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한 짝에서 터진 분노. 하지만 진짜 문제는 양말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털어놓았다.
“어제 남편한테 폭발했어.
양말 한 짝 찾는다고 서랍을 뒤지길래
‘그것도 못 찾냐’고 소리를 질렀거든.
남편이 멍한 얼굴로 날 보더라.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더라고.”
그날 오전, 6개월 준비한 프로젝트가
글로벌 본사의 결정으로 전면 무산됐다.
이유는 한국 팀인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상사가 말했다.
“왜 무산됐는지 내부 직원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간단히 정리해 주세요.”
속이 뒤집어졌다. 왜 무산됐는지는
글로벌 본사와 임원진인 본인이 더 잘 아는데,
왜 나더러 정리하라 하나.
그러나 겉으로는
“네, 정리하겠습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삼켰다.
프로페셔널하게 굴었다.
그리고 저녁, 집에 와서
남편이 양말 한 짝을 못 찾겠다며 서랍을 뒤졌다.
“양말 어디 있어?”라는 물음에,
참았던 감정이 폭발했다.
“맨날 그 자리에 있는데 왜 한 번을 제대로 못 찾아?
당신은 스스로 해본 적이 없잖아!”
그 순간 깨달았다.
남편에게 화난 게 아니었다.
낮에 상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억울함과 분노를 삼킨 채 하루를 버텼다가,
결국 엉뚱한 순간에 터져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진짜 화를 내야 할 대상이 아닌,
'안전한' 대상에게 화를 낸다.
회사에서는 꾹 참고, 거래처 앞에서는 웃고,
공식 자리에서는 괜찮은 척한다.
그러다 그 감정은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
집에 와서 가족에게. 신입 팀원에게.
콜센터 직원에게. 식당 종업원에게.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 전이'라고 한다.
원래 대상에게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다른 대상에게 옮겨 쏟아내는 것.
그 ‘안전함’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다.
하나는 ‘이 사람은 날 떠나지 않을 거야’라는
믿음에서 오는 안전함.
가족이나 오랜 친구가 그렇다.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사랑을 믿기에,
감정을 던진다.
다른 하나는 ‘이 사람은 반격하지 못할 거야’라는
계산에서 오는 안전함.
나도 모르게 상대를 만만하게 여기며,
화살을 돌린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상사에게 지적받은 날,
신입 직원의 작은 실수에 필요 이상으로 짜증을 냈다.
중요한 미팅에서 무시당한 기분이 든 날,
택배 기사님께 쌀쌀맞게 굴었다.
순간 깨달았다.
아, 내가 지금 약한 사람에게 강한 척하고 있구나.
우리는 모두 안다.
이게 옳지 않다는 것을.
비겁하다는 것을.
하지만 감정이 넘칠 때, 이성은 뒤로 밀려난다.
그리고 가장 만만한 출구를 찾는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인정하기 싫은
우리의 민낯이다.
권투에서 큰 펀치를 제대로 날리려면
온몸의 힘을 실어야 한다.
하지만 힘만 믿고 무작정 휘두르면 균형을 잃는다.
빅펀치를 빗나가게 날리면
오히려 자신이 휘청인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참고 참다가 한 번에 터뜨리면,
정작 맞아야 할 대상은 빗나가고,
엉뚱한 사람이 맞는다. 그리고 결국 나까지 무너진다.
특히 약한 사람에게
화를 낸 후의 자괴감은 오래 남는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그 부끄러움이 마음을 갉아먹는다.
억지로 삼킨 화는 몸으로 간다.
두통이 되고, 불면이 되고, 소화불량이 된다.
그리고 결국 가장 엉뚱한 순간에,
가장 엉뚱한 사람에게 터진다.
그래서 작은 펀치가 필요하다.
싸우자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경계를 드러내는 정도.
“그 말은 조금 서운하다.”
“오늘은 내가 예민한 날이야.”
“이건 다시 얘기해야 할 것 같아.”
그렇게 가볍게 툭 내지르면, 감정이 쌓이지 않는다.
빅펀치는 타이밍이 맞을 때,
정말 필요한 순간을 위해 남겨두는 게 낫다.
그 친구는 남편에게 버럭 한 그날 밤,
결국 이렇게 말했다.
“아까는 미안. 사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는데,
당신한테 화풀이한 거야.”
남편은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 근데 다음부턴
‘오늘 예민하다’고 미리 말해주면 안 돼?”
맞는 말이었다.
감정의 신호를 미리 보내는 것.
“오늘 힘든 날이야.” “잠깐 혼자 있고 싶어.”
이런 작은 신호들이 큰 폭발을 막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냈을 때
빠르게 인정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만만하게 본 사람,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화를 냈다면 더욱 그렇다.
“제가 예민했네요. 죄송합니다.”
그 한마디가 상대의 하루를,
그리고 내 마음을 구원한다.
화도 말이다.
그 말이 하루를 바꾸고, 어떤 날은 관계까지 흔든다.
누군가에겐 오래 남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서툴게 던지는 말,
그 말이 만들어내는 하루.
그것이 바로 그런 말들이고, 그런 날들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회사에서 참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가서,
혹은 더 약한 누군가에게 터뜨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다.
다만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
작은 펀치로 충분한 순간에
빅펀치를 날리지 않을 수 있다면.
적어도 내가 화를 내는 대상이
정말 화를 낼 만한 사람인지,
아니면 그저 만만한 사람인지 구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
오늘도 우리는 그 말들과 함께 살아간다.
서툴지만, 조금씩 나아지려 애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