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아쉽지만 이번에는…"으로 시작하는 메일을 받고
하루 종일, 아니 며칠을 무기력했던 그런 날이.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그때도 거절은 나를 흔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최근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이런 일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중간 책임자로 바쁘게 일하던 시절.
마침내 오랜 숙원이었던 유학길에 올랐다.
일과 커리어를 잠시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 투자해 보기로 한 첫 번째 과감한 선택이었다.
돌아와서는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막상 돌아와 보니 복귀는 쉽지 않았다.
지원하고, 기다리고, 거절당하고.
다시 지원하고, 또 기다리고, 또 거절당했다.
그중에서도 정말 가고 싶었던 자리가 있었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다음 기회에"라는 메일을 받고 나니
예상과는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화면의 글자가 흐릿해졌다.
노트북을 덮고 의자에 기대어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가슴 어딘가에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답답했다.
그때는 이렇게 자책했다.
'아, 내가 선택한 유학이 실수였나.'
'경력을 끊지 말았어야 했나.'
15년이 지났지만,
거절 앞에서 느끼는 그 특유의 무력감은 여전했다.
다만 이번에는 자책의 내용이 조금 달랐다.
'다음 길을 정하고 그만뒀어야 했나.'
'나는 이제 예전만큼 경쟁력이 없는 걸까.'
단지 한 자리에 선택받지 못했을 뿐인데,
마치 내 존재 전체가 거부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더 아팠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거절당한 건 '이번 기회'인데,
우리는 '나 자신'이 거절당했다고 느낀다.
"이번 포지션은 다른 분으로 결정되었습니다"라는 말은
사실 "당신은 아니었어요"가 아니라,
"당신의 경험과 이력이 지금 우리가 찾는 것과 맞지 않았어요"라는 뜻일 것이다.
거절된 건 내가 아니라,
내가 해왔던 특정한 경험,
내가 가진 강점과 이력의 조합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나라는 사람 전체가 거부당했다'라고 받아들인다.
며칠 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근황을 털어놓았다.
친구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거절당했다는 건, 네가 도전했다는 증거잖아.
안전한 길에만 머물렀다면 거절당할 일도 없었을 거야."
순간 멈칫했다.
맞는 말이었다.
거절은 내가 무언가를 원했고,
그것을 위해 용기를 냈고,
나의 뜻을 펼쳐 보였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결과였다.
문득 떠올랐다.
유치원에서 받던 포도송이 그림.
잘할 때마다 포도 알맹이에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주던.
어쩌면 거절도 그런 게 아닐까.
'이만큼 시도해 봤다'는 보이지 않는 스탬프.
'이만큼 용기를 냈다'는 인생의 스티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포도 알맹이를 채울 기회조차 없다.
거절은 도전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특별한 '훈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거절들이
결국은 선물이 되었다.
첫 번째 거절 후,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두 번째 거절 후, 새로운 분야를 공부했다.
세 번째 거절 후,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만약 첫 번째 지원에서 바로 받아들여졌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머리로는 안다.
거절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때로는 더 좋은 기회로 가는 길이라는 걸.
모든 문이 열릴 수는 없다는 걸.
하지만 여전히 아프다.
왜일까.
아마도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정받고 싶고,
선택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존재니까.
그리고 그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 깨달은 것이 있다.
거절은 'Not you'가 아니라 'Not your fit, not now'일 때가 많다는 것.
나라는 사람이 거절당한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경험과 강점이
이번 기회와 맞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때로는 그 'Not now'가
더 좋은 'Yes'를 위한 준비가 되기도 한다.
사실 거절하는 쪽도 쉽지 않다.
나도 누군가를 거절해야 할 때면
며칠씩 고민하고,
거절한 후에도 마음이 무겁다.
거절은 주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거절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려 한다.
"내가 부족하구나"가 아니라
"이번엔 맞지 않았구나."
"나는 안 되는구나"가 아니라
"이번에는 안 됐구나."
"모든 게 끝났구나"가 아니라
"다른 시작일 수 있구나."
물론 여전히 아프다.
며칠은 무기력할 수도 있다.
자신감이 바닥을 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거절은 축복인지도 모른다.
내가 무언가를 원할 만큼 살아있다는 증거.
도전할 만큼 용기가 있다는 증명.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
받아들여지는 것만이 축복은 아니다.
때로는 거절당하는 것이
더 큰 축복으로 가는 길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오늘도 거절당할 용기를 내본다.
떨어질 수도 있지만 지원해 보고,
안 될 수도 있지만 시도해 보고,
거절당할 수도 있지만 고백해 본다.
거절은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일 수 있으니까.
그런 말이 있다.
"아쉽지만 이번에는…"
정중하지만 단호한 그 말 뒤엔,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문이
조용히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