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는 건물주. 비록 그 건물이 지붕이 반쯤 무너진 폐가더라도.
2016년 어느 날 남자친구(aka 최소장)가 땅을 산다고 했다. 방송을 통해 스토리가 미화되었지만 사실 나는 그 땅을 산다고 할 때는 그 땅이 어디인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물론 그는 협소주택을 짓겠다는 계획이 있었고 서울의 여러 지역을 검토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열 평 짜리 땅을 샀다. 아무렇지 않게 땅을 샀다고 말하면 엄청 부자같이 보일까봐 노파심에 말하는데 우리는 부자가 아니다. 땅의 가격은 딱 1억이다. 서울에서 부동산 가격으로는 마치 편의점에서 1만 원 정도 되는 금액같다. 값비싼 와인을 살 수 없지만 맥주 4캔 정도 넉넉히 누릴 수 있는 그런 느낌이 있는 소소한 금액이다.
그런데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10년이 넘게 보아온 내 남편은 자라(Zara) 매장에서 바지 하나를 사는데에도 두세번은 가보아야 구매할 마음이 서는 사람이다. 결심이 오래 걸린다. 매장에 가도 내가 여자 옷을 다 보고 돌아올 때까지 여성복 매장의 반도 되지 않는 남성복 매장에서 아직 매장의 반도 미처 돌아보지 못한다. 좋은 말로 하면 꼼꼼하고 세심한 것이고, 내 말로 하면 느려터진 것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되 효율성 따위는 없다. 그런데, 그 남자가 땅을 샀다. 나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땅을 보러간다고 했을 때나 산다고 했을 때 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반대했으면 살 리도 만무했다. 그 사람은 반대를 무릎 쓰면서 무언가를 진행할 만큼 대범한 성격도 아니고 갈등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이라 갈등의 불씨라고 생각되면 알아서 꺼버릴 사람이다. 결혼 생각이 크게 없던 나는 사서 잘못되어도 그것은 너의 업보인 것이다 라며 뒷짐을 지고 있었다
딱히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나는 주변 사람이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고 할 때 반대하는 성향이 아니다. 되려 도전에 늘 응원을 보낸다. 그게 실패로 이어질 것 같아도, 실패할 것이 분명해보여도, 새로운 도전으로 배우는 것이 있겠지하며 조금은 무책임한 응원을 보내는 편이다. 그래서 땅을 산다고 했을 때도 그러라고 했고, 그러려니 했다. 돌아보니 그게 나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생각이 매우, 아주 많이 짧았던 듯 싶다. 그게 내 삶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릴 줄이야. 나비 효과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사업가 성향이 아주 없는 남자친구가 사업(사무소를 개업한다고 했을때)을 한다고 했을 때 불안하긴 했지만, 주변에 현명한 사람이 많으니 알아서 잘 헤쳐가리라 짐작 했었다. 그런데 그 현명한 사람이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나는 현명하지도 않은데.
변명을 해보자면 땅을 구매하겠다던 그 시기 나는 회사 일이 매우 바빴고, 일에 치여서 사실 남자친구 일을 충분히 검토하고 들어줄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저 그의 말을 반쯤 듣고 반쯤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여주며 여자친구로서의 도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 어느 일요일 저녁, 땅을 사고 싶다 얘기했고 나는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커피처럼 애써 미소 지으며 신경써주는 척 했지만 사실 머리속에 내일 회사 가기 싫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회사를 다닐 적 나는 일요일 저녁에는 울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중대한 느낌으로 이야기했는지,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는지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글을 쓰려면 이러한 중대한 내용의 기억을 잘 간직하고 있어야 했는데 나는 그저 회사원이었다. 진짜 회사에 가기 싫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 그가 땅을 계약하러 간다고 전화를 했다. 땅이 그리 비싸지도 않았기에 잘 하고 오라고 했고 잘 하고 왔다고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남자친구는 건물주가 되어 있었다. 요즘 말로 조물주보다 더 전능한 건물주가 내 남친이었다. 다만 그 건물의 지붕이 반 쯤 무너져 버린 폐가이며, 그 동네 바퀴벌레와 고양이의 아지트라는 점은 감안한다면 말이다.
남자친구는 이 땅으로 사실 사업을 한다고 했었다. 폐가를 허물고 협소 주택을 지어 원하는 사람에게 되판다고 했다. 사업자 등록을 한다는 둥, 사업자로 취득하는 것이지 개인 자산이 아니라는 둥.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해서 나는 몰라도 되는 줄 알았다. 그랬기에 내가 별로 신경을 안 써도 될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땅을 사고 나니 남자친구의 말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 이런 저런 대안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새 집을 지어서 전세를 준다고 했다가. 소유한다고 했다가. 일찍 폐가를 철거한다고 했다가. 조금 있다가 한다고 했다가. 처음의 목적과는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나는 이 말들이 누구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고 지낸 지인 분의 말 같기도, 아까 만난 부동산 아저씨의 말 같기도, 사무실을 공유하는 건축가 소장님 말 같기도 했다. 휘둘리는 것이구나. 내가 나설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아아. 이 날이 오지 않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계획적으로 삶을 사는 나는 이러한 계획의 전면 수정이 납득하기 힘들다. 계획과 다른 전개는 늘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나는 계획과 목적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변수를 최소화해서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다. 그게 저질 체력의 끝을 달리는 내가 에너지를 아끼며 사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가 제안한 일의 진행 과정과 방식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듯 보였고, 이제 내가 그의 일에 끼어 들어 현명한 선택을 내리게 끔 도와주어야 할 차례가 된 것이다. 이런 일이 없기를 그토록 바랐건만.
남자친구는 잘못된 선택을 내렸다. 바로 나의 의견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나와는 성향이 다른 남자친구와는 큰 프로젝트를 하지 않기로 다짐했건만 정이 뭔지 함께 고민해보기로 결정했다. 이제 꼼꼼하고 작은 것도 따지고 드는 나에게 들들 볶일 일만 남았다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남친은 내가 하라는대로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우리는 얼마 안되는 전재산을 걸고 빚까지 얻어 집을 짓게 될 팔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직접 가보니 나의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이렇게 좋은 땅을 서울에서 1억에 구매했다니 새삼 남친의 안목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유부단한 남편 성격과 달리 그렇게 거침없이 땅 구매를 진행할 수 있었구나 하며 무릎이 탁 쳐지는 순간이었다.
건축가인 전 남친이자 현 남편 최소장은 말이 많다. 특히 건축을 모르는 내게 끊임없이 건축 이야기를 한다. 이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건축가 여자친구 10년의 경력은 유명 건축가들의 이름을 외울 수 있게 했고, 그들이 지은 건물을 단번에 알아보거나, 아직 지어지지 않은 공간에 대한 상상해 볼 수 있는 능력을 배양했다. 나는 건축 수다로 단련된 능력을 발휘하여 남친이 산 땅에 지어질 집을 상상해보고는 단번에 그 집이 갖고 싶어졌다. 서울 한복판에서 느티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소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 나는 생각했다. 도심에서 가깝지만 시골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곳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물론 벌레는 좀 많겠지만 촘촘한 방충망으로 발라버리면 충분히 감당해 낼 가치가 있을 거라고 다독였다.
집을 짓기로 한 결정으로 인해 20년 이상 주창해온 “내 인생에 결혼은 없다”는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혼은 정말 하기 싫었지만, 이를 이길 만큼 이 집을 짓는 일이 가치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집에서라면 둘이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이 땅이 너무 좋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으니 사업해서 팔지 말고, ‘우리가 살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남친은 세상을 다 가진 건치 미소를 보여줬다. 특유의 우유부단함의 계략에 넘어간 것은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