아 험준한 광산으로 뛰어드는 인간들에게 고조의 울음소리는 대박의 꿈처럼 달콤하게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맹목적으로 물질을 쫓는 자들에게 고조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였을 것입니다.




3. 각색된 신화: 굴원의 충절과 천상의 세계

후대의 사람들은 이 잔혹한 요괴의 이야기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습니다.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과 같은 이들에게 고조는 더 이상 포식자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이성을 지킨 자, 고향을 향한 계획을 잃지 않은 오디세우스처럼 자기 통제에 성공한 자들에게 고조는 비로소 날개를 폅니다. 독수리의 기상과 영물(靈物)의 뿔을 가진 이 존재는,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자들을 잡아먹는 대신 이성을 가진 자들에게는 천상의 세계와 미래를 보여주는 '구원의 인도자'로 거듭납니다.




[에필로그] 다시 쓰는 산해경: 고조(蛊雕)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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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산해경》 속 고조의 기록을 인간 내면의 시험대로 다시 읽습니다.

"녹오산의 차가운 물속에서 고조가 울 때,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파멸의 시작이고 누군가에게는 각성의 신호였다. 욕망의 닻을 내리지 못한 자는 아기 울음소리에 홀려 물속으로 가라앉았으나, 이성의 돛대에 자신을 묶은 자는 그 소리 너머의 진실을 보았다. 고조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끝내 지켜내야 할 '인간다움'의 경계선을 지키는 서글프고도 장엄한 문지기였던 것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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