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누굴까?

편도 1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사람과 연애 감정을 가진 상황에서

by 보라

개인적으로 밤 늦게 쓰는 글은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시간이 없어 이렇게라도 일상을 남기고자 한다. 그와 나의 연애라고 할 수 없는 관계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말리고 우리만 사랑에 빠져있는 그런 흔한 관계라고 할 수 없는, 그러고 싶지 않은 특이한 기억이다.


난 아직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오늘은 그와 전화를 하며 이 얘기를 했다. 본인이 어떤 사람같냐고 묻길래, 넌 솔직함을 좋아하고 규칙적인 패턴을 좋아하고 거짓말을 싫어하고, 타인에게 섬세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등의 여러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은 언제 느꼈냐기에 나의 병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걸 메모해두는 너를 보며 알게 되었다 했다. 이 사람은 또 메모하는 내 모습에도 감동 받았대. 나는 기억력이 안 좋아서 메모를 달고 사는 것뿐인데. 덧붙여 나는 당신에 대해서 문서를 파서 정리해뒀다고 했더니 놀라면서 자기도 그랬대. 우리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네?


그는 나이에 비해 빠르게 본인 집을 갖게 된 사람이다. 요즘 자꾸 내게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가고 싶은데 주변에서 너무 빠른 것 같다고 우려가 많다. 그건 아마 내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몰려있는지 몰라서 하는 이야기겠지. 내일은 솔직하게 말 해봐야겠다. 우리집에서 나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그리 존중받고 있지 못하고 더 힘들어지기 전에 독립을 하고 싶다고, 근데 당신이랑도 나는 오래 보고 싶어서 그냥 다른 친구랑 독립을 하고 싶다고. 나와 독립할 의향이 있다는 친구를 찾았다고. 그것도 다 네 덕분이지만. 배신감을 느껴할까, 어떤 반응일까. 얼굴을 보고 말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아, 그냥 이 사람이 돌아오면 얼굴 보고 이야기해야겠다.


요즘은 매일 학원을 다닌다. 100% 복습을 하고 있지 못하고 어떨 땐 노느라, 언제는 아프다는 이유로 빠지기도 하지만 꽤 성실히 숙제정도는 해가고 있다. 내 미래를 위한 노력인데 그냥 우물에서 물을 퍼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도 하는 거지. 노력도 가끔 나를 배신하긴 하지만 과정은 뭐가 됐든 내게 힘을 준다. 오늘 중국어 수업을 들어가기 전 그와 한 대화가 인상깊다. 수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쩌다가 내가 재수를 했다는 걸 알리게 됐고, 수능 관련해서 했던 서로의 바보같은 일화에 대해 말하게 됐다. 그는 논술도 잘 봤고 최저도 다 맞췄는데 한국사를 못 봐서 지망 대학을 못 갔다고 했다. 나는 수능을 보고 번아웃이 와서 논술을 놨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외대 LD 학부(심지어 내가 재수를 결심했던 학과)의 2합3인가 3합4라는 극악무도한 최저를 맞췄는데도, 여기가 미달이었는데도 기준에 도달하지 못해서 정시로 대학을 가게 됐다. 심지어 나는 더 높은 학교를 갈 수 있었는데 엄마가 너무 불안해한다는 이유로 안정으로만 써서 상향으로 쓰려던 학교를 실제로 썼다면 갈 수 있는 성적권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정말 안타까워하며 앞으로의 선택은 네가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겐 그게 독립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내밀한 얘기도 했었네 돌이켜보니.


독립.

사람답게 살고 싶고 나도 사람들이랑 대화하면서 식사하고 싶고, 이 죽은 듯 사는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다. 우리집은 비교적 잘 사는 편이다. 재산 자체도 많고 아빠가 오래 실직한 상태여도 부유하게 살고 모부는 몇억씩 주식에 투자한다. 근데 그게 행복의 척도는 아니더라. 나는 하루에 몇십개의 약을 먹고 그렇지 않으면 당장 일상 생활도 영위를 못한다. 나는 정말정말 솔직히 건물주보다도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더 부럽다. 아침약을 먹었던가 매일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매일 자기 전에 저녁 약과 자기전 약을 먹어도 되지 않는 사람이 참을 수 없이 질투 난다. 이 집의 사람들은 내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 같다. 내가 아프다는 것이 자신들의 흠이 되는 것처럼 여기고. 그건 사랑이 아니야. 내가 사랑받고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늘 툭 치면 울 것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리 없어. 타인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구원으로 여기고 있을리 없다고.


원망, 사랑, 허기, 이런 것들이 언제쯤 해결될까.

자우림의 27 노래 가사처럼 내게 빼앗긴 행복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제발, 열심히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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