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

by 김지은

그런 날이 있다.
수백 번의 거절 속에서도
단 한 번의 “함께 일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듣는 날.
그 한마디에

지난 모든 상처가 씻겨 내려가는 그런 날이 있다.


배우의 캐스팅처럼


배우는 캐스팅을 통해
작품을 만나고 배역을 갖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명배우들 중에도
수십, 수백 번의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사람의 얼굴’을 남긴 배역을 만난

경우가 많다.

젊은 시절 배우를 꿈꾸던 지인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캐스팅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당하는 거잖아요.
결국 누군가의 손에 달린 건데,
평생을 그렇게 산다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


그때는 단순히
배우라는 직업의 특수성으로만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그 말이 우리의 인생에도, 커리어에도
닿아 있음을 느낀다.


우리 모두의 오디션


직장 생활을 돌아보면,
우리는 매일같이 크고 작은 오디션을 치른다.
입사 면접, 프로젝트 배정, 승진 심사, 이직…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입장이 된다.


아무리 준비를 완벽하게 해도,
능력이 충분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조금 더 경험이 필요할 것 같아요”,
“팀 분위기와는 맞지 않을 것 같아요”
같은 말일 때가 많다.


거절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본질은 같다.
최종 결정은 내 손에 있지 않다는 것.
거절이 디폴트이고,
캐스팅은 예외이자 기적이라는 것.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특히 간절할 때,
절실할 때의 거절은 더 아프다.



힘들 때 더 빛나는 알아봄


돌아보면 가장 오래 남는 순간은,
오히려 힘들 때 찾아온 ‘알아봄’이다.
내가 흔들릴 때,
내 안의 가능성을 내가 다 보지 못할 때,
“이 일은 당신이어야만 해요”라고 말해준 순간들.


그 말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 한마디는
수십 번의 거절보다 강했다.

결국 기회는 내가 만든 것 같아도,
누군가의 알아봄 위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나를 알아봐 준 얼굴들


스무 해 넘은 시간을 돌아보면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를 알아봐 준 사람들이 있다.


첫 회사에서, 다른 결의 경험을 가진 나에게
가능성을 보고 기회를 내주었던 첫 상사.
치열한 경쟁자들 사이에서도
“딱 내가 찾던 인재”라며 나를 선택해 주었던 채용 책임자.
같은 산업 배경은 전혀 없었지만,
오히려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며
과감하게 발탁해 주었던 경영자.


그리고 최근의 한 장면도 떠오른다.
힘든 시기였지만,
나의 첫 책 원고를
한눈에 알아봐 준 출판사가 있었다.
그들의 시선 덕분에
원고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책이 되었고,
세상에 소개될 수 있게 되었다.
돌아보면, 그 또한
누군가의 ‘알아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이 건넨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 역시 누군가를 캐스팅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면접관으로, 리더로, 프로젝트 책임자로.
선택하고 거절하는 자리에 서면서,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거절당했을 때의 막막함,
선택받았을 때의 감격.
그 기억은
내가 누군가를 대하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캐스팅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


요즘은 더 이상
누군가의 선택만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신의 브랜드를 세우고,
1인 기업을 만들고,
스스로 무대를 기획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온전히 혼자 설 수는 없다.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도,
그 무대를 봐주는 관객이 필요하다.
함께 일할 동료, 기회를 주는 누군가는 여전히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캐스팅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선택받고, 때로는 선택하며.
때로는 거절당하고, 때로는 거절하면서.


거절은 내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알아봐 주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지금 곁에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아직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데
먼저 나를 믿어주었던 사람.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은데
내게 기회를 내어주었던 사람.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당신이어야만 해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있는가.


그런 말이 있다.
거절은 일상이지만,

알아봐 주는 순간은 기적이다.
그런 날들이 쌓여 우리는 버티고 또 나아간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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