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 작가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를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춰 섰다.
"사람의 우아함은 무너졌을 때 드러난다."
그 문장이 가슴을 깊게 찔렀다.
13년 전, 내가 완전히 무너졌던
그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막 큰 팀을 이끌게 된 시절이었다.
리더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던,
잘해야 한다는 부담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뒤엉켜 있던 시기였다.
팀의 사활을 건 캠페인 예산 문제로
며칠 동안 윗선과 씨름했다.
팀을 위해, 합리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데이터를 들이밀었고, 논리를 세웠다.
그러나 돌아온 건
차갑고 단호한 거절뿐이었다.
패배감에 젖어 돌아왔다.
싸움에 진 개처럼 꼬리를 내린 채였다.
이후 미팅에서 시니어 팀원은 강하게 항변했다.
"팀장님, 이건 정말 말이 안 돼요.
우리가 몇 달 동안 준비한 방향과 완전히 다른데...
팀장님이 더 강하게 푸시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의 말은 백 번 옳았다.
문제는 그가 몰랐다는 것이다.
내가 이미 같은 말을 위에 했다는 것을.
같은 논리로, 같은 열정으로 싸우다
처참하게 깨졌다는 것을.
그의 눈빛이 말하는 것 같았다.
'팀장님은 할 수 있는데 안 한 거잖아요.
부족해서 설득하지 못한 거잖아요.'
"오늘은 그만 이야기하죠."
내 목소리는 이미 차가웠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왜 이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물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별수 있나요. 그냥 해야지!"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날카롭고, 차갑고, 완전히 자포자기한...
체념이 아니라 폭발이었다.
더 이상 설득할 의지도, 설명할 힘도,
포장할 에너지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터져 나온 절규였다.
회의실에 충격적인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늘 이유를 설명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함께 길을 찾자고 말하는 리더였다.
적어도 그런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믿어왔다.
그런 내가 "별수 있나요. 그냥 해야지!"라고 말하다니.
팀원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충격, 당황, 그리고 묘한 연민이 섞여 있었다.
그는 그 순간 무너진 나의 민낯을 보았을 것이다.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지 않은,
완전한 자포자기의 모습을.
그날 밤,
집에 돌아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 입에서 나온 그 한 마디가 믿기지 않았다.
그것은 포기였다. 완전한 항복이었다.
늘 이유를 설명하고,
함께 길을 찾자고 말하던 내가
"별수 있나요. 그냥 해야지!"라니.
누군가 말했듯,
압박의 순간에 우리의 진짜 모습이 나온다.
그날 나는 자포자기의 민낯을 드러냈다.
사실 진짜 문제는
돌아보면, 그날의 진짜 문제는
내가 회사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누구나 싸우다 질 수 있고,
리더라고 해서 언제나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패배는 괜찮았다.
그러나 패배를 전하는 방식에서 나는 무너졌다.
팀원이 원했던 것은 맥락과 이해였다.
우리가 어디까지 싸웠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담담하게 설명하기보다
감정을 던져버렸다.
패배의 감정을 팀원에게 흘려보냈고,
리더로서 해야 할 책임 있는 설명을 포기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실패했다.
만약 내가
그날 결과를 담담히 설명했더라면,
적어도 내 의지와 진심까지
무너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날의 대화
다행히 하루가 지나고,
나는 그를 다시 불렀다.
"어제 내가... 좀 적절하지 못했어요.
전후 맥락 설명 없이... 당황스럽고 서운했죠?"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냥, 상황이 예상됐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이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구나 하고 좀 허탈했습니다."
그의 말이 칼처럼 박혔다.
그가 상처받은 건 내 실패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별수 있나요. 그냥 해야지!"라고
자포자기한 그 순간,
그의 희망까지 무너뜨린 것이었다.
"정말 미안해요.
내가 무엇을 실패해서가 아니라,
내 그 말 자체가 당신에게 상처였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좌절했어요. 팀장님도 결국..."
나는 그 '결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내가 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그렇게 된 또 한 명의 리더.
10년이 지난 지금
지금 25년 차가 된 나는 그날을 다시 떠올린다.
그 이후로 나는 그 말을 다시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날의 자포자기가
너무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무너짐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바닥을 쳤다는 것을 알았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매 순간의 선택이 우리를 만든다고 한다.
그날의 "별수 있나요. 그냥 해야지!"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최악의 선택이 이후
10년의 더 나은 선택들을 만들었다.
하루 만에 사과를 선택한 것.
팀원의 실망을 직시한 것.
그 이후 무너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리더가 되기로 한 것.
그 이후 나는 변했다.
지금도 때로는
"이번엔 그냥 하자"고 말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설명한다.
"결과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안 될 때가 있는 건 당연해요.
다만 과정에 우리가 어떻게 임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임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담담하게, 그러나 정직하게.
더 이상 완벽한 리더인 척하지 않고,
함께 불확실성을 견디는 동료로서 말한다.
"나도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이 있을 거예요."
별것 아닌 한 마디가 하루 종일 마음에 걸린다.
"사람의 우아함은 무너졌을 때 드러난다."
그날의 나는 전혀 우아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무너짐조차 과정이었다.
완전히 무너져봐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바닥을 쳐봐야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것을.
나는 그날 알았다.
우리는 모두 그런 날들을 산다.
완전히 포기하고 싶은 날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날들.
그리고 결국
자포자기의 한 마디가 터져 나오는 날들.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러나 동시에 감사한 기억이다.
그 무너짐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니까.
별것 아닌 한 마디가
10년이 지나도 가슴에 남는 이유는,
그 안에 우리의 가장 솔직한 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무너짐도, 자포자기도,
서툰 말도 결국 우리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외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더 나은 선택을 해나가는 것이다.
그런 말들, 그런 날들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다들 비슷하게 흔들리며 살아간다는 것.
그것만 알아도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