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가 어려워진 어른들에게
몇 년 전 어느 저녁,
예전 동료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저 승진했어요.
언니한테 먼저 알리고 축하받고 싶었어요."
설렘과 기대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아, 내가 이 친구에게 그런 의미 있는 존재였구나.
고마웠다.
우리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함께 일했고,
서로의 노력을 가장 잘 알았으니까.
"정말 축하해.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내가 알지."
진심이었다. 정말로.
그때 나는 전성기를 지나,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발을 딛고 있었다.
한창 고군분투하던 시기였다.
후배의 승진 소식이 진심으로 기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직 여기 머물러 있는데.
순간, 놀랐다.
평생 자격지심은 남의 일이라 믿었는데,
그 감정이 스며드는 순간이 있었다.
참 부끄러웠다.
축하받고 싶었는데
시간이 흘러, 나에게도 간절했던 성과가 찾아왔다.
힘들게 이뤄낸 일이었다.
그 소식을 전했을 때,
가장 기뻐해 줄 거라 믿었던 이들의 반응은
내가 기대했던 온도와는 달랐다.
'나만 이 관계를 특별하게 생각했나?
내 기쁨이 그들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소식 중 하나였나?'
그런 의문이 오래 남았다.
똑같은 말, 다른 온도
돌아보니 나도 그랬다.
친구의 해외 지사 임원 승진,후배의 대학원 합격.
분명 "축하해!"라고 했지만,
그날 나는 프로젝트가 무산됐거나,
앞날이 막막한 상태였다.
말은 했지만, 마음의 여백이 부족했다.
그들이 내게서 느꼈을 온도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말은 했지만, 온 마음을 다하지 못했던
그 미묘한 차이를 그들도 느꼈을 것이다.
모두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영화 원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옳음이냐 친절함이냐를 선택해야 할 때, 친절함을 선택해라."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한 마디를 전한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그 말이 참 와닿았다.
겉으로는 뜨겁게 빛나는 것처럼 보여도,
속에서는 차가운 불안을 끌어안고 있을 때가 많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도,
늘 밝아 보이는 동료도,
성공한 것 같은 선배도,
각자의 온도 차를 품은 채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내가 슬플 때 같이 슬퍼해 주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해 주기를.
하지만 상대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느슨한 관계에서 오는 뜻밖의 위로
재미있는 건,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진심 어린 축하를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예전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좋은 관계였지만
그리 자주 연락하지는 않던 사이였는데,
누군가를 통해 내 소식을 듣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정말 멋진 일이네요.
당신이라면 당연히 해낼 줄 알았어요.
진심으로 축하해요!"
순간 코끝이 찡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온 따뜻한 마음.
솔직히 나는 그녀에게 좋은 일이 생겨도
전화까지 해서 축하 인사를 건네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녀는 굳이
내 연락처를 찾아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런 순간들이 주는 위로가 있다.
꼭 자주 만나고 연락해야만
의미 있는 관계는 아니구나.
멀리서도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들이 있다는 것.
인정하고 나니 편해진 것들
그 후배와의 전화 이후,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축하를 받지 못했던 경험 이후,
나는 많은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도 질투할 수 있고,
자격지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때로는 친한 사람의 기쁨에도
온전히 함께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것.
이상하게도 그걸 인정하고 나니
관계가 더 편해졌다.
기대를 내려놓으니
작은 관심도 감사하게 느껴졌고,
내가 못 해줄 때도 덜 미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됐다.
서툴러도 괜찮은 우리
'그런 말들, 그런 날들'은
이런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는 각자의 전투를 치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가끔은, 여유가 생기면,
소중한 사람의 기쁨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자.
늦어도 괜찮다.
"그때 제대로 축하 못 해줘서 미안해. 정말 잘됐어."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옳음보다 친절함을 선택하자.
온도가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그 안에 친절이 있다면,
그 온도는 결국 따뜻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