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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일제와 정년 연장

한국 노동시장의 미래를 위한 현실적인 선택은?

by 시소수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주 4일 근무제와 정년 연장이라는 두 가지 큰 변화가 동시에 논의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근무 시간은 줄이고 정년은 늘리는 게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이슈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인구 고령화와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이 두 가지 흐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주 4일제, 정말 가능할까?

요즘 직장인 사이에서 주 4일 근무제는 핫한 키워드입니다. 워라밸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장점 때문에 기대감도 높고요. 실제로 많은 대기업과 일부 공공기관에서도 주 4일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논의 중인 주 4일제는, 해외의 성공 사례와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주 4일제'는 보통 주당 32시간 근무를 의미합니다. 영국이나 아이슬란드 등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된 방식이죠. 임금 삭감 없이 근무 시간을 줄여 직원들이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만족도도 높아졌습니다.

반면, 한국에서 추진 중인 대부분의 주 4일제는 주당 총 근무시간 (40시간or52시간)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근무일만 압축한 형태입니다. 즉 월~목요일까지 더 오래 일하고 금요일을 쉬는 방식이죠. 이 경우 근로자들은 업무 강도가 올라가고, 실질적인 휴식 효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임금 삭감 없는 진짜 주 4일제는 기업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은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죠.

또한 모든 업종에 똑같이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처럼 현장 근무가 필수적인 곳에서는 현실적으로 도입이 쉽지 않습니다. 특정 업무의 근로자만 혜택을 받는다면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고, 특정 산업으로의 노동자 쏠림 현상이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결국, 한국형 주 4일제가 성공하려면 단순히 '금요일을 쉬는 날로 만든다'는 접근보다는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효율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이 반드시 함께 따라와야 합니다.

그리고 고용 측의 권리와 고용노동법 등의 제도 및 법안 또한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라, 모두의 사회적 합의 없이 진행되어서는 보다 큰 갈등을 일으킬 것입니다.


정년 연장, 피할 수 없는 선택?

정년 연장 논의 역시 한국 사회의 초고령화를 고려할 때 피하기 어려운 이슈입니다. 현재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18.4%를 차지하며, 곧 초고령사회(20% 이상)로 진입할 예정입니다. 생산 가능 인구감소는 경제 성장 둔화와 노동력 부족이라는 문제를 낳죠.

또한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정년퇴직 연령 사이에 공백이 발생하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현재 법정 정년은 60세지만, 국민연금 수급 연령은 점점 높아져 2033년부터는 65세가 되어, 이 사이의 기간에 많은 고령층이 소득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년 이후에도 불안정한 일을 찾거나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이유죠.

정년 연장은 고령층에게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활동을 보장하고, 숙련된 인력을 유지해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고임금의 고령 인력을 장기간 고용하는 게 큰 부담이 됩니다. 또한 청년층 입장에서는 좋은 일자리를 두고 고령층과 경쟁해야 한다는 우려도 있고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년 연장과 함께 임금 체계 개편(직무 중심, 성과 중심), 임금피크제 같은 유연한 제도를 함께 도입해야 합니다. 일본의 사례처럼 정년 연장 외에도 재고용, 정년 폐지 등 다양한 형태로 고령자의 고용을 유지하면서 임금 부담을 줄이는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 4일제와 정년 연장,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두 정책을 따로 보면 상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유연성'을 도입하면 충분히 공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 4일제 논의를 단순한 근로일 단축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근무(파트타임, 원격 근무, 유연 근무제)를 허용하는 형태로 추진하면, 오히려 고령층에게 더 적합한 노동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풀타임 근무가 어려운 분들이 많기 때문에, 유연한 근무시간을 통해 고령자들이 더 오래 노동 시장에 머물 수 있도록 지원하면 기업도 부담을 줄이고, 청년층에게도 새로운 고용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즉, 근로자의 생애주기에 맞춰 노동 환경을 조정하는 '생애주기적 접근'을 통해, 주 4일제와 정년 연장이라는 두 가지 흐름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노동자 또는 제삼자 관점에서의 고려이기 때문에 사측의 권리와 이익도 충분히 고려한 방식이 제안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 노동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정책

두 이슈를 성공적으로 관리하려면 통합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1.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정년 연장과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자, 기업, 청년, 고령자 모두에게 민감한 문제입니다. 정부와 기업, 노동계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충분한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2. 주 4일제는 생산성 중심으로 접근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주 4일제의 도입이 성공한 나라들의 경우 높은 노동생산성으로 주 4일제가 가능한 것임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3. 임금체계 개편 및 계속고용 옵션 다양화

정년 연장을 추진하려면 직무 중심 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재고용·정년 폐지 등 다양한 고용 형태를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4.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

전 생애에 걸친 직업훈련 시스템을 강화하고, 고령자들이 유연한 근무 형태로 노동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5. 청년 고용 대책 병행

정년 연장으로 위축될 수 있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고하기 위해, 청년 대상의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합니다.


변화하는 시대, 새로운 노동시장 모델이 필요하다!

한국 노동 시장은 지금 중요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단순히 근로일을 줄이거나 정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공존하며 지속가능한 노동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주 4일제'와 '정년 연장'은 상충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정책입니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정책 설계를 통해 일과 삶의 균형, 경제적 안정, 그리고 세대 간 공존이 가능한 한국 노동 시장을 만들어 나가는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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