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웅 Oct 16. 2023

불을 가지고 논다는 것 - 1

기꺼이 불에 데일 수 있는 용기, 혹은 그 오만.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처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명의 이기 혹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기술 따위를 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불이 가장 대중적인 비유가 된 첫째 이유는 잘 쓰면 유용하지만 못 쓰면 위험할 수도 있는 그 본질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불 이외의 자연의 원소로는 물, 흙, 바람 등이 있겠고, 모두 잘 쓰면 유용하고 못 쓰면 위험하다는 특성은 같다. 그럼 왜 굳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그 많은 자연의 원소들 중 유독 불을 훔치는 역할을 프로메테우스에게 부여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아마도 불은 다른 원소에 비해 압도적으로 잘못 썼을 때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화상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심한 고통 랭킹에서 최상위권에 위치한다. 그럼에도 고대 그리스인은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쳤다고 설정했다.


나는 메탈 음악을 작사/작곡하는 능력, 그리고 그걸 그럴싸하게 부를 수 있는 보컬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음악은 마법과도 같아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모두 다 담을 수 있다. 메탈은 그중에서도, 인생의 어떤 한 장의 끝에서 느끼는 극단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나는 그 기술을 손에 넣기 위해 지난 10년간 부단히 노력했고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온몸을 다해 가장 멀리 나아가, 손 뻗을 수 있는 끝까지 뻗었을 때, 그때만 얻을 수 있는 짜릿한 피드백.


이 짜릿한 말초적인 감각은, 내 예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비로소 검증받는 과정이다. 그때 얻는 피드백의 짜릿함은 지금껏 내가 줄곧 옳았음을 확인받음에서 오는 전율일 수도 있고, 일부 잘못 생각해 왔음을 확인받는 뼈아픈 고통일 수도 있다.(때로는 그저 단순히.. 너무 오랫동안 뻗어온 근육의 만성적인 피로에서 오는 '찌릿함' 일 수도 있다..) 이런 극단 끝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순간의 감정을 담기에는 그 어떤 음악에 비해서도 메탈이 가장 어울린다. 이를 감히 '메탈 음악의 정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단했던 고등학생 생활 때부터 이런 '메탈 음악의 정수'에 매료되었다. 메탈 음악은 종종 삶의 한 챕터의 끝에 도달해야만 얻을 수 있는 깨달음과 반성의 순간을 담곤 했다. 이 수록하고 있는 순간이 비록 나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지라도, 그 극단적인 감정에 교감하며 전율했고, 그렇게 등골 서늘해지는 짜릿한 깨달음으로 가득한 삶을 언제나 살 수 있길 바랐다. Anathema, Slipknot, Between the Buried and Me, TesseracT 등의 거장들을 동경하며 그들과 같은 음악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불을 자유 자재로 가지고 놀면서 인생에 대해 논하는 장을 만들어 내는 경지. 그게 곧 본받을 만한 어른이고,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생각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은 음악을 하지 않는다. 더욱이, 평범한 사람은 메탈 음악을 하지 않는다.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프로그레시브 메탈코어" (Progressive Metalcore: 메탈과 하드코어를 접목한 뒤 이를 전위예술로 승화시키면 된다)라는 해괴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다.


내가 이 길에 뛰어들 때는 흔히 하는 표현으로 "불길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그저 그 매력에 몸을 내던졌다. 예측할 수 없는 독특한 박자감각과 쉴 새 없이 지글거리는 기타, 그 위에 얹어지는 원초적인 절규의 보컬. 이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이 분명히 있고, 이렇게 해야만 담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내게 있어 이건 "프로그레시브 메탈코어"라는 장르만이 가진 압도적인 힘이다. 그 힘이 나를 불태울 수 있음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굳이 생각해보진 않았다는 뜻이다.


메탈을 "Niche"(소수취향)라고, 프로그레시브 메탈코어를 "Niche within a niche" (소수취향 중의 소수취향)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고, 솔직히 고백하, 그걸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도 못했다. 몇몇 전설적인 밴드의 환상적인 명반(좋은 앨범)이 내뿜는 찬란한 에너지에 현혹되어, 왜 저런 불 같은 밴드가 세상에 더 없는 건지만 생각했지, 차갑고 조용하게 명반을 만들어내는 밴드들이 왜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세상 구석구석에 꼭꼭 숨어있는지는 미처 생각해 볼 수 없었다. 잘 나가는 작곡가들은 메탈을 만들지 않고 KPOP을 만들고 있는지 애써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무튼 10년 전, 나는 그 불에 뛰어들었다. 기꺼이 불에 데이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를 갖고. 물론 메탈은 팔리지 않는다는 정도는 당시에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메탈이라는 불의 위험성이 그저 '인기 없음'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름의 대안책으로 '직장생활 병행'이라는 특권을 얻어냈다는 점은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용기는 곧 오만으로 판명 나는 '배드엔딩'을 맞이했을 것 같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지난 10년간 메탈 음악을 하면서 왜 메탈을 하기가 힘든지에 대해 서서히 이해하게 된 이야기를 하겠다. 이에는 메탈 음악 자체의 특성, 자본주의 시스템의 논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 개인의 행복의 문제가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