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라는 말이 달라지는 순간
"와, 정말 성장했네요!"
20대엔 가슴이 뛰었고, 40대엔 복잡해졌다.
같은 '성장'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들릴까.
성장. 이룰 성(成), 길 장(長).
사전은 말한다. "사람이나 동식물이 자라 점점 커짐."
영어 Growth는 고대 영어 growan에서 왔다.
푸른빛이 되다, 번영하다.
식물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위로, 더 높이, 더 크게.
성장은 늘 그런 방향성을 가진 말이었다.
하지만 식물이 가장 치열하게 성장하는 순간은,
줄기와 잎이 아니라 뿌리를 뻗는 보이지 않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사회 초년생 시절, 성장은 눈에 보였다.
첫 직장 입사 – "나 성장했어!"
첫 프로젝트 성공 – "정말 성장했지?"
연봉 인상, 승진 소식.
그땐 성장은 계단이었고, 그래프였고, 이력서 한 줄이었다.
남들의 축하와 인정을 받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았다.
마치 성장에도 ‘인증 마크’가 필요하다는 듯.
15년 차쯤 되었을까.
프로젝트는 여전히 성공했지만 짜릿함은 덜했다.
승진 소식도 담담했다.
나는 그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제 새로운 게 없어."
"매일 똑같아."
친구들도 같은 말을 했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지만, 답답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공백이 찾아왔다.
처음으로 '나'를 위한 시간이 생겼다.
처음엔 불안했다.
"시간을 허비하는 건 아닐까?"
"뭔가 생산적인 걸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어느 아침, 차 한 잔과 함께 책을 펼쳤다.
업무 때문이 아닌, 그냥 읽고 싶었던 책.
30분만 보려다 두 시간이 훌쩍,
비 오는 날은 세 시간도 모자랐다.
성과표에도 없고,
연봉과도 무관한데,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어제는 몰랐던 걸 오늘은 알게 되었고,
생각의 결이 조금씩 달라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달라지고 있음을 나는 알았다.
얼마 전 후배를 만났다.
"언니, 저 요즘 러닝해요.
1.3km도 힘들었는데, 이제 5km 뛰어요!"
숨은 가빴지만 얼굴은 환했다.
그 표정에서 나는 봤다.
내가 새벽에 책을 읽을 때 느끼는 그 충만함을.
숫자로 증명할 수 없는 성취,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뿌듯함.
후배가 물었다.
"언니, 이게 성장 맞나요?
남편은 그냥 운동이라는데, 저는 달라요.
제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날 깨달았다.
젊을 때 성장은 ‘쌓아 올리기’였다.
경력, 실적, 인맥을 피라미드처럼 높이높이.
지금의 성장은 ‘채워 넣기’다.
비어 있던 아침을 책으로,
무뎌진 감각을 글쓰기로,
잊고 있던 몸을 운동으로.
우물처럼, 깊이깊이.
사전은 여전히 성장을 ‘커짐’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작아지는 것도,
비우는 것도 성장일 수 있다는 걸.
어쩌면 나무가 가장 크게 자라는 순간은
잎을 떨구고 겨울을 견디는 시간일지 모른다.
"언니는 책, 저는 러닝이네요."
후배가 웃었다.
맞다. 너의 5km가 나의 책 한 권이다.
누군가에겐 요리, 그림, 정원 가꾸기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남들이 정한 기준이 아니다.
내가 정한 기준,
내가 정한 속도,
내가 정한 방향.
"성장했네."
이제는 되묻고 싶다.
밖으로 커진 건가요, 안으로 깊어진 건가요?
남들이 알아주는 건가요, 나만 아는 건가요?
어쩌면 진짜 성장은
‘성장’이라는 말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게 되는 것.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비교하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
오늘 아침도 책장을 펼친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성장을 위해.
아니, 그냥 좋아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 말들, 그런 날들이 쌓여서
조용하지만 단단한,
느리지만 깊은,
작지만 충만한,
그런 성장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