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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자영 Apr 07. 2020

자기소개 잘하는 법

내 안에서 나를 지탱하는 한 단어


말에 대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어딜 가나 자기소개를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에도 커뮤니티에 가서도, 심지어 지난 2017년 4월부터 작년까지 함께 기획해 운영하고 있는 브랜드살롱 Be my B에서는 2주에 한 번 새롭게 오는 사람들에게 매번 자기소개를 했었다. 이제 자기소개라면 꾹 누르면 바로 튀어나올 정도로 단련이 됐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나는 아직도 자기소개가 제일 어렵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각 산업의 경계에 서서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세상이 규정한 어떤 한 업으로 나를 설명하는 것이 힘들어졌다는 것과 언젠가부터 (아마도 수많은 자기소개를 듣고 난 후에 생겨난 생각인 것 같은데) 어떤 하나의 타이틀로 나를 소개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없는 것인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또 생각해보면 '자기소개'라는 것이 다른 의미에서는 나를 정의하는 것인데, 나라는 사람을 정의한다는 것이 역시나 누구에게나 쉽지 않을 일일 터. 그에 반해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나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지는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는데에는 일과 삶을 분리시키지 않는, 결국 일로서 무언가를 성취해내고 그게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특성이 그대로 반영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한 때 일과 삶을 분리하려 노력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참히 실패했다. 2016년 나는 5년간 정규직으로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며 내 삶의 화두를 'Balance'라고 명명했다. 겉으로는 아주 멋지게 일과 삶의 밸런스, 긴장과 이완의 밸런스를 외쳤고 그 때 내가 했던 일은 일주일에 몇 번을 일하고 몇 번을 쉬어야 내 삶이 윤택해질까, 어떻게 하면 일을 조금 하면서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까, 라는 의미 없는 기준을 세우는 일이었다. 나는 내 삶의 밸런스가 어긋나는 이유를 단순히 일의 총량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일의 총량을 줄인다고 해서 내 삶의 밸런스가 잡히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오히려 단단했던 무언가가 느슨해지고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그 이후로 일과 삶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나만의 밸런스를 찾는 줄타기와 같은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아슬아슬함과 짜릿함이 함께하는 편이 나와 잘 맞는다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드디어 최근에서야 일과 삶의 통합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인가, 나는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정리하는 것이 곧 나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내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정의내리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8년차 전문 프리젠터다

전문 프리젠터라는 직업은 내가 입사를 준비할 2013년 처음으로 들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겐 생소한 직업이다. 전문 프리젠터는 말 그대로, 프레젠테이션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이다. 프레젠테이션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발표'만 떠올릴 수 있지만(분명 나도 입사 초기에는 그렇게 생각을 했고, 발표 외에 어떤 일이 나에게 주어진다는 것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사실 프레젠테이션은 훨씬 더 앞 단의 기획 과정이 포함된 단어이다. 어떤 공간에서 이 공간을 운영할 사업자를 찾는다는 <입찰 공고>가 뜨면 우리와 같은 영업사원들이 담당자와 미팅을 한다. <담당자 미팅>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이를 통해 프레젠테이션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담당자와의 미팅을 통해 뽑아낸 다양한 정보들로 우리는 운영에 대한 기획을 하고 문서형태의 <제안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문서를 심사위원들 앞에서 설명하는 자리. 그게 바로 <제안 설명회>이고 경찰 프레젠테이션이다. 전문 프리젠터는 이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고, 심사위원이 가장 원하는 이야기를 회사를 대표해서 전하는 역할을 맡는다.


입찰 공고 -> 담당자 미팅 -> 제안서 작성 -> 제안 설명회 -> 결과 발표


주로 내가 하는 일은 제안서에서 프레젠테이션 자료로 변경될 때의 전체 스토리 기획과 오프닝, 클로징 작성, 프레젠테이션 자료의 컨셉을 잡는 일이다. 우리가 가장 전해야 할 이야기를 "One Point Message"로 찾아내고 이를 컨셉화하여 전체 프레젠테이션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쫀쫀하게 기획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은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40분 정도 진행하는데 이 주어진 시간 동안 청중이 지루하게 않게 우리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하나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정이 수반된다.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나는 한 번도 기획을 배워본 적이 없었고, 내 머릿속에는 그저 소설을 분석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일련의 플로우만 자리 잡혀 있었다. 한 권의 소설책이 시작되고 마무리 되기까지의 과정. 그러니까 주인공이 등장하고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복선이 깔리고, 사건이 발생하고,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마지막으로 해결되는 플로우. 소설에서는 보통 ‘플롯’이라고 말하는데 대학 4년 동안 작품별로 이 구조를 분석하던 것이 어디 가지 않았을 게다. 물론 처음부터 '소설처럼 기획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획의 틀이 나에겐 너무 어렵고 답답하게 느껴졌고, 이를 조금 새롭게 바꿔볼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을 꽤 오랫동안 해왔다. 그때 내가 무언가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변화의 중심으로 들어갈 정도로 스스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입사 당시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더욱 열심히 실력을 쌓았다. 드디어 내부적인 구조를 어느정도 이해했을 때, 나는 이 스토리 플로우를 프레젠테이션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프레레젠테이션. 나는 이 일에 흠뻑 빠져 일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지만, 이 일을 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게 이 일 안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훌쩍 3년이 지나 있고, 돌아보니 훌쩍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회사에 정규직으로 다닐 때는 당연하게 "안녕하세요, 아워홈의 전문 프리젠터 채자영입니다." 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지금 돌아보면 무척이나 매력없고 특색없는 자기소개이다. 그런 나를 보며 친한 지인들은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프레젠테이션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라고. 그 당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다.



어떤 단어로 나를 정의내릴 것인가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의 일을 '확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자리잡은 것이다. 단순히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이 업을 발판 삼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찾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의 ‘일의 확장’에 대한 고민은 시작됐다. 스스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 때, 나 안에서 반짝 빛나던 한 단어가 바로 '스토리'였다. 이 단어를 찾았을 때의 짜릿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이 '스토리'라는 한 단어를 내 삶의 한 단어로 삼고 달려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과 실제 두 발을 땅에 딛고 서는 일은 정말 다른 일이다. 수많은 스토리를 다루는 일 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다시 한번 고민에 빠졌다.



스토리디렉팅 작업은 시집을 읽으며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복지이다.


그 때 내가 발견한 분야가 바로 브랜딩이다. 기업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토리'가 '기업 스토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단순하게 보니 이는 브랜딩의 한 영역이었다. 또 한 브랜드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 그 이야기를 찾아내 자신들의 색깔에 맞게 잘 구성하고 잘 전달하는 것이 브랜딩이라면 그 본질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때엔 어떤 무모함인지 몰라도 지금 생각하면 그 무모함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결국 한 기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그 본질은 프레젠테이션이나 브랜딩이나 다르지 않다. 상황에 따라 시기에 따라 청중에 따라 하고 싶은 이야기 중 한 가장 핵심 이야기를 선정하고 이를 컨셉화 하고 자료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은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경험한 이야기 중 청중과 나눌 만한 가치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비슷했다.


마이 파트너 해리와 함께 창업한 필로스토리


그렇게 나는 필로스토리라는 스토리디렉팅 그룹을 창업했다. 한 기업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스토리를 다듬고 맥락을 잡는 일. 우리가 '컨설팅'이 아니라 '디렉팅'이라고 스스로를 정의내린 이유는, 머리로만 일하는 기획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일하는 기획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년 4월 공동 창업을 해 메이드인 성수 프로젝트부터 연남동의 스토리텔러들을 위한 창작, 교류 공간인 <기록상점>을 오픈하는 것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쌓아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이 지난 8년 간,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업에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 도구를 찾아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이야기 도구는 무엇인가

만화로 만화를 설명한 <만화의 이해>라는 만화책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누구나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다만 그 이야기를 표현할 각자의
이야기 도구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는 만화가, 누군가에게는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영상이, 누군가에게는 글 혹은 말이 자신만의 이야기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 도구는 사람마다 다르고 이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 이 이야기 도구를 찾았다면 타인 앞에서 내가 마음껏 쓸 수 있을 때까지 단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의 이야기 도구는 곧 '스토리'인 셈이다. 지난 시간을 쭉 돌아보면 내가 왜 '스토리'라는 단어에 꽂혔는지 알 수 있다. 대학교 시절, 소설을 분석하면서 얻은 나의 이야기 도구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나만의 시선이 된 것이다. 아마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어떤 업으로 가로지르든지 간에 이제 나만의 이야기 도구를 중심으로 누구도 할 수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겨난 듯 하다. 그렇게 믿고 있다.  


그렇게 나는 업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사실 현대 사회는 하나의 정체성만으로는 자신을 소개할 수 없는 시대이다. 이미 우리는 다양한 자아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존의 세상이 정해놓은 타이틀에 나를 끼워맞추는 것만큼 매력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나를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면,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혹은 하고 있는지 그 혼돈의 시간을 다시 돌아보고 바라보며 나만의 이야기 도구를 찾고, 스스로 무어라 정의내려도 부끄럽지 않은 순간, 그 순간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깨닫게 될 것이다. 나를 소개할 나만의 정의를.




2016년부터 나는 <스토리젠터Storysenter>라는 브랜드로 나를 소개했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라고 생각했고 친한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단박에 'Story'와 'Presentation'의 합성어인 <스토리젠터>라는 네이밍이 탄생했다. 그리고 나는 이 이름으로 '스토리젠터 채자영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한다.


이 네이밍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스토리'라는 가치와 내가 하고 있는 '프리젠터'라는 업을 단박에 보여주는 브랜딩이었다. (물론 스토리젠더라고 ...많은 분들이 놀리지만 ㅎㅎㅎ 이제 아무렇지도 않음) 지금은 유튜브 채널에서도 스토리젠터 채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약간의 소강상태를 겪고 있는 나의 유튜브 <스토리젠터 채자>



2018년부터 2019년에는 나는 이렇게 소개했다.



화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께 '발견'하고, 이를 '구조화'하고, 청자에게 잘 '전달'하는 일


내가 좋아하고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세상에 전하는 일



그 당시에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내 소개 안에 담아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만다는 일은 다음의 3단계로 이루어진다. 이야기를 발견(Find)하고, 구조화하여 메시지화하고(Build), 타인 앞에서 나의 메시지를 지키면서(Keep) 표현(Delivery)하는 일. 그리고 내가 왜 이런 일들을 하는지 나만의 가치관을 확고히 하고 싶었다.



그리고 2020년이 된 지금, 나는 나를 이렇게 소개한다.



이야기를 설계하는 스토리디렉터


이야기의 힘을 믿는 '스토리 덕후'입니다.
8년 째 기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메시지화하여 전달하는 국문학도 기획자이자, 못생기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쾌락주의자예요.



위에 있는 글은 왓챠 브런치의 소개글이기도 하다. 때에 따라 나를 다르게 표현하기는 하지만 변하지 않고 꼭 따라붙는 단어가 있다. 바로 "이야기"라는 단어이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꾸준하게 이 한 단어를 다양하게 변형하면서 나를 소개하고 있다.



사람은 늘 변한다. 우리의 정체성도 변한다. 또 우리는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프로페셔널하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스스로를 소개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내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가치관이라든지,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라든지, 어떤 것들은 단단하게 굳어 나의 삶을 지탱한다.


그런 한 문장, 그런 한 단어를 찾는 것. 내 인생이 가로로 넓어지거나 세로로 길어져도 변하지 않을 것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자기소개를 잘하려면 어렵더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것을 찾아야 한다.


결국 이러한 것들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겠다.  


내 안에서 나를 지탱하는 한 단어, 한 문장은 무엇인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가치인가?
나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담을 수 있는가?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어인가?
나는 어디로 확장해나가고 싶은가?


내가 지금껏 걸어온 과거와 현재에서 힌트를 얻고 그 힌트를 바탕으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의미를 담는 것. 진짜 나를 위한 자기소개는 그렇게 만들어져야 한다.




Love yourself,

Find your Story.



2020년 4월 7일 (화)

글 | 채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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