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같이 화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by 김지은

오랜만에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과 저녁을 먹었다.
이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지만,
함께한 시간보다
그 이후 지인으로 지낸 시간이 더 길다.


그중 한 명은
요즘 한창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원래 자신의 전문 분야에 더해
다른 본부까지 맡게 되면서
역할이 크게 확장되었다.
낯선 조직, 다른 결의 사람들과
부딪히고, 배우고, 또 부딪히고 있었다.


오랜만의 자리였고,
내가 무척이나 아끼던 그 후배는 처음으로
속마음을 길게 꺼냈다.
얘기를 듣다 보니
속상함, 억울함, 지침, 답답함…
그런 마음들이 말에 묻어나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또 다른 동료는
순간, 그 누구보다 열을 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 해.
다 비키라 해."
그 말투로 요약될 단호한 반응.
후배가 꾹 누른 감정을
그대로 꺼내 대신 쏟아낸 듯했다.


나는 조금 달랐다.
저런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지금 겪는 일은 어쩌면
성장통 같은 걸지도 몰라.
잠시 물러나도 괜찮고,
시간이 좀 걸려도 결국
지금보다 훨씬 단단해질 거야.”


말하자면,

정리를 해주려 한 게 아니라
그 마음이 놓일 자리를
찾아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같이 화내줄 걸.



나는 T 성향이다.
늘 문제를 정리하고
솔루션을 찾는다.
그게 나라고,
그게 도움이 된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어쩌면,
그건 내가 더 편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감정을 감당하는 대신,
해결하려고 했던 것.
공감하는 대신,
정리해주려 했던 것.


나는 T 성향이라는 말을
스스로의 방어막처럼 써왔는지도 모른다.


사실 공감은 더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내가 나를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자리에 서보는 일.
그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는 일.



그날 저녁,
같이 화내준 그 동료를 보며
한 가지를 또 배웠다.


때로는 위로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같이 화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마음을 대신 풀어주는 그 한마디가,
"그럴 수 있지"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줄 때가 있다.


말은 때로 너무 앞서간다.
좋은 의도라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오히려 멀게 느껴진다.
말이 먼저가 아니라
그 사람 옆에 있어주고 있다는 감각,
그게 먼저여야 한다는 걸,
나는 또 한 번 배운다.


그 사람이 자기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도록,
내가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그 옆에 어떻게 있어줄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제의 말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 해. 다 비키라 해.”
그 말 안에 있었던 마음들.
‘너 잘못 없어.’
‘네가 참았던 거 알아.’

‘대신 말해줄게.’


누군가 내 마음을
그렇게 같이 내주었을 때,
그날은 아주 조금
살 만해진다.


그렇게, 말 한마디에
세상이 조금 덜 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 내어주었던 기억이 있나요?
혹은 힘들었던 어느 날,
내 마음 대신 화내주던 누군가가 있었나요?


위로는 멀리 있는 정답이 아니라,
곁에 서준다는 감각에서 오는 것 아닐까.


그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너 대신 화내줄게."

말보다 큰 마음이 담긴,
그런 말이.
그런 날이.

아마 우리 모두에게 그런 순간들이 있을 거예요.
누군가를 위해 화를 내준 날도,
누군가가 나를 위해 화를 내준 날도.
그런 날들이 쌓여서
우리는 조금씩 덜 외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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